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워싱턴 D.C의 한 지하철 역에서 청바지와 티셔츠차림에 야구모자를 쓴 청년이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가 연주하는 43분 동안 1,0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1분 이상 머무르며 음악을 들은 사람은 고작 7명이었다. 27명은 총 32달러 17센트를 그의 모금함에 넣고 갔다.
이 날 연주를 한 사람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죠슈아 벨이었으며, 이틀 전 보스턴에서 열린 그의 연주회는 최하 100불 이상으로 시작하는 비싼 관람료에도 전석이 매진되었다. 그가 연주한 바이올린은 음색이 아름다운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당시 가격은 350만 불 (한화 약 40억 원)에 달하는 바이올린의 명품이었다.
이 실험은 <워싱턴 포스트> 신문이 주관한 것으로 시민들의 예술적 감각과 취향 측정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실험은 사람들이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콘서트장에 가는 이유가 음악에 대한 이해라기보다는 연주자와 연주 장소의 브랜드 가치를 소비한다는 한 측면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날 지나쳐 간 천여 명의 사람들이 평소에도 음악 연주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또 1분 이상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나 돈을 기부한 사람들의 행위가 반드시 음악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한 행위라고만 볼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해석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여지게 된다.
물론 '연주자와 연주 장소의 브랜드 가치를 소비'하는 행위가 허세나 허풍으로 힐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비닐 봉다리 대신에 이른바 '명품' 가방을 사려는 이유가 기능적으로 우수해서가 아니라 '명품'에 담긴 일종의 판타지를 선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는 데는 합리적 논리만이 아니라 때로 어느 정도는 환상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림에 대한 나의 무지(無知)를 변명하려다 보니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내가 그림의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은 단순히 우리집 거실에 걸었으면 좋겠다 아니다, 하는 유치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브랜드 가치' 소비 이전에, 그냥 아내와 함께 미술관을 걷는 한가로운 시간을 그림 자체보다 더 좋아하는 데 있다.
아내와 미술관 '산책길'에 만난 발리 그림들은 대부분 발리의 일상생활이나 풍경을 담고 있어 흥미롭고 이해하기도 쉬웠다. 그리고 우리집 거실에 걸어두기에도 좋아 보였다.
1. KOMANEKA FINE ART GALLERY
이번 여행의 숙소였던 KOMANEKA의 정문 앞에 있는 2층의 작은 미술관이다. 기념품점도 같이 있다. 개성적인 젊은 작가의 작품들을 위주로 전시한다고 한다.
2. NEKA ART MUSEUM
나는 이곳에 2000년에 처음 혼자서 방문했고 그 뒤에도 아내와 함께 한두 번 더 방문을 했다.
발리 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수집가 네카가 설립한 미술관이라고 한다.발리인과 다른 지역의 인도네시아인, 그리고 서구인의 그림과 사진이 7개 전시관으로 나뉘어전시되어 있다.
입장료는 150,000루피아(미화 약 15불)로 비싸지만 쾌적하고 환경에 발리의 회화를 잘 볼 수 있도록 시대순 혹은 작가별로 잘 정리/전시되어 있다.
우붓에서 단 한 곳의 미술관을 가라면 네카 미술관이고, 네카에서 단 하나의 그림을 보라면 이 그림 <Saling Tertarik(Mutual Attraction)>이라는 말이있다. 일반 여행자들 사이의 인기도를 반영한 평가일 것이다. 아내와 나 역시 이 그림 때문에 다시 네카에 오게 되었다.
중부 자바섬 출신의 화가 압둘 아지즈가 그린 이 그림은 원래 개별적으로 그렸는데 1980년부터 합쳐졌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연애 시절을 떠올리며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 처음 네카에 왔을 때는 다른 그림과 같이 벽에 붙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는 높은 인기 때문인지 전시관 중앙에 별도의 벽을 만들어 전시되는, 인기 스타의 대접을 받는 듯했다.
네덜란드 화가 아리 스미트가 그린 발리인들이 신성하게 여긴다는 아궁산을 그린 작품이다.
밝아오는 하늘 아래 아침산의 싱싱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궁산은 높이가 무려 3,142미터로 우뚝하다. 맑은 날이면 발리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루엣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2004년 나는 아궁산에 올랐다. 한 밤중에 산 아래 마을에서 출발하는 급경사의 산행이었다. 다녀온 곳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2017년 이후 화산 분화의 위험으로 산행이 금지된 상태라고 한다. (* 이전 글 : 2004년 발리 아궁산)
서부 자바 출신의 화가 아판디가 그린 바뚜르 산의 모습이다. 해발 1,717미터로 발리에서 두 번째로 높은 활화산으로 바뚜르 호수에 솟아 있다. 아내와 함께 바뚜르 산에서 해돋이를 보았다. 멋 모르고 나 혼자 반바지 차림으로 올랐다가 추워서 호된 고생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 이전 글 참조 : 2004발리5)
닭싸움은 발리의 전통 풍습이다. 원래 닭싸움은 오락과 제물 등을 겸한 복합적인 사원 행사였지만 요즈음은 도박이 주된 목적인 'BALINESE CASINO'의 의미만 남았다고 한다.
(*이전 글 참조 : 2001발리5)
옛 발리 여성들은 가슴을 드러내고 생활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 시점이 50년 전이니 그때까지도 그런 풍습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춤과 사원과 축제, 발리의 아이콘이다.
3. THE BLANCO RENNASSANCE MUSEUM
스페인 화가 안토니오 블랑코의 개인 미술관이다.
블랑코의 개인 이력은 이채롭다. 자세한 내력은 알지 못하지만 1911년 마닐라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긴 세계 여행 끝에 1952년 발리에 정착하여 발리인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미술관은 그가 작업실로 쓰던 곳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술 작품 이전에 미술관은 어둡고 습해서 도무지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블랑코는 한 때 '발리의 달리'라고 불리며 명성을 얻었다는데 이제 후원이 끊긴 것인지 미술관으로 작품을 전시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공간이 되어 있었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그림 자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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