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돌아왔다는 것은 불을 꺼도 필요한 물건을 집을 수 있는 구조의 집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어디든 위치와 방향을 특별히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분명히 자각하고 있는 거리를 걷는 것이고 의도하지 않아도 낯익은 이웃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익숙한 맛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 모든 무덤덤한, 특별한 탄성이 나올 리 없는 것들을 합쳐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른다.
산다는 일은 맹물 같은 일상으로 짜릿한 일탈의 갈증을 달래는 것이다.
여행 전 비운 냉장고를 평범한 '집밥' 재료들로 다시 채웠다.
두부, 콩나물, 호박, 당근, 감자, 양파, 대파 등등.
1. 들깻잎전
이건 여행 후가 아니라 여행 전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떠나려는데 남은, 냉동실에 얼릴 수도 없는 들깻잎 몇 장.
샐러드를 만들고 남은 것이다. 기름에 튀기거나 부치면 거의 모든 재료는 전이 될 수 있다.
깻잎과 양파를 채 썰어 섞고 부침가루(밀가루)와 물을 적당히 넣는다.
요리를 배우면서 레시피 중에 '적당히' 혹은 '적당량'이라는 말을 싫어했는데 어쩔 수 없다.
나는 전의 바삭함을 높이기 위해 부침가루를 많이 넣지 않는다. 물과 재료와 합쳐져 끈적한 점도를 만들 정도만 넣는다. 먹다 남겨둔 맥주나 참치액을 넣는다는 레시피도 본 적이 있다.
부침가루에는 간이 들어 있다. 아내와 나는 반죽에 별도의 소금 간은 하지 않는다.
나중에 싱거우면 양념장을 만들어 찍어 먹으면 된다.
2. 북어콩나물국
영원한 해장국 재료 콩나물과 북어.
요즈음은 술을 별로 먹지 않아 해장의 효용성은 떨어졌지만 은근한 맛이 좋아 가끔씩 식탁에 올린다.
- 북어포 1줌(1줌? 애매한 양이다. '한 손으로 가볍게 쥐었을 때의 양'이라는데 아내와 나는 손의 크기도 다르거니와 같은 사람이라도 쥐기에 따라 한 줌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이다. 어쩌겠는가 레시피에 그리 나와있는데 그냥 적당량이다.) 물에 살짝 불려 달군 냄비에 참기름 1S를 넣고 약불에 살살 볶다가 멸치육수(6C)를 붓는다.
- 국물이 끓으면 콩나물 2줌과 두부 반 모를 넣고 다시 끓어 오르면 다진 마늘 0.5S와 소금 후추를 적당히 넣은 후 어슷하게 썬 대파 1/3대분을 넣고 살짝 더 끓이면 된다.
*유난히 '적당히', '살짝' '한 줌' 등 애매한 계량 치를 많이 사용했다. 대파 1/3대도 그렇다.
숫자로만 쓰여 있을 뿐 전혀 참고가 되지 않는다. 레시피에 나와 옮겼을 뿐이다.
얼마만 한 대파의 1/3인가? 초록색 부분부터 1/3인가 아니면 흰색 부분부터인가?
그냥 적당량 해도 무방하겠다. 나는 파를 좋아해서 많이 넣는 편이다.
요리에서 '적당히'는 영화 <<황산벌>>에 나오는 전라도 사투리 '거시기'처럼 용도가 너무 다양하다.
나중에 내가 요리의 고수가 되면 바로 잡겠다.
북엇국에 관한 나의 롤모델은 서울 무교동에 있는 식당 "무교동북어국집"이다.
오직 북엇국만으로 6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켜온 서울을 대표할만한 노포식당이다.
물론 롤모델일 뿐 나의 솜씨로는 따라갈 수 없다. 작년인가 냉장고에 사골국물이 있어 북엇국을 만들었더니 아내가 놀라면 그곳에서 먹는 것과 거의 똑같다는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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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육개장
- 무(200g)는 2cm 정도로 네모지게 썰고 대파(4대)는 굵은소금(1S) 정도를 넣은 물을 끓여 1분 30초 정도 데친다.
- 냄비에 다진마늘 2S, 고춧가루 5S, 까나리액젓 7S, 참기름 1S, 맛술 1S과 물에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소고기 양지머리(200∼300g)를 넣고 약불에 타지 않게 볶다가
- 물 7C 넣고 센불로 높여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뚜껑을 덮어 20분 정도 더 끓인다.
- 물을 넣을 때 토란대나 고사리를 적당량 넣는다. 나는 누님이 보내준 토란대를 삶아 넣었다. 콩나물을 넣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데쳐 놓은 무와 대파를 넣고 조금 더 끓이다가 참치액젓으로 간을 한다.
* 이 레시피의 양은 5인분 정도 된다.
4. 감자강된장
- 멸치다시마육수를 1컵 정도 만든다.
-감자와 양파 각각 150∼200g, 양파 150g을 잘게 다진 후(혹은 취향에 따라 2 ×2cm 정도로 해도 된다.) 식용유 2T를 두르고 중간불에서 2∼3분간 볶는다.
- 고춧가루 1T, 맛술 2T, 고추장 1T, 된장 5T(염도에 따라 맛을 보며 가감), 다진 표고버섯 1개, 멸치육수룰 붓고 중불에서 15분 정도 끓인다. 불을 끄고 참기름, 통깨를 넣는다.
- 밥 위에 강된장을 올리도 다른 채소도 올려 비벼 먹는다. 나는 이번에 볶은 호박과 양파를 곁들였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손자저하맞이 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
아내는 저하들이 최고로 좋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갈비찜을, 나는 어른들이 먹을 다른 음식을 생각 중이다. 명절엔 일상과는 다른 음식이 필요하다. 저하들에게 맛이 있는 명절을 만들어주고 싶다.
* 이상 C는 컵(200ml), S는 밥숟가락, T는 큰술(테이블 스푼), t는 작은 술(티 스푼)
* 별도 표기 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경우 2인분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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