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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꿈

by 장돌뱅이. 2025. 3. 7.

은퇴를 하고 백수가 된 뒤부터 가급적 새 책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책장 속의 책들을 다시 읽고 주변에 나눠주거나 버리고 있다.
새로운 책들로부터 첨단의 지식을 얻으면 좋겠지만 돌머리에 기억력도 부실한 나는 지난 책을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것 같아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엔 책장을 없애는 것이 목표이다.

가끔씩 독서 모임용 등으로 필요한 책은 주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있다.

며칠 전 쓰레기를 버리러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갔다가 버려져 있는 책들을 보게 되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어 뒤적거려 보았다.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경제전망에 관한 책들 사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이 있었다.
유시민이 정리한 대필 자서전 『운명이다』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노대통령 생전에 나눈 인터뷰를 기록한 책이었다. 거의 읽지 않은 듯 책장이 빳빳했다. 선 채로 몇 장을 들춰보다 집으로 가져왔다.

"정 필요하면 새 걸 사든가 하지? 웬 쓰레기장에서 다······"
아내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나는 미국에 주재를 하고 있었다.
저녁 시간 아내와  차를 타고 프리웨이를 달리고 있는데 딸아이가 전화로 알려 주었다.
"안돼!"
아내와 나는 비명을 지르며 집으로 달려가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딸아이에게 노무현의 비극은 충격이었고 사회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꿈꾸는 5월

딸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춤동아리에 들고, MT를 가고, 술을 마시고, 배낭여행을 하며 별다르게 사회에 눈을 주는 일 없이(줄 틈 없이) 즐기듯 대학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

jangdolbange.tistory.com

 87년 6월항쟁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치러진 대선은 야권 분열로 허무하게 도돌이표를 찍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요?"
 술집에서 울먹이는 후배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우리 사회에 기존의 보수 여당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현실적인 힘은 미미해도 그걸 키워나가야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그 이후 이른바 '운동권' 인사들이 대거 야당에 합류할 때  나는 그들의 '정치권력 획득'이라는 대의를 크게 믿지 않았다.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또아리를 틀어온 기존의 정치구조라는 블랙홀에 의 진정성이 빨려들어갈 것 같아서였다. 5공 청문회에 노무현 의원이 이른바 '스타'로 부각되었을 때조차도 조금은 냉소적이었다. 
불안한 예감이 맞기라도 하듯 실제로 '3당 합당'이라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고  기존의 정치권으로 들어간 많은 인사들은 별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그 나물에 그 밥'으로 '평준화' 되었다.
오히려 엄청난 반전의 '변절'로 기억에 남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마음에 담기 시작한 것은 자기가 누릴 수 있었던 순탄한 정치적 순탄대로의 기득권을 던져버리고 이른바 '험지'인 부산으로 몇 차례 자청하여  출마를 하고 낙선을 하면서부터였다.
특히 2000년 4월 총선에서 떨어지고 나서 홈페이지에 올린 그의글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또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노사모가 결성된 것도 그 직후였다.
그는 늘 정치인으로서 원칙과 신뢰성, 일관성을 지키려고 했다.
망국적 지역감정 타파는 그가 세운 목표이자 원칙 중의 하나였다. 

원칙을 지키면서 지는 것과 원칙을 어기면서 이기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나은지는 상황과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서 패배하는 것이다. (···) 원칙을 지키면서 패배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잃고 패배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객관화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과 의미를 포용할 줄 아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옳다고 믿어서가 아 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한 것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오류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하는 대통령 자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웠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어쩔 수 없이 보내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해 효과적인 외교를 했다. 애초 미국의 요구는 1만 명 이상의 전투병력 파견이었다.  청와대 안보팀과 국방부는 최소 7,000명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참모들이 파병 자체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론은 전투병 3,000명을 보내되 비전투 임무를 주는 것이었다. 이런 절충적 해법을 찾고 미국의 양해를 구하는 데서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파병 반대운동이 큰 의지가 되었다.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운동과 매우 비판적인 국민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도 이런 수준의 파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모든 소리를 '입틀막'으로 누르려는  권력자와는 애초부터 그릇의 크기가 달랐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와 축구,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장시간 떠들어도 될 만큼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자서전 말미에 붙은 유시민의 글을 요약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는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다. 화려한 학력도 없었다. 힘있는 친구도 없었다.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 반칙을 자행하는 자에 대한 분노.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열정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연민과 분노와 열정의 힘만으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처음에 혼자였던 그는 마지막에도 혼자였다.

30대 중반을 넘긴 평범한 변호사 노무현을 양심수와 노동자를 돕는 인권운동으로 인도한 것은 그 어떤 빛나는 이념도 아니었다. 정의와 생존권을 지키려고 싸우다 박해받는 동시대인에 대한 소박한 연민이었다. 불의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혼자 안온한 삶을 누리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고 시대를 외면하려 했을 때 가슴 밑바닥을 때린 수치심이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그는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정치를 시작했다. 
만인의 인정을 받을 만큼 충분히 유능하고 지혜로운 대통령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민주화운동가로서,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많은 일을 해냈다.

검찰이 그를 정조준한 수사와 비열한 여론 재판을 시작했을 때, 그는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포기했지만 사실만은 지키려고 애썼다. 그것은 노무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사실'을 지 킴으로써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명예를 반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헛된 희망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검사들과 언론은 그를 부패하고 파렴치한 인물로 만들었다.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침을 뱉었다. 이것이 죽음보다 고통스러웠기에 그는 외쳤다.
"노무현을 버리셔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설령 사람들이 모두 그를 버린다 해도 상황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자신이 사라지는 것 말고는 모두를 이 수렁에서 건져 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떠나 버린 것이다.

그는 언론의 부당한 특권, 언론의 '조폭적' 권력 행사, 언론인들의 오만에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도전했던, 단 하나뿐인 정치인이었다. 그가 비참하게 눌려 죽어 버린 이 나라에서, 앞으로 또 그런 도전을 감행하는 정치인이 나올 수 있을까?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언론은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된다. 그의 죽음 앞에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그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떠난 후에도 여전히 그를 항해 침을 뱉고 돌을 던진다.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 꿈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 꿈이 결국 그를 부엉이바위에 오르게 했다. 2009년 5월 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1987년 6월항쟁 은 우리 민주주의의 청춘이었다. 양김 분열과 3당합당.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거치며 모두가 중년으로 노년으로 늙어 가는 동안,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았다. 잃어버린 청춘의 꿈과 기억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되살려 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이를 지니고 살았던 그는, 반칙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대한민국을 그런 믿음 위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그 믿음이 국민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한, 노무현이 대통령일지라도 그 시대는 '노무현 시대' 일 수 없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마저 이루기 위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시민으로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가 그 꿈을 모욕하고 짓밟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는 생명을 버렸다. 그가 생명을 던진 그 자리에,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의 꿈만 혼자 남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이 그렇게 살아 있는 한. 그를 영영 떠나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


머지않아 다시 대선이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그랬듯 또 많은 말들이 우리를 현혹하고 흔들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노무현의 생각과 행동은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산다.
쓰레기장에서 우연히 줏은 그의 책만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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