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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집 근처 '버금' 단풍

by 장돌뱅이. 2023. 11. 5.

올가을 단풍 구경을 하려고 내설악행 산악회 버스를 알아보다가 이런저런 일로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 뒤엔 단풍 내려오는 시기에 맞춰 가까운 서울 북한산을 가볼까 했는데 또 다른 일이 방해를 했다.
손자들과 가까운 글램핑 장에서 파티를 하려던 계획도 손자들의 독감으로 일주일 새 두 번이나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둘째 손자의 독감이 끝나니 곧바로 첫째가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계획에서 자꾸 벗어나려는 일들을  잡아다
일상 속 제자리에 놓으려는 노력의 반복이다.

둘째를 괴롭히던 바이러스가 첫째로 옮겨간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의사는 동생은 B형(독감)이고 형은 A형(독감)이니 동생도 또다시 걸릴 수 있다고 주의를 주었다.
 옆에서 의사의 말을 들은 첫째는 단호하게 '오진'을 지적했다.
"저는 O형인데요."

나이 든 우리에게도 감염될까 염려한 딸아이는 주말에는 자신들이 돌보겠다고 한다.
일단 열이 내리면 전파 위험이 줄어드니 와도 그다음에 오라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첫째의 체온 변화를 카톡으로 받으며 마음만 비상대기다.

"단풍 보러 멀리 갈 필요 없어. 작년에 내장산에 갔다가 단풍이 아니라 사람 구경만 하고 왔다니깐."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길에  뒤에서 노인 둘이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래전 내장산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아내와 나는 그 말에 백번 공감을 했다.  
"여기도 이렇게 예쁘잖아. 이 정도만 해도 눈호사 아니여?"
이어진 노인들의 말에도 우리는 고래를 끄덕였다.
어디 단풍뿐이랴. 최고, 최상, 최신, 절정, 으뜸 같은 수식어를 동반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조금은 부족한 듯 '버금가는' 것들에 자족한다면 사는 일이 한결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Oh Lucky Day -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 김초혜, 「가을의 시」-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엔  얼마 전 문을 연 카페에 자주 들린다. 
나무 사이로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에 고즈넉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카페는 불을 밝히고 호수에는 어스름이 스멀거렸다.
해가 짧아진 탓이다.
어느새 입동이
 코앞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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