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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생각이 조금 많아도 괜찮아

by 장돌뱅이. 2023. 5. 6.


1.
아내는 냄새에 민감하다. 멕시코 음식 따꼬(Taco)를 좋아하지 않는 건 또르띠야(Tortilla)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다. 또르띠야는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서 동그랗고 얇게 구워낸 것이다. 여러 재료를 이것으로 싸서  먹는다. 내용물과 싸는 방식에 따라 따꼬나 부리또(Burrito), 엔칠라다(Enchilada), 꿰사디야(Quesadilla), 따말레스(Tamales) 같은 음식이 된다. 멕시코 음식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멕시코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음식은 혀보다 먼저 코로 맛을 보게 되는 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 수없이 아내와는 나쵸(Nachos)나 파히타(Fajitas) 정도에 만족하며 지낸다.


아내는 여행지 숙소의 냄새에도 민감하다. 대학생의 배낭여행도 아닌 터라 나름 괜찮은 호텔을 가는 편인데도 냄새가 난다고 할 때가 있다. 특히 습한 냄새, 어떤 냄새인지 이해는 가지만 나는 맡지 못할 때 난처해진다. 아내는 이럴 때를 대비해 여행에 늘 향수를 가지고 다닌다. 

딸아이는 인도네시아에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입학 초기에는 학부모가 따라가지만 좀 지나면 대개 운전기사에게 맡겨두는 편이다. 그런데 아내는 일 년 내내 딸아이와 등하교를 같이 했다. 주변에서 거의 유일한 엄마였다. 첫 외국생활인 데다가 어떤 운전기사가 하교시간에 주차장에서 잠을 자는 통에 픽업을 못하자 놀란 어린아이가 정신적 충격(트라우마)에 빠졌다는 소문이 한몫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아내는 대체적으로 매사에 생각과 걱정이 많다. 너무 깔끔하고자 하는 완벽주의적인 기질도 있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과장된 몸짓으로 으쓱대곤 한다.
"그런 당신이 일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나를 선택했으니 나는 얼마나 완벽한 사람인가!"

가끔 나와는 맞지 않는 아내의 민감함 때문에 언쟁을 벌일 때가 있다.  하지만 오래 살게 되면서 점점 아내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가는 편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내 쪽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에게도 아내가 아니면 이해해 주지 않을, 아내만이 아는 별난 행동 특성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책『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는 보통 사람들보다 '날카로운 시력과 청력, 귀신같은 개코'를 지니거나, 남들보다 '일어나지도 않은 사고'를 상상하며 '머릿속으로 영화를 찍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한다. 책은 그것을 좌뇌 보다 우뇌에 더 큰 지배를 받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전체 인구의 15∼30퍼센트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

책은 우뇌(지배)형과 좌뇌(지배)형이 '확연히 다른' 두 가지 의식 구조를 가진다며 그 특성에 대하여 많은 대비와 설명을 하였다. 두서없이 발췌해 보면 대략 이렇다

우뇌형은 통합적이고 정서적이며 직관적인 사고를 하고 좌뇌형은 직선적이고 제한적인 사고를 한다. 우뇌형은 집단주의적이고 이타적으로 이어지기 쉽고, 좌뇌형은 개인주의, 나아가 이기주의로 이어지기 쉽다. 우뇌형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자신과 가깝게 느끼게 하는 요소에 집중하고, 좌뇌형은 상대와 자신의 차이에 초점을 맞춘다. 우뇌형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비판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지만 좌뇌형은 남들을 비난하거나 외부적인 탓으로 돌린다. 우뇌형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만회를 위해 노력하지만 좌뇌형은 죄의식에 덜 민감하고 창피당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우뇌형은 어떤 일에 의심과 의문을 줄기차게 생산해 내지만 좌뇌형은 그렇지 않다. 좌뇌형은 열띤 논쟁을 벌이거나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  좌뇌형은 수박 겉핧기 식의 피상적인 인간관계에도  만족하지만 우뇌형은 타자를 자신의 일부처럼 여기는 통합적이고 집단적인 사고를 보인다. 우뇌형이 심리 조종자의 손쉬운 (가스라이팅?)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등등.

숫적으로 소수(15∼30%)인 우뇌형(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고 '오리 떼에 끼어든 백조'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종종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자기 존엄성에 상처를 입는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왜 근거도 없이 두려워하는 거야?"
"넌 별것도 아닌 일에 너무 예민하게 굴어."

그에 대한 자기 방어책으로 말, 공룡, 우주나 독서, 영화, 인터넷 웹서핑 등의 자신만의 취미나 독특한 관심사에 열광적으로 빠지기도 한다. 자신들이 '더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들은 잘 해결하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자존감이 낮아져 우울증, 불안증, 알코올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강박과 실패와 거부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3.
냄새에 예민한 아내는 우뇌형인가?  나는 좌뇌형인가? 내 생각으로는 양쪽 다 해당되고 양쪽 다 해당되지 않는다. 얼마큼은 민감하고 얼마큼은 둔감하다. 혹은 민감한 부분이 있고 둔감한 부분이 있다. 이기적이고 동시에 이타적이다. '내 탓이오'를 할 때도 있고 '니 탓이오'를 할 때도 있다. 자신감도 있고 열등감도 있다. 상처도 있고 자부심도 있다. 나와 아내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책에서 대비한 좌뇌형과 우뇌형의 특성 대비를 보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지 않을까?. 

나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복잡성을 MBTI나 애니어그램(Enneagram)따위의 몇몇 유형으로 분류하거나 규정짓는 것에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좌뇌형이나 우뇌형도 마찬가지다.
책에 나와 있는 아래와 같은 우뇌형 인간을 위한 '충고'가 따지고 보면 우뇌형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범용으로 해당된다는 점이 그것을 반증한다. 

삶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정신의 탐색도 중요하지만 탐색이 일단락된 후에는 딴생각 없이 현재에만 집중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남다를 뿐 아니라 멜로디를 잡아내고 상쾌한 공기와 좋은 향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 예리한 오감이 지금 이 순간 전해주는 선물을 만끽하라.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하라. 여러분은 지금, 바로 여기에 살아 있다!

여러분에게는 슬퍼할 권리, 낙심할 권리, 남에게 폐가 될까 봐 마음 졸이지 않고 도움을 청할 권리가 있다. (···) 여러분은 살아가기 위해 남들의 비위를 맞출 이유가 없다. 

심리 조종자들과(가스라이팅?) 끝을 내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그들에게서 도망치는 거다.

기분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것이다. 어떤 상황을 가장 잘 넘기기 위한 적절한 최적의 심리 상태와 요소를 선택하라

완벽주의는 자기 파괴적인 전략이므로 결단코 버려야 한다. (···) 너무 높이 걸린 장대는 낮추어야만 목표들이 실현가능해진다. 완벽주의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라. 여러분은 불완전한 그대로도 완벽하다.

자신감이 높은 산을 확 밀어 없애 주진 않는다.
하지만 자신감이 있으면 그 산을 제 발로 걸어서 넘을 수 있다.


좋은 동행을 찾으려면 먼저 홀로 걸을 줄도 알아야 한다. 외롭다는 감정을 잘 길들여서 같은 편으로 삼아야 한다. 고독을 일방적으로 견딜 때는 불안하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선택한 고독은 새로운 힘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을 잊지 말라. 당신은 당신 자신과 결혼했다. 당신 자신은 언제나 함께 있어 줄 터이니 앞으로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도움을 받기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상대에게 도움을 적절하게 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생존하기 위해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정신 활동이 남다른 사람들끼리 만나기 위해서는 이성에 대한 판에 박힌 생각(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을 버려야 한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자신의 남성적 에너지와 여성적 에너지를 모두 계발하며 성장한다.

좌뇌형과 우뇌형은 태어나는 것일까? 형성되는 것일까?
책에서는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라구요'라고 했다. 나도 사람의 어떤 부분은 '태어난다'는데 동의한다. 아무리 노력을 많이 한다고 누구나 손흥민이나 김연아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아니 노력까지도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과 행동은 선천적으로 고정된 유전자만의 결과물이 아니라 선천·후천이 다양하게 조합되어 만들어진 화학적 산물이다. 어떤 선천적인  '마이너리티'의 특성을 지녔다는 사실만으로 일반적 다수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다면, 그 특성을 '심리적 조종'에 이용까지 하려 한다면,  그 치유는 해당인에게 심리적 결단이나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전에(혹은 동시에) 부당한 언어적·사회적 폭력을 제거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다양하다. 생각과 성격, 감각과 능력에서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 간단한 전제를 긍정하는 바탕 위에서 공동체와 구성원 스스로가 이제까지 유지해 온 규범과 인식을 냉철하게 객관화하여 들여다보며 서로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는 포용력의 외연을 하는 부단히 확장해 가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영상 독서토론 모임 "동네북" 4월 추천도서 후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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