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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가객(歌客) 김민기

by 장돌뱅이. 2024. 7. 23.

유튜브캡쳐

"김민기 씨가 죽었대!"
아침에  아내가 말했을 때 내가 아는 김민기라는 사람은 한 명뿐이지만 놀라서 물었다.
"누구? 아침이슬 김민기?"

핸드폰을 꺼내 나도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단톡방에 소식을 전했다.
친구의 답변이 왔다. 김민기의 노래와 그걸 부르던 시절이 생각났다고 했다.
유신 시절에 김민기의 노래는 불온시 되었다.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는 나오지 않았고 음반은 구할 수 없었다.
다방에서만 어쩌다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학교 앞 튀김집에서 취기가 오르면 우리가 부르곤 하던 노래는 <강변에서>였다.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온다
늘어진 어깨마다 퀭한 두눈마다 빨간 노을이 물들면 왠지 마음이 설레인다

강 건너 공장의 굴뚝엔 시커먼 연기가 펴 오르고순이네 뎅그런 굴뚝엔 파란 실오라기 펴 오른다
바람은 어두워가고 별들은 춤추는데 건너 공장에 나간 순이는 왜 안 돌아오는 걸까

높다란 철교 위로 시커먼 연기가 펴 오르고강물은 일고 일어나 작은 나룻배 흔들린다
아이야 불 밝혀라 뱃전에 불밝혀라 저 강 건너 오솔길 따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 저어라열여섯 살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 저어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아이야 불 밝혀라 뱃전에 불밝혀라 
저 강 건너 오솔길 따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공장에서 돌아오는 노동자 순이와 그가 사는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은 애정을 담고 있지만 정서적 일체라기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애매모호함이 서산에 걸린 (커다란) 저녁 해의 이미지와 함께 몽환적으로까지 느껴져 나는 <아침이슬>보다 더 자주 불렀던 것 같다.

"오늘은 그냥 김민기 노래를 틀어놓고 지내는 게 좋겠다." 아내가 말했다.
<친구>, <아침이슬>, <가뭄>, <서울로 가는 길>, <이 세상 어딘가에>, <아하 누가 그렇게>, <늙은 군인의 노래> 등등. 그의 노래는 70년대라는 질식의 시대를 견디게 해주는 힘이고 위안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절망스런 탄식이 아니라 결연한 선언 같은 <친구>의 이런 대목은 지금도 들어도 서늘하다.
하루종일 그의 묵직한 목소리의 노래를 틀어놓은 채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에게 감사했다.

수추는 사람들의 구름 속에서 앉아 조용히 노래를 흘려보냈다. 그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고 힘을 솟구치게 해서 살아 있는 환희를 갖도록 했다. 노래하는 그의 얼굴은 사람들에게 무언지 모를 믿음을 전파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의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몸짓에서 몸짓으로 퍼져나가 모든 사람들이 목청을 합하여 저자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렀다. 수추의 거문고 소리와 노랫소리는 저자에 모인 군중들의 제창에 먹히어 들리지 않았으나, 그 곡조의 가락과 춤은 그대로 수추의 것에서 모든 사람들의 것으로 합쳐졌던 것이다. 

- 황석영 단편소설, 「가객(歌客)」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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