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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기도하고 인내하고

by 장돌뱅이. 2023. 9. 18.

용산에 있는 당고개 순교 성지 성당에서 수녀님을 만났다.
아내와 나를 천주교로 이끌어주신 스승님이시다.

종교를 가지게 된 것은 7년여의 미국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큰 변화였다. 그 이전까지 절대자의 섭리와 현존을 이해하려거나 감지하려는 신앙적 의지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성경을 읽었지만 그것은 그저 고전으로  혹은 영어 공부의 일환으로 읽었을 뿐이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시옵소서'라는 기복(祈福)적인 기도가 아니라  세상의 불합리한 제도와 법과 권력을 없애는 현실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고 신이야 말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허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시나브로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 '나는 어쩌다 이 먼 미국까지 오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삶에는 나의 선택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계획한 거대한 빅픽쳐 속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어떤 의지도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질문을 떠올리게도 되었다. 미국 주재는 이전에 기회가 있었을 때 내가 적극적으로 외면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흐른 뒤 몇 번의 이런저런 우연 같은 일들이 겹쳐진 끝에 선택했지만, 사실은 선택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게 된 일이었다. 우연이 그냥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잦아지면서 (예전에 개신교 신자였던) 아내와 논의 끝에 성당을 찾게 되었다.

당고개 성지 (최양업 신부님 일생을 그린 그림 중)

교리를 공부하러 성당에 가는 첫날, 혹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가르치면 바로 돌아서 나오자고 아내와 의기투합(?)했다. 다행히 수녀님은 경직되고 고답적인 교리에 우리를 가두지 않았다. 옷이 물에 젖을까 미지의 바다 앞에서 멈칫거리는 우리에게 진리의 바닷물에 온몸을 푹 적시고 나면 후련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거라며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분위기로 우리를 이끌었다. 아내는 그런 수녀님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마리아 수녀님을 닮았다고 했다. 마리아 수녀님처럼 시원시원하시면서도 문학소녀처럼 감상적인 시와 노래를 자주 들려주셨다. 그런가 하면 미국 내륙지방을 여행하며 하루 800킬로미터를 직접 운전하는 강행군을 거뜬히 해내시기도 했다.  

당고개 성지에서

세례를 받은 후  아내는 이전보다 진지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냉담자' 기질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불합리가 신에게 있다는 듯이 투정을 부리며 지낸다. 인간의 역사에 신은 개입하고 있는가? 개입하고 있다면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세상의 부조리함과 무고한 이들의 고통은 어떤 뜻인가? 신의 현존은? 자비와 사랑은? 그 안에서 어떻게 실재하고 있는 것인가? 
걸핏하면 나의 섣부른 투정의 대상으로 이전에는 없던 만만한(?)  '그분'을 세우는 것이 세례 이후 나의 변모라면 변모였다. 부활한 예수님도 못 믿어서 옆구리 창자국에 손을 대본 토마스에 비하면 나는 양반 아닌가? 억지도 부려가면서.

수녀님은 나의 치기에 크게 개의치 않으신다. 언젠가 만났을 때는 "(아무리)그래도 한 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라고 해병대처럼 말씀하시면서 "몇 년 냉담 끝에 수녀가 되신 분도 있다"고 경쾌하게 다독여 주시기도 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수녀님은 이내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의 나라로 옮겨 오래 선교활동을 하셨다. 그 때문인지 지금은 건강이 나빠지셨다. 망할 놈의 코로나 후유증까지 겹쳐 많이 힘들 것인데도 내색은 안 하신다. 여전히 기운차고 투지 만만하시다.

만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수녀님의 쾌차를 위해 아내와 기도를 했다.
내게는 응답에 게으르게만 보이는 '그분'이 이 기도는 즉각 들어주는 것으로 그간의 부진을 만회할 것 같은 간절하고 강렬한 '느낌적 느낌'이 왔다.

수녀님께서 나중에 이탈리아 여행을 가면 읽어보라고 책 『밀라노에서 온 편지』를 주셨다.
박홍철 다니엘이라는 신부님이 내게는 생소한  '교의(敎義) 미술'을 공부하러 밀라노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단상들을 적은 책이었다. 그 안에 이런 글이 들어 있었다. 나는 글과 반대로만 살아온 터라 읽으며 마음 한 구석이 켕겨왔다.

주님,
우리 손이 할 수 있는 일에
기도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 손이 할 수 없는 일에는
인내로이 당신을 기다리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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