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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중국

1997홍콩6 - 마카오 당일치기(끝)

by 장돌뱅이. 2012. 5. 29.

마카오(渙門)는 홍콩에서 뱃길로 한시간의 거리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
흔히들 홍콩에서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온다. 마카오에서 일정은 딸아이의
여행기에서 설명한 그대로이라 특별히 더 덧붙일 말이 없다.

마카오 역시 그저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여행 방법일 듯하다. 우리는 홍콩에서 여행사에 하루 여행을 신청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다녔다. 일행 중에 뉴질랜드에서 온 나이든
아줌마(할머니?)가 있었는데, 뉴질랜드의 한국인 유학생들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를 하여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한국인들이 술에 취해 시끄럽게 군다 뭐 그런 얘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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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의 하나가 카지노이다.
카지노는 중계무역과 함께 마카오의 주요산업이다. 아무래도 무역은 홍콩이
주도권이 있을 터이니 카지노가 가장 중요한 수입원일 것이다.
카지노를 무엇이라고 설명을 하건 합법적인 노름판이겠는데
인구 40만명정도의 싱가폴보다도 훨씬 작은 마카오의 국민소득이 만불 정도로
아시아에서 5위권이라고 하니 그런 ‘하우스’는 열어 볼만 하겠다.

노름에 관한 한 나는 ‘동양화’건 ‘서양화’건 영 소질이 없다.
더러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하는 고스톱이나 포카판에서 별로 따본 적이 없다.
직장 동료한테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에 살 적엔 하루 저녁 아내에게 규칙을
가르쳐줘가며 심심풀이로 화투를 친 적이 있었는데 초보자인 아내에게도
‘허벌나게’ 두들겨 맞았다. 그 날 저녁 아내는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당신 실력이 이 정도였어? 앞으로 어디가서 3만원쯤 잃으면 5만원 땄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마다 실시하던 보물찾기에선 단 한번도 그럴듯한 상품을
타본 적이 없다. 컴퓨터로 하는 고스톱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그저 땀흘려 일해서만 먹고 살라는 팔자인가 봐.
그러니 다른 맘 먹지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나의 운세에 대한 아내의 평이다.  

그런 내가 세계3대 도박 도시라는 마카오에서 짧은 순간이었지만
투자에 비해 제법 많은 돈을 딴 적이 있다.
몇해 전 중국 광동 출장에서 홍콩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광동과 홍콩의 여행은 주로 기차나 아니면 주로 주강(珠江 : PEARL RIVER)을
따라 내려오는 배편을 이용하는데 그 날은 승용차 편으로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나는 홍콩으로 가보아야 뒷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자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었으므로
마지막 배를 타기로 하고 마카오를 잠시 구경할 수 있었다.

구경이라고 해야 저녁 식사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 카지노에 들려본 것뿐이지만 말이다.

같이 동행하였던 홍콩인과 함께 각자 홍콩달러 200불을(미화25불정도) 2불짜리
동전으로 바꾸어 슬롯머신 앞에 앉아 핸들을 당겼는데, 뜻밖에 내 기계가 당길
때마다 ‘투투투투’하는 소리와 함께 코인을 토해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동행인이 자신의 돈을 다 잃고 내게 왔을 때 내 앞에는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나는 한웅큼씩 집어 그에게 주었다. 그날 저녁 내가 번 돈은 대부분 나보다 더
‘재수없는’ 홍콩인 동행이 날려 버렸다.

슬롯머신에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한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 못할 일이다. 동전을 넣고 핸들을 당기는 단순동작에서 특별히 어떤 짜릿한
긴장감도 재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기계가 돌아가는 것에 재수를 맡기는 것이었다.
(솔직히 핸들을 당겼는지 보턴을 눌렀는지 조차도 기억이 희미하다.)
자신의 의지가 개입하여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놀음’으로 즐기지 않고
‘노름’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결과와 상관없이) 초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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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으로 돌아온 우리는 또 다시 밤거리를 걸어 다녔다.
곳곳에 벌써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고 어디선가 자주 캐롤송이 들려왔다.
토요일 저녁이라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흘러 넘쳤다.
우리 가족도 밤늦게까지 그 흐름에 섞여들었다.
어느 덧 3일이 지나 홍콩 여행의 마지막 밤이 된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항상 절박하고 아쉬움을 동반한다.

바쁜 일상을 쪼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여행의 마지막에 이르면 한번쯤 머리 속을 스쳐가는 화두이다.
그러나 당장에 어떤 것을 말하려고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훗날 무심코 지도를 펼쳤을 때, 혹은 누군가 홍콩을 얘기할 때,
무엇인가 많은 것을 말할 수는 없어도
그저 우리가 1997년에 그 곳에 있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가 걸어다녔던 어느 길 한 모퉁이나
횡단보도에서 마주쳤던 익명의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떠올리고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가 보낸 시간은 의미 있었던 시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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