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6편의 제목은 "세상의 모든 국수"다.
세상의 모든 국수? 몇 가지나 될까? 아마 수천수만 가지에 이를 것이다. 그 국수들을 다 모아 놓으면 만드는 방법과 맛이 기기묘묘한 국수로 가득 채운 상(床)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을 것 같다.
국수는 원재료에서부터 부재료에 이르기까지 주변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재료를 흡수하는 흡인력이 강한 음식이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른 국수가 태어난 이유이다.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파스타나 동남아의 쌀국수가 그렇고 천 가지가 넘는다는 중국의 국수와 일본의 국수가 그렇다.
우리나라의 국수도 다양하다. 평양냉면, 함흥냉면, 까나리냉면, 칼국수, 수제비, 김치말이국수, 잔치국수, 두부국수, 잣국수, 팥칼국수, 어탕국수, 바지락칼국수, 멸치국수, 막국수, 올챙이국수, 콧등치기국수, 칡국수, 사과국수, 누름국수, 건진국수, 도토리칼국수, 선지국수, 고기국수, 회국수, 성게국수, 땅콩국수, 짜장면, 짬뽕 등등.
단지 생존을 위해 배만 채우는 '먹이'에 만족했다면 인류의 밥상은 지금처럼 화려하거나 다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 글에서도 말한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없는데도 하는 모든 것이 문화'라고 할 때 국수를 비롯한 음식은 그 정의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사람들은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국수를 만들어왔다. 우리는 종종 라면 하나를 끓일 때도 냉장고 속을 뒤져 파나 호박, 먹다 남은 해산물이나 고기 등을 넣어 평준화된 맛으로 대량생산된 상품에 나만의 취향과 '의지'를 넣고 싶어 하지 않는가.
어떤 필요와 본능적인 욕구, 그리고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문화이고 음식이고 국수이다.
내가 요리를 배운 한명숙선생님이 유튜브를 개설하면서 작년에 수박미역국수를 소개한 적이 있다.
수박으로 국수를? 뜻밖의 재료에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어 따라 만들었다.
(*수박미역국수)
올해는 조금 다른 수박국수를 만들어 보았다.
얼마 전엔 아내와 참외를 먹다가 문득 '수박국수가 있는데 참외국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졌다. 아니나 다를까 있었다. 사실 비빔국수에 참외를 채 썰어 넣었을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거야 '콜럼버스의 달걀' 아닌가. 세상엔 참 별스런 사람들이 다 있다며 만들었더니 아내는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며 웃었다.
토마토를 먹다가 토마토국수? 하는 생각이 났다. 역시 누군가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놓았다.
'세상엔 고수가 많다(人生到處有上手)'.
은퇴하고 난 뒤에 수시로 느끼고 깨달은 교훈을 여기서도 확인했다.
'올해는 국수의 해'라고 큰 의미가 있을 리 없는 구호?(목표?)를 정해 놓고 기회가 닿는 대로 국수에 대한 글을 읽고 텔레비전 프로를 보고 있다. 여행을 가서도 국수를 가급적 많이 먹어볼 생각이다. 그런 게 없더라도 국수는 아내와 내가 좋아하던 음식이었음을 지난 한두 달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말이다.
당신은 소면을 삶고 / 나는 상을 차려 이제 막 / 꽃이 피기 시작한 살구나무 아래서 / 이른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 이사 오기 전부터 이 집에 있어온 / 오래된 나무 아래서 / 국수를 다 먹고 내 그릇과 자신의 그릇을 / 포개 놓은 뒤 당신은 / 나무의 주름진 팔꿈치에 머리를 기대고 / 잠시 눈을 감았다 / 그렇게 잠깐일 것이다 / 잠시 후면, 우리가 이곳에 없는 날이 오리라 / 열흘 전 내린 삼월의 눈처럼 / 봄날의 번개처럼 / 물 위에 이는 꽃과 바람처럼 / 이곳에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 우리는 부재하리라 / 그 많은 생 중 하나에서 소면을 좋아하고 / 더 많은 것을 사랑하던 / 우리는 여기 없으리라 / 몇 번의 소란스러움이 지나면 / 나 혼자 혹은 당신 혼자 / 이 나무 아래 빈 의자 앞에 늦도록 / 앉아 있으리라 / 이것이 그것인가 이것이 전부인가 / 이제 막 꽃을 피운 / 늙은 살구나무 아래서 우리는 /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 이상하지 않은가 단 하나의 /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 / 두 육체로 나뉘어 존재한다는 것이 /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영원한 휴식인가 아니면 / 잠깐의 순간이 지난 후의 재회인가 / 이 영원 속에서 죽음은 누락된 작은 기억일 뿐 / 나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 경이로워하는 것이다 / 저녁의 환한 살구나무 아래서 //
- 류시화, 「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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