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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내 손과 발로 할 수 있으면

by 장돌뱅이. 2023. 9. 10.

나이가 드니 가는 모임마다 모임의 주제에 앞서 건강 관련 이야기가 자주 화제에 오른다.
경조사에서 만난 동창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건강 안부를 묻고 나누는 일이 잦다.

혈압과 당뇨, 콜레스테롤은 기본이 된 지 오래이고, 언제부터인가 대화 내용이 더 세부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눈 이야기는 안구건조, 비문증, 백내장에 황반변성까지 이어지고, 뼈 이야기가 나오면 퇴행성 고관절, 슬관절, 척추협착 등으로 다양해진다. 인공치아에 통풍에 대상포진에 전립선에  수면장애에  그냥 매가리가 없다는 하소연까지 증세도 다양하다.

담낭 제거 시술을 받고 '나 이제 쓸개 빠진 놈'이 되었다고 씁쓰레하던 친구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거 없어도 괜찮던데?' 하는 경험에서 나오는 듯한 위로를 던진다. 자신의 문제를 벗어나 주변 이야기가 더해지면 대화는 갑작스러운 암 발병이나 심지어는 돌연사 같은, 놀랍고  잔혹하다가 끝내는 덧없어지는 결론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늙어서 닥치는 모든 비정상이 곧 정상'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최근에 한의원 예약을 할 일이 있어 이틀 걸러 한 번씩 다니고 있다. 유명한 한의원인지 인터넷이나 전화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진료와 치료를 받으려면 항상 직접 가서 매번 예약을 해야 한다. 아침에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가보면 부지런한 노인들이 벌써 병원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에 들려오는 앞뒤 노인들의 이야기도 온통 아픈 몸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하루는 누군가 한마디 말로 설왕설래의 이야기를 상쾌하게 마감지었다.
"그래도 내 발로 걸어서 병원 다닐 수 있으면 다행인 거여!"

그렇구나! 
문득 서늘하게 깨닫게 된다. 

한약 복용에는 밀가루 음식, 매운 음식,  닭고기 같은 금해야 할 음식처럼 뒤따른다.
아내의 복용이 끝난 후 10여 일에 걸쳐 그동안 미루어 두어야 했던 음식을 주로 먹었다.
음식도 아직 내 손과 발을 움직여 만들거나 사 먹을 수 있으면 다행으로 알아야 할 일인 것 같다. 

비빔면
고등어조림
잔치국수
두부조림
매운가지볶음
열무김치비빔밥
국물떡볶이
매운오징어볶음

집 근처 음식점에서 사 먹기도 했다,
누가 뭐래든 어린 시절부터 중국집 최고의 음식인 짜장면 하며

꿔바로우
샤오롱바오
짜장면

아직 더위가 물러서지 않은 요즘에 빼놓을 수 없는 물냉면!

감자탕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평소 돼지고기를 즐겨하지 않는 아내도 아주 가끔씩 찾는 걸 보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이번엔 금기 때문에 갈증이 더 커진 상태에서 먹었던 터라 맛이 각별한 것 같았다. 

금지된 닭고기는 치맥의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치맥은 코로나로 한동안 뜸했던 야구 경기를 불렀다.
기아와 두산의 경기가 있던 잠실야구장에서 두 가지 결핍을 동시에 채웠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장소에서 먹을 때  음식의 맛은 물결처럼 퍼지며 극대화된다.
위로와 평화 가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아궁이에서 시작된 온기가 고래를 지나며 구들장을 덥히고 굴뚝으로 나가듯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스며들며 우리를 살린다.
음식의 일생이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 

아궁이에서 굴뚝까지는
입에서 똥구멍까지의

비좁고,
컴컴하고,
뜨겁고,
진절머리 나며,
시작과 끝이 오목한 길
무엇이든지 그 길을 빠져나오려면
오장육부가 새카매지도록
속이 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밑바닥에 닿는다, 겨우

-안도현의 시 「굴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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