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봄눈

by 장돌뱅이. 2024. 2. 22.

밤 사이 눈이 많이 내렸다.
아침에 손자저하들과 창밖 풍경을 내다보았다.

"나무가 하얗네."
저하2호가 말했다.
봄기운에 눈이 서둘러 사라질까 염려되어 핸드폰에 몇 장 담아 보았다.

나무가 눈을 뜨면
저 눈은 자취도 없을 것이다.
나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눈.
자기를 깨운 것이
봄바람이거나 봄비거나 봄볕인 줄 알겠지.

나를 깨운 것은

내가 막 눈을 뜬 순간
내 앞에 있는 바로 그가
아닐지도 몰라.

오, 내가 눈을 뜨기도 전에
나를 바라보다 사라진 이여

이중으로 물거품이 된
알지 못할 것들이여.

- 황인숙, 「봄눈 온다」-

저하1호의 등굣길을 함께 하고 오자, 뒤이어 2호가 등원 준비를 하고 있다.
2호는 요즈음 갑자기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린이집 등하원 길에 몇 번씩 반복해서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저하들이 성인이 된 뒤에는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시간들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2호는 말할 것도 없고, 1호 저하는 2호 나이 때의 일은 물론, 불과 1년 전의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저하들에게 '내 눈앞에 있는 것' 들부터 기억하게 되는 어느 날이 생기겠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이 기억하는 것만이 생을 규정하는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믿어보기도 한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보름 쇠기  (0) 2024.02.25
영화 <<저스트 머시>>  (0) 2024.02.23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기  (0) 2024.02.20
우리는 완전 '편파'다  (0) 2024.02.19
모래알 하나  (0) 2024.02.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