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구급차는 '미모 미모 미모' 다

by 장돌뱅이. 2024. 3. 16.

손자저하 2호는 차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경찰차와 소방차, 구급차는 최고로 좋아하는 3종 세트다. 저하가 하는 놀이의 90%는 이 세가지 차들과 함께 한다. 그다음이 불도저, 포클레인, 덤프트럭 순이다. 어린이집을 오가는 길에 창밖을 주시하다가 이 차들 중에 하나를 만나면 소리를 지르며 환호를 한다.

저하와 함께 만든 소방서와 경찰서

대개의 긴급상황은 이렇게 전개된다.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치고 불을 지른다. 그 때문에 다친 사람도 생겨난다.
나는 전화를 걸어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고 구조를 요청한다.
경찰차와 불자동차 그리고 구급차가 언제나 함께 출동해야 하는 이유다.
(저하의 손이 둘뿐이므로 나머지 하나는 언제나 내가 들고 뒤따간다.)

용감한 저하는 '꼼딱 마(꼼짝 마)!'를 외치면서 도둑을 체포하고, 불을 끄고, 다친 사람들을 구해낸다.
<<타요버스>> 시리즈의 '소방차 프랭크' 책을 펴놓고 이 상황은 무한반복된다.
나는 세 번쯤 반복되면 질리기 시작하지만 지구를 지켜야 하는 저하는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저하를 위해 어린이집 등원을 할 때 지름길 대신 소방서를 경유해서 간다.
소방관들이 아침마다 장비들을 점검하는 모습을 저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경광등의 불을 번쩍이는 소방차가 긴 사다리를 공중으로 한껏 빼 올리거나 살수장치로 물을 뿌리기라도 하면 저하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섞인 탄성을 지르곤 한다. 119구급차가 옆에서 같이 불을 번쩍이면 경이로움은 최고에 달한다. 손자1호는 그 나이에 소방관의 허락을 받아 소방차를 만져보거나 직접 타보기도 했지만 2호는 뜻밖에 겁이 많아 쉽게 다가서지는 못한다.
그래도 매일 아침 소방차와 인사를 나누는 건 빼놓지 않는 일과다.

저하에 따르면 경찰차는 "삐용삐용삐용" 하는 다급한 소리를 내고 소방차는 "에에에 앵 ∼" 하며 달린다. 여기까지는 어린이집 친구와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구급차 소리에서는 서로 의견이 갈린다.
저하는 구급차가 "미모 미모 미모" 소리를 내며 달린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친구는 "위용 위용 위용"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하며 저하는 도대체 친구의 청력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자못 불만스럽게 말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정리해줘야(?) 할 의성어지만 우선 내가 나서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반복해서 들어봐야 했다. 결론은 "미모 미모 미모"였다.

구급차가 다양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지만 내가 편파적이라고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데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암! 지금부터 구급차 사이렌 소리는 절대 '미모 미모 미모'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떡볶이 횡설수설  (0) 2024.03.18
느그들 쫄았제?  (0) 2024.03.17
축구선수반 손자저하  (0) 2024.03.14
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불 건너기  (0) 2024.03.13
후회는 반성이 아니다  (0) 2024.03.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