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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베트남

2024 베트남 - 냐짱

by 장돌뱅이. 2024. 9. 7.

'냐짱놀이' 시작.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바닷가부터 걸었다.

숙소는 해변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가까왔다.

바다는 수평선 쪽 크고 작은 섬들 몇 개를 띄우고 긴 해변 사이로 다소곳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 바다를 따라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진 해변은 오래 걸어도 힘들 것 같지 않았다.
현대식 고층건물이 줄지어 들어선 해변도로는 잘 정리되어 있고 해변과 사이는 야자나무가 시원하게 솟은 예쁜 공원이 만들어져 이른 아침부터 냐짱 시민들이 나와 운동이나 춤 같은 레크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동남아 여느 해변처럼 물건을 사라고 접근하는 잡상인들도 없어 한마디로 깔끔했다.

베트남에서 한달살기를 한다면 기왕에 마음먹었던 달랏에서 냐짱으로 바꾸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닷가를 벗어나 시내 쪽으로 방향을 틀어 냐짱성당으로 갔다.
냐짱 사람들은 언덕 위의 성당이라는 뜻으로 '냐터 누이(Nhà thờ Núi)'라고 부른다고 한다.
성당 하면 연상되는 뾰족뾰족한 첨탑 대신에 사각 형상의 탑이 튼실하게 솟아 있었다.
1934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시계가 귀한 시절이었을 것이니 탑 상단부에 달린 시계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성당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한 할아버지가 진입로 한가운데 모금통을 놓고 돈을 내라고 했다.
그 옆에 기부금 어쩌고 하는 입간판이 한글을 포함한 몇 개 언어로 쓰여 있었다.
산책길이라 돈을 가져오지 않아 양쪽 주머니를 까보이며 나중에 아내와 함께 와서 주겠다고 말을 하고 파파고로 번역 문장을 보여주어도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며 막아섰다.
기부금이나 입장료가 아니라 마치 통행세를 걷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포기를 하고 접근 가능한 성모상 앞에서 짧은 기도를 하고 돌아서야 했다.
돌아와 구글을 들여다보니 그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글이 많이 올라 있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인들에게만 입장료를 강요한다는 글도 보였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성당의 배려라면 좀 다른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행 오면 아침식사를 거의 빠지지 않고 챙겨 먹는다. 조식포함이라는 본전 생각에 투철해서가 아니라 아내와 둘이서 나누는 한가로운 아침시간이 좋기 때문이다.

여행의 후반부에는 늘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에프터눈티), 저녁 식사까지 클럽라운지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바깥 식당에서 느낄 수 있는 현지의 맛과 분위기 대신에 가까운 편리함과 직원들의 상냥한 서비스 안에서 쉬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엔 라운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우리는 매번 직원들의 집중적이고 개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냐짱에서 이번 베트남 여행을 온 이래 처음으로 수영을 했다.
호찌민과 무이네에서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수영 타이밍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매번 그래왔듯 수영 동영상 찍는 놀이를 하고 책도 읽었다.

저녁을 먹고 짬흐엉타워(Tháp Trầm Hương)을 향해 해변을 따라 걸었다.
베트남의 국화인 연꽃을 형상화한 탑으로 냐짱의 상징물로 세웠다고 한다.

탑 옆쪽으로는 광장이 있어 현지인과 여행객들이 섞여 밤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탑 맞은편으로는 야시장이 있다.
건너가 보니 한국시장으로 착각할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다.
상인들도 한국인에게 특화된 듯 "언니! 오빠!"라는 말로 호객을 했다.
상점에는 우리말 설명이 많이 붙어 있었다.
야시장에는 베트남산의 먹거리와 의류, 가방 외에 크록스 신발도 많이 팔았다.
생각보다 가격이 매우 싼 것 같아서  짝퉁으로 생각되었다.

시장이 크지 않아 천천히 구경하며 걸었는데도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끝에 닿았다. 그 끝머리 갤러리아 9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에는 '할인매장', 명품 가방', '최상급, 최저가'라는 한글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었다. 냐짱 지역의 풍물 시장이라기보다는 오로지 한국인 여행객을 겨눈 짝퉁 시장인 듯했다.

숙소로 돌아와 냐짱과 크록스 등을 검색하던 아내는 내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놀라워했다.
화면에는 어디 어디에 가면 싸게 살 수 있다던가 품질도 좋다는 동영상과 후기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냐짱의 크록스는 아내와 나만 몰랐던 공공연한 사실인 것 같았다.
많은 신발 중에서 유독 크록스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크록스 신발 공장이 베트남에 있기라도 한 것일까?  모를 일이다.  

아내는 오래 전 미국에서 크록스 샌달을 샀다.
동남아 여행을 다닐 때마다  가지고 와서 신기 때문에 이번에도 빼놓지 않았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냐짱에서 마주치는 크록스 제품 중에 진품은 당신 게 유일할 지도 모르겠다."

냐짱에서 한국인 여행객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 같다.
도처에서 한국어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었다. 커피숍에도, 옷가게에도, 신발가에에도, 반미를 파는 노점상에도, 마트에도, 길거리 담벼락에도  한글 설명이 붙어 있었고 숙소 클럽 라운지에는 한국인을 위한 특별 메뉴판도 있었다. 손자저하들과 나눠 먹을 열대과일 과자를 사러 호텔 근처 롯데마트에 갔더니 마치 한국 동네 슈퍼에라도 온 것처럼 온통 다 한국인들 뿐이었다. 

누군가 냐짱은 한국인이 먹여 살린다,고 했다.
그런 식의 표현은 자칫 현지인을 모욕하는, 우월감의 표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왜 먹여 살린단 말인가.
하지만 한국인 여행객들이 냐짱의 소비 경제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사실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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