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사이에 새해도 2달 가까이 지났다.
한 겨울이었다가 입춘에 우수까지 지났으니 곧이어 대동강 물도 풀리고 개구리도 눈을 뜨리라.
새해엔 반드시 꼭 해야겠다는 결심까지는 아니어도 대충 이런 걸 해보리라 세웠던 계획이 몇 가지 있다. 정치인들 선거로 중간 평가를 받듯 그 계획들의 실천 여부를 꼽아 보았다. 늘 그래왔듯 결과는 신통찮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산 탓이다.
책을 좀 더 읽고 블로그에 매일 글을 하나씩 올리고 일주일에 새로운 음식을 한 가지 만들겠다는 건 그런대로 된 것 같으나 안 한 것은 그 몇 배다. 일주일에 한 번 산에 오르고 10킬로미터 달리기 하기, 그림 한 장 그리기 그리고 2주에 간단한 마술 한 가지씩 손에 익히기 따위가 그랬다.
2월이 가기 전에 계획을 결심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공개도 해본다.
공개를 하면 나의 습관화된 귀차니즘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으리라 기대도 해보면서.
그리고 밀린 방학숙제 하듯 그중 한두 가지를 해보았다.
먼저 그림.
내친김에 이중섭 그림도 흉내 내 보았다.
원본 그림을 보며 붓으로 그리고 채색도 했다.
원래 제목은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로 아래와 같다.
그리고 마술.
'막힌 병 속에 클립 넣기' 마술을 벼락치기로 한두 번 해보고 동호회에서 시범을 보였다.
회원들은 나의 서툰 손재주를 회원들은 대번에 눈치챘다.
마술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연습으로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야 하는 몸놀림이었다.
김성동의 장편 소설『만다라』에는 입구가 작은 병 속에 든 새를 꺼내는 것을 화두로 정진하는 스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그것에 빗대 이 마술을 마음대로 '거꾸로 만다라'라고 이름 붙였다.
뚜껑을 페트병 속에 넣는 또 다른 마술과 함께 손자저하에게 보여줄 것이다.
아무튼 오늘부터 다시 시작!
지금 당장의 즐거움을 미룰 이유가 없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씩 내일은, 나중은 무의미하거나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목욕탕에 모셔 가 등 한번 밀어드려야지
가까운 보쌈집에 가서
당신이 좋아하는 술 한잔 드려야지, 나중에
직접 쌈도 싸 드려야지
나중에 걸음걸이 나아지면 구두 한 켤레 사 드려야지
오래된 잡지책 보면서
해 뜨는 일출봉 물 지는 천지연 그리시는 아버지
나중에 어머니랑 함께 도일주 시켜 드려야지
그때는 할머니 산소에도 들러야지
돌아오는 생신날 그림물감도 선물해야지
부러진 대걸레 자루로 지팡이 쓰시는 아버지
멋진 놈으로 하나 사드려야지, 나중에
아버지도 나중에 가실 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그리 많았는데
대걸레 지팡이에 불편한 몸 의지한 채
아버지는 그냥 먼저 가셨다
할머니 산소도 가보지 못하고
- 김수열,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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