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꽃, 밥에 피다

by 장돌뱅이. 2023. 6. 19.

"꽃, 밥에 피다."
인사동에 있는 한식을 내는 식당의 이름이다. 예쁜 식당 이름 대회라도 있으면 상을 받을 것 같다.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만나 저녁을 먹었다. 미슐랭 가이드에 올랐다는 후광이 있어서인지 저녁 시간 예약을 1시간 반 간격으로 두 파트로 나누어 받았다. (미슐랭? 미쉐린? 어느 게 맞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누군가 타이어를 말할 때 미쉐린으로, 식당을 말한 땐 미슐랭으로 하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세계 곳곳의 도시마다 '미슐랭 별 O개'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있지만 그 기준으로 식당을 선택해 본 적은 없다. 하긴 미슐랭 별3개야 대체적으로 가격도 '후덜덜'한 데다가 예약 자체가 힘들다고 해서 시도의 엄두도 내지 않았지만.

특히 최근 들어서는 낯선 곳의 식당 정보는 손쉽게 '구글신(神)'에게 묻는 편이다. "꽃, 밥에 피다"도 그렇게 선택하였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은 많은 것들을 전문가의 손에서 해방시켰다. 음식이나 식당에 대한 평가도 그중 하나다. 사람들은 손쉽고 다양한 공론의 장에 자신의 의견과 평가를 내리고 공유하며 '집단 지혜'의 힘을 갖게 되었다. 권위 있는 전문가의 특정 미적 기준이나 평가의 지배적 영향력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꽃, 밥···"의 자료에 따르면 이곳의 음식은 95%를 무농약, 유기농, 친환경 재료로 만든다고 한다.
최근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의 문제로 음식물의 안전성이 어느 때보다도 예민한 사안이 되었다.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지는 마당에 개인적이고 일회적인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천연재료로 만든 덤덤하고 담백한 맛의 음식들을 목으로 넘기며 잠깐이나마 소심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식사를 하며 일행들과 각자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돼지(순대)국밥과 멕시코 음식인 따꼬(TACO)를 이야기했다.
순대를 소금에 찍어선 한두 점 먹을 수는 있지만 물에 빠진 순대는 싫다고 했다.
따꼬는 또르띠야의 냄새 때문에 도리질 치게 된다는 것이고.
삼겹살만 빼곤 다 좋다는 사람도 있었고 피자나 국수 같은 밀가루음식이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의 입맛은 천차만별이다. 내 주위만 둘러보아도 프라이드 포테이토와 찐 감자는 먹어도  감자탕 속 (물에 빠진)  감자는 남기는 사위가 있고, 오이를 싫어하는 딸도 있다.  직장에 다닐 때 네모난 국수는 먹는데 동그란 국수는 싫다는 직원도 있었다. 그러니까 우동이나 짜장면, 칼국수는 좋지만 잔치국수는 싫다는 것이다. 잔치국수를 짜장면 소스에 비벼주면 어떻게냐고 했더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주는 식당이 없어서 결론은 내지 못했다.
 

싱식적인 말이지만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 혹은 싫어하느냐는 음식이 지닌 맛에 대한 혀의 권한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반복된 경험으로 형성된 관습과 행위의 반영일 뿐이다.
더군다나 음식이나 사람의 취향이 우열의 평가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음식은 때때로 사람과 강력한 감정적 결합을 이룬다. 그래서 '엄마의 손맛'과 '할머니의 마음'이라는 추상이 자주 상품화된다.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때  나는 이국 생활에 대한 동경은 퇴근 후 동료들과 나누는 '삼겹살과 소주'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 세상 대부분의 나라에서 삼겹살은 흔하지만 그것이 한국의 뒷골목 번잡한 분위기에서 먹는 삼겹살과 같은 음식일 수 없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짧은 시가 강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 안도현, 「퇴근길」-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오는 날의 '손자병법'  (0) 2023.06.22
달려라 친구야  (2) 2023.06.20
국수의 해 2  (0) 2023.06.17
법 없이 살기 위해서  (0) 2023.06.13
그 기억들이  (0) 2023.06.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