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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

by 장돌뱅이. 2023. 11. 2.

야니와 아니카(이하 야아님) 부부와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야니님과 나와 둘이서 만날 때는 주로 돼지국밥을 먹지만 아내 동반으로 만날 때는 달라진다.
아무래도 아내들의 취향에 따라 담백한 쪽으로 기운다. 이번에는 슴슴한 냉면을 먹었다.
만두와 수육 한 접시를 곁들였다. 수육은 다분히 나에 대한 배려다.

아무 이야기를 꺼내도 공감하는 상대가 있다.
야아님이 그렇다. 정확히는 공감받을 거라는 생각에 아무 이야기나 꺼내는 사이이고, 더 정확하게는 그런 생각조차 없이 그냥 아무 이야기나 두서없이 주고받는 사이다.

'듣는 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이순(耳順)이나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의 경지에 다다라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특별한 경계가 없는 데다가 서로의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이 있어 편안하다는 뜻이다. 

만나면 아내와 나는 주로 손자들 이야기를 하고 야아님은 시골 부모님 댁의 강아지들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교 시절, 정통(성문)종합영어에서 배운 구문 중에 "A is to B what C is to D( A의 B에 대한 관계는 C의 D에 대한 관계와 같다)."가 있었던 것 같다.
이 표현을 빌려오자면 "We are to 손자 what they are to 시골 강아지."다.

시골 부모님 댁 강아지라고 했지만 개들의 '주민등록지'가 그렇달뿐 실제적으로 야아님이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야아님의 개들은 특별한 족보를 가진 종이 아니라 (흔히 '똥개'라고 부르는) 시골 잡종견들이다. 그럼에도(이 말은 자칫 야아님에게 모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야아님의 애정 어린 보살핌은 각별하다.

여름에 모기에 물릴까 모기장을 둘러주다간 아예 서울로 '모셔오기도' 한다. 완전히 서울로 데려오지 않는 건 시골이 강아지들의 성장에 더 나은 환경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견공들을 위한 월동준비조차도 완벽히 끝낸 듯했다. 작년에 급기야 강아지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아예 시골집 근처에 집을 빌려두기까지 했다. 서울과 시골, 두 집 살림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은퇴 후  해외살이라는 계획조차도 접었다. 

아니카 님은 강아지들의 순수함과 재롱으로 받는 기쁨과 위로에 대해서 감동적인 말로 설명을 했다.
받는 것에 비하면 자신이 주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는 듯이.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던 그 말을 온전히 옮길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나의 경도 치매 탓이다. 나는 아니카 님에게 강아지들과 나누는 일상을 블로그 같은 걸 만들어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랑은 무릇 자신의 세계 안에 사람뿐만 아니라 풀 나무 곤충 물고기 동물까지, 더 약한 존재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이자 목표일 것이다. 자리를 내어준다기보다 자리를 채운다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올바름이나 진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고 아내와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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