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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소설 『그리고 봄』

by 장돌뱅이. 2024. 4. 3.

조선희의『그리고 봄』은  2022년 대통령 선거 이후 한 가족의 갈등과 화해에 관한 이야기다.

60대의 엄마와 아빠는 퇴직을 하였고, 맏딸은 직장에 다니고 아들은 취준생이다. 부모는 대선에서 민주당을 찍었고 딸은 3번을 아들은 이른바 '2찍남'이다.
아들을 제외한 가족은 한 때  심상정에게 후원금을 낼 만큼 팬이었으나 '지난 총선 이후 엄마 아빠는 정의당이 길을 잃었다고 팬심을 거뒀다.'

소설은 그런 시간적·정치적 배경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가족 간 정치적 의견 차이가 소설의 첫머리에 나온다고 해서 정치 문제나 그로 갈등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가 아니다. 소설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차, 퇴직, 취업, 연애, 동성애까지 다양하고 보편적인 우리 시대의 갈등이 축약하여 담겨 있다.

소설 속 부부는 나와 비슷한 나이여서 학창 시절의 생각이나 정치적 선택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정치적 시각도 비슷하니 요즈음 말로 하면 '싱크로율' 100%에 가깝다.

'난폭 운전의 버스에 앉은 승객'이 된 후 나도 당황, 공황, 절망 상태가 되었다. 정치적 코드가 같은 지인을 만나면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탄식하며 한편으론 우리가 지지했던 지난 정부의 '범생이 코스프레'를 성토하기도 했다. '신문 TV 심지어 포털 뉴스는 한동안 보지 않고 지냈다.

"선거 끝나고 윤한테 누가 이제 당선됐으니 경제 공부 해야 한다고 얘길 했더니 경제사범 많이 다뤄봐서 경제를 잘 안다고 하더래.", "국회의원 잡아넣어 봐서 여의도를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 "대통령 일도 잘 안 다고 생각했을 거야. 대통령을 둘이나 잡아넣었으니까.", "공공기관 감사 임원도 검사 출신들을 보내는데 검사가 모자라서 수사관급에서 간다네.",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새로 뽑는다는데 거기도 검사 보내는 거 아냐? 왕년에 뽈 좀 차본 검사 있지 않겠어?"

농담인 듯 농담 아닌 소설 속 대화가 심장을 스트레스로 채운다. 그 '스트레스로 터빈을 돌린다면 온 집안이 쓰고 남을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나날이 지난 2년이었다.
일본 검사총장을 지낸 요시나가 유스케가 말했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한다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젊은 시절 야학이나 농활, 자주 마시던  커피에 대해 '100% 수입산일 뿐 아니라 부르주아의 탐닉'이라고 자못  '단호하고 비장하게' 결론을 내리던 기억도 소설 속 부부와 비슷하다. 다른 도시에서 석 달 이상씩 살아보는 것, 손주와 놀아주는 것  같은 은퇴 이후의 소망이나 서울 근처 산행, 50+ 강좌 수강, OTT에서 보는 영화, 책 정리를 하는 일상은 그대로 아내와 나의 그것과 일치한다. 

지금은 나이 40을 넘어선 큰집 조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신동엽의 『금강』과 조세희의 『난쏘공』을 선물한 적이 있다. 얼마 뒤 조카가 나에게 말했다.
"삼춘, 요새는 애들이 이런 책 안 읽는 거 같아."

소설 속 남편은 책 정리를 한다. 아내와 나 역시 조카로부터 '낡은' 취급을 받은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중고서점에 팔기에는 가격이나 책 상태가 적당치 않고 책에 대한 애착도 있어서, 작은 도서관에 기증하고 일부는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기도 하다가 요즈음은 주위에 나누어주고 있다. 정리하는 방법과 책의 제목이 비슷한 것도 소설 속 부부와 우리가 같은 세대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자식 문제다. 
자식에 관한 속담이나 격언이 많은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무자식 상팔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품 안에 자식이다.
자식 가진 사람은 남 말 하는 것이 아니다, 등등.

소설 속 부부도 두 자녀와 관계에서 애증을 반복한다.
가장 속내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맏딸은 어느 날 동성애자임은 밝힌다. 아니 통보한다.
"엄마가 나를 너무 마이크로매니징하려고 하지 마. 엄마가 왜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해?"
엄마는 "그때 모녀 관계에 하나의 스테이지가 막을 내렸다" 다고 직감한다.

'2찍'이었던 아들은 엉뚱한 질문으로 집안을 소란스럽게 만들곤 한다.
"문재인 정부에 종북 세력이 많다는 거 사실이에요? 조국이 운동권 때 북한에 가서 김일성 만나고 왔대요." '태극기부대에 떠도는 가짜뉴스일 뿐'이지만 아들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눈치다.
"조국은 주사파가 아니었잖아. 북한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온 건 김영환인데 지금 완전 극우로 돌았잖아." 엄마는 서둘러 답을 하고, 남편은 조분조분 설명하다가  아들에게 "너는 머리가 없냐? 니 머리로 생각 좀 해" 하고 격분하여 핸드폰을 던지고 만다. 아들은 일반상식 공부를 하던 취준생 시절에 , "4.19, 6.29, 10.26, 5.18, 516. 숫자들이 비슷비슷해. 자꾸 5.16하고 5.18이 헷갈려." 하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아빠한테 한 시간 강의를 듣기도 했다. '대개 나이든 한국 남자는 스몰토크에 약하고 자신의 관심사에에 대해서는 장광설이 터지는 스타일'이라고 하던가.

사실 아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속마음은 '입사원서 백 번쯤 쓰고 백 번쯤 떨어진' 현실에 있고, 집을 나와 싸구려 지하 고시원에서 비장한 각오로 연습을 해도 끝내 장기하처럼 될 수 없다는 인디밴드에 대한 서글픈 '현타'에 있다.

"진짜 우리가 아들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 같애."
"진짜 아는 게 없었다고 봐야지."
"좌우지간 애들 키우면서 인내심 하나는 확실하게 늘어난 거 같애."

아들과 자신 사이에 놓인 것이 '작은 틈이 아니라 깊은 계곡'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야 엄마와 아빠는 깨닫는다. '험악한 군사정권 아래서도 푸른 꿈을 꾸었던 자신의 20대'처럼 아들 역시 '만만찮은 질풍노도 한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걸. '평탄한 세상에 방만한 인생 같지만 안으로 경쟁에 멍이 들고 긴장이 곤두선 젊음이라는 걸', 섣부른 '충조평판(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이나 '당연지사'의 설득은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걸.  대신 서로의 상처와 고통을 긍정하는 말이 필요하다는 걸.

나이 육십이면 인생의 칠부 능선이고 시야가 제법 트이는데 어느 코스냐에 따라 세상 풍경이 사뭇 달라 보인다. 네 사람에게는 네 개의 앵글이 있다. 서로 딴 데를 보고 있다면 말을 섞기 힘들 것이다. 다만 고개를 돌릴 줄 안다면 친구로 남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빠의 독백은 친구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자식과 관계에서도 필요해 보인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아직 감정이 잘 따라주지 않지만, '2찍'을 향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리고 또다시 봄이다. 소설 속 엄마가 말한다.

"나는 사람들 상식을 믿어.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면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이상한 데로 가지는 않을 거야."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어두운 역사를 넘어 '우아한 의회제도'를 정착시킨 독일처럼 우리도 이 봄엔 '혐오의 팬데믹' 대신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디딤돌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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