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자는 중에 갑자기 팔 어딘가가 가렵다. 잠결에도 왜 이러지 하는 생각에 긁으며 뒤척이다가 귓전에 앵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문득 그것이 모기의 소행임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다. 귀찮지만 깨어 일어나 잡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밤새 시달릴 것이다. 겨울을 앞둔 지라 모기철은 다 끝났는 줄 알았는데 놈은 독하게 살아 남은 끝에 우리가 방심한 어느 순간이나 창문의 작은 틈을 노려 침입했을 것이다.
올림픽을 앞둔 프랑스 파리에 빈대가 극성이라더니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빈대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1970년대까지 빈대는 강철수의 어린이 만화 소재로도 자주 등장했고 "슬보기(蝨甫記)" 같은 제목의 소설도 있었던 걸 보면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었던 해충 같다.
빈대는 일생동안 200 - 250개의 알을 낳으며 20도 이상의 실내에선 먹이가 없어도 120일 정도 생존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나타나면 박멸이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물론 이 말은 조그만 일을 크게 만드는 아둔함을 풍자하는 말이지만 빈대에게서 받는 시달림이 집을 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크다는 뜻도 들어있을 것 같다.
70년대 말 군대에 갔을 때 주말이면 모포를 말리고 거두면서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빈대나 이를 보지는 못했다. 이후에는 공중(개인) 위생이 더 좋아지면서 완전히 사라진 걸로, '빈대 붙지 마라'라는 농담 속에서나 살아있는 줄 알았던 빈대들이 건재함을 알리며 당당히(?) 돌아온 것이다.
작고한 시인 채광석은 유신시절이던 1975년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2년 형을 받고 공주교도소에서 징역 생활을 했다. 긴급조치 9호는 '집회·시위, 유신 헌법에 대한 부정·반대, 개정·폐지 주장, 유언비어의 날조·유포 등의 행위에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이 가능하며 1년 이상 유기 징역에 처하도록 할 수 있는 공포의 '법률적 조치'다.
그때 쓴 그의 시에 빈대가 나온다. 아마 교도소에 빈대가 많았던 모양이다. 시(詩)에서 빈대는 물리고 피를 빨리면서도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라고 외친다. 그 역설적인 외침은 다듬어지지 않아 투박하고 격정적이다. 하지만 시의 완성도를 논하기 전에 절박하다.
하루의 노역에 곯아떨어진 자여
나는 온다
너 개꿈에 붙잡혀 히죽거리는 사이
삼 년 비운 배 그득그득 네 피로 채우고
나는 간다
피 빨려 가려움만 남는 곳
무심히 긁어 대며 꿈꾸는 자여
들어라
피부 문드러져 진물은 흐르고
처자식 다시 만나 꽃나들이 가는 꿈
아침이면 돌아서 절망의 벽인 것을
잃는 것은 피뿐이다.
피뿐이다
무심히 긁어댐만으로 사라져 갈 피빨음은 없고
허황된 개꿈이 행복으로 다가설 린 없나니
대를 물려 수렁에 빠진 자여
일어나라
바람은 분다
유관순 멍든 몸 뒤척이던 석실터를 돌아
6·25 때 이래저래 맞아 죽은 사람들 담긴 우물터 돌아
공주감옥 밤바람은 몰아친다
저 바람 결결에
우금치 동학군의 비명소리 묻어오고
빨려도 빨려도 부족한 잠인가
깨어나라 잠든 자여
떨치고 일어나 골목 지키며
청청한 고독을 바람과 맞세우고
내 덜미를 잡아 벽에 짓이기라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천 마리
피는 흘러 한 폭 불타는 벽화를 빚고
불면의 밤들은 모여
네 몸에 뚜룩진 비계떼 발라내어
자유
너는 한 마리 몸 가벼운 새
겹겹이 둘러친 창살을 넘나들며
목조의 가사(假舍) 방마다 그득 곯아떨어진 자들
하나 둘 일깨워 내 족속 씨말리는
형형한 눈들 섬광과 섬광 부딪쳐
공주감옥 벽이란 벽 밤마다 타오르고
몸 가벼운 새떼 밤새도록 난다
파랑 파랑 새들은 난다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천 마리
- 채광석, 「빈대가 전한 기쁜 소식 1」-
제 철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것이 모기뿐이며 세월을 거슬러 나타난 존재가 빈대뿐일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긴급조치는 아직 온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긴급조치로 인한 부당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법적국가배상 문제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끝난 과거가 아니라 현실 속에 살아있다. 청산은커녕 최근엔 그 책임의 주체와 방식을 두고 권력과 사법부가 모종의 거래로 야합을 하여 문제를 키우기도 했다.
조국 전장관의 표현대로 하자면 무엇보다 '법의 통치'가 아니라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처럼 '법을 이용한 통치'라는 '빈대'도 되돌아온 듯하다. 그와 함께 전쟁의 공포, 환경의 재앙,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와 차별, 암울하게 그려지는 미래처럼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낡은 '빈대'들이 함께 묻어왔다.
그들의 귀환 소식에 다시 절박한 마음으로 50년 전의 시를 꺼내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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