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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죽도록 공부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by 장돌뱅이. 2024. 10. 15.

교육을 말할 때 사람들은 자주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이야기한다.
그에 못지않은 이른바 '증자삼계(曾子三戒)'도 있다.

증자의 아내가 장에 가는데 어린 아들이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다. 이에 아내는 "집에 그냥 있으면 돌아와서 돼지고기 삶아줄게"라고 빈말로 달랬다. 장에서 돌아와 보니 증자는 가난한 집안의 가장 큰 재산인 돼지를 잡고 있었다. 아내가 깜짝 놀라 왜 돼지를 잡냐고 물었더니 증자가 말했다.
"돼지고기를 먹여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부모가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약속을 했으면 약속대로 해주는 것이 교육이다."

또한 증자는 아들이 부잣집 아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하자 짐을 꾸려 이사를 했다고 한다.
"남 잘 사는 것을 알면 내가 못하는 것을 낙심하고 남처럼 못사는 부모를 업신여기며, 잘 되려는 마음에  금이 가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증자는 또 조상의 제사나 윗사람을 뵐 때만 아이에게 새옷을 입혔고 아이들과 놀 때는 헌옷을 입혔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새옷을 입으면 헌옷을 입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쉽게 친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율곡도 아이들이 삼가야 할 17조를 정했다. 음식을 다투고 사양하지 않는 일, 잘못된 일을 숨기는 일, 웃어른에게 함부로 말하는 일, 부모가 시킨 일을 행하지 않은 일 등이다.
적고 보니 나의 부모가 증자나 율곡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부모님이 증자나 율곡처럼 '거룩한' 교육시켰으면 아마 나는 불량청소년이 되어 가출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예나 이제나 제대로 된 자식 교육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반증이겠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같은 속담도 교육의 중요함과 어려움에서 나왔을 것이다.

부모로서 나는 선인들처럼 딸아이에게 큰 모범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過猶不及)'는 생각은 하지만 허락과 금지, 칭찬과 야단, 베풂과 절제의 경계를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손자저하를 마중하러 가보면 정말 많은 차들이 들고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악, 미술, 수영, 축구, 영어, 수학, 줄넘기, 태권도, 유치원, 등등.
아이들에게 학원은 배움터고 부모들의 시간 때움터고 오고 가는 버스는 놀이터다.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나의 어린 시절의 환경이 결코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달랐던 점은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방에 던져 넣고 부리나케 고샅길을 뛰어나가 친구들과 놀았다는 점이다.
골목과 산과 개울, 더 멀리 떨어진 도심 쪽 공사장까지 경계가 없었다.
해질녘이면 아이들을 부르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곤 했다. 

축구에 열심인 손자저하가 어느 날 '학년이 올라가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해서 다른 걸 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자못 진지하게 말했다. 제 부모가 공부에 극성을 떨지도 않는데 아마 은연중에 어디선가 듣고 상황이 스스로도 납득이 가기에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또 어느 날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영어 공부를 안 해도 되었을 것'이라는 학창 시절 내가 했던 말과 같은, 부러움인지 투정인지 모를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볼을 감싸줬지만 어린 저하가 앞으로 지나야 할 시간에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
결코 '죽도록 공부해'보지 않았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이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는 세상······.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에 누구나 (적어도 겉으로는) 긍정하면서도 세상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라는
학원 광고를 붙이고 달려가는 시내버스
죽도록 굶으면 죽고 죽도록 사랑해도 죽는데,
죽도록 공부하면 정말 죽지 않을까
죽도록 공부해본 인간이나
죽도록 해야 할 공부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저 광고는 결국,
죽음만을 광고하고 있는 거다
죽도록 공부하라는 건
죽으라는 뜻이다
죽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옥상과 욕조와 지하철이 큰 입을 벌리고 있질 않나
공부란 활활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도
자정이 훨씬 넘도록
죽어가는 아이들을 실은 캄캄한 학원버스들이
어둠 속을 질주한다, 죽기 살기로


- 이영광, 「죽도록」-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내일이다.
교육은 학교와 가정, 사회의 공동 책임이고 교육 현실은 그 결과다.
교육감 하나 잘 뽑는다고 '죽도록 공부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개근거지'라는 가치전도의 논리가 횡행하는 현실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떤 이를 대표로 뽑는가는 중요하다.
지난 대선 이후 우리는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지 않은가.
사소한 변화라도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넬슨 만델라가 말했다.
"교육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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