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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바람 부는 제주1

by 장돌뱅이. 2013. 3. 27.

 

옛날 선문대할망이라 부르는 선녀가 있었다. 키가 하늘만큼 큰 거인인
이 할망은 치마폭에 흙을 담아 제주도와 한라산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
신발에서 떨어지거나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조금씩 새어나온 흙이 360개나
된다는 제주도 오름이 되었다.

할망은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한쪽 다리는 관탈도(추자도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무인도)에, 또 한쪽 다리는 마라도에 놓고, 성산일출봉을 빨래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 삼아 빨래를 했다. 한라산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끝이 뾰족하여 잠자리가 불편하자 주먹으로 쳐서 납작하게 만든 것이 백록담이라고 한다.
옷이 한 벌 밖에 없어서 매일 빨래를 해야 했고 밤에는 해진 데를 꿰매야 했다고
한다. 성산 일출봉을 오르는 중간에 할망이 바느질을 하기 위해 불을 밝혔다는
거대한 등경돌이 있다.

전설의 학술적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머릿속에 그려지는 할망의
모습이 시원시원하고 호쾌하면서도 아기자기 하고 정겹다. 육지와 제주의 역사적
관계와 그 관계 속에 제주사람들이 오랫동안 감내해 와야 했던 고통을 빼고 본다면,
제주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도 그런 느낌이 함빡 묻어나온다.

제주에는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했다. 바람과 돌은 각각 바다와 산이 만든 것이다.
특히 바람은 그 자체가 자연환경이면서 또 다른 자연을 규정하는 요인이고
나아가 제주의 인문환경을 만들어낸
강력한 요인이었다. 집의 구조와 마을의 모습,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바람을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바다는 일터이자 바깥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였고 바람은 그 소통을 가능케 하는 힘이었다.

제주도에 유달리 여자가 많은 데도 바람은 기여를(?) 했다. 옛글에 제주도는 “바닷길이 험하여 공사(公私)로
물건을 운반하고 판매하는 배가 사나운 바람과 세찬
비로 늘 표류하고 침몰하는 일이 많아서 늙은 과부와
젊은 과부가 항상 농사를 지기
때문에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다고 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했다.
바다에서 사라진
남자들, 그래서 남자는 무덤의 수도 적었다.
최근에 읽은 김훈의 소설에 그런 상황을 묘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아침에 순하던 바람이 한낮에 갑자기 뒤집혀서 멀리 나갔던 배들이 허다히 돌아
   오지 못했다. 갑자기 먼 바다에서 바람이 일어서면 수평선 쪽의 물빛이 들끓었다.
   그런 날, 날이 저물어도 배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물가에 나와
   모닥불을 피우고 징을 때리면서 밤을 새웠다. 봄에는 남풍에 데워진 바닷물이
   습기를 내뿜어 짙은 안개가 끼었다. 안개가 바람에 밀려올 때는 바다도 하늘도
   보이지 않았고, 구름에 갇혀 눈먼 세상에 물소리만 들렸다. 서둘러 돌아오던
   배들이 길을 찾지 못해서 포구를 지척에 두고도 접안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가 징을 때려서 배를 유도했으나, 소리만으로 물길을 잡기는
   어려웠다. 배들은 하루 내내 물 위에 떠 있다가 안개가 걷힌 뒤에야 돌아오거나
   안개 속으로 영여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물에 쏠려나간 배들이 먼바다에서 깨져서
   물에 불은 시체나 나무토막이 며칠 후에 물가에 밀려오는 일도 있었다. 날이 밝아도
   배가 돌아오지 않고. 다시 날이 저물어도 배가 돌아오지 않는 저녁에 물가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제가끔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오르지 않았고 마을은 어둠 속에서 고요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집에서 눌렸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면, 울음은 이 집 저 집으로 번져갔다. 여인네들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찢었고 늙은이의 울음은 메말라서 버석거렸다. 마을은 밤새 울었고, 놀란
   개들이 짖어댔다. 슬픔은 비빌 곳이 없어서 지층처럼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 쌓였고,
   사람들은 다시 바다로 나아갔다.
                                                          -김훈의 소설, “흑산” 중에서-

소설은 남해안의 섬 이야기지만 제주도 이야기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이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고 고기밥’이라고
하며  ‘궁둥이를 차고’, ‘딸을 나면 돼지 잡아 잔치를 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자연재해보다 가혹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 만들어내는 재난이었다.
원래 제주도에서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 전복을 채취하는 일은 포작(鮑作)이라
부르는 남자의 몫이었다. 여자들은 주로 해조류 채취를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과다한 전복 진상과 군역에 시달린 남자들이 육지로 도망을 하면서 물질은 여성의 몫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조선후기 전복을 따기 위해 엄동설한에 바다로 뛰어드는 해녀들을 직접 본 뒤로
충격을 받아 전복과 소라를 먹지 않았다는 제주목사도 있었다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고 제주의 여인들은 중앙 정부에까지 이어진 벼슬아치들의 가혹한 수탈에 몰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바다 속 열명길을 평평한 육지처럼 밟고 다녀야’ 했다.
훗날 제주도를 벗어나 물론 부산 울릉도 흑산도 심지어 일본이나 중국까지 행동반경을
넓힌 제주 해녀의 활동력은 그런 극한의 생존 조건을 이겨내며 체득한 강인함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제주의 사람에 의한 수난은 먼 옛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인
제주4.3항쟁 기간에는 당시 제주 인구의 9분의1에 해당되는 3만여 명이 희생 되었다.
그 대부분이 육지에서 보낸 ‘토벌대’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고 한다.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짧게 제주를 다녀왔다.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하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눈과 마음이 취했고
제주의 특산물로 만든 음식엔 혀가 취했다.

아내와 딸아이의 팔짱을 끼고 바닷가를 거닐었고, 부드러운 능선길의 오름을 올랐다.
맑은 웃음이 바람 속으로 흘러갔다. 심각해지거나 진지해질 필요가 없이 보낸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곳으로 떠나거나 머무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여행때문에 비롯된 상상이나 단상도
여행이다. 윗글과 같이 책에서 얻는 내용도 여행이다. 기억하는 한, ‘한번 여행은 영원한 여행’이
된다. 우리의 발길이 머문 몇 곳에 대한 짧은 메모를 덧붙인다.


제주유나이티드 축구단 숙소

딸아이 덕분에 묵게 된 제주유나이티드 축구단의 숙소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곳이었다.
호텔과 같은 서비스는 전혀 없다. 청소는 매일 해준다고 했지만 오래 있을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거절했다. 그냥 조용한 집과 같은 분위기였다. 바로 옆집에 브라질에서
온 축구선수가 살았다. 한 집 건너서는 유명한 신영록 선수의 집이었다.
안타깝게도 신 선수는 지난 5월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그 이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뛰어난 공격수였다. 월드컵 예선도
진행 중인데, 골 결정력이 뛰어난 그가 다시 활기차게 운동장을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성산일출봉

한라산만큼이나 제주도를 대표하는 곳으로 사진이나 포스터에서 눈에 익은 곳이다.
원래 숲이 무성하여 청산(淸山)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형상이 거대한 성채
같다는 뜻의 성산(城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을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적인 관광지답게 오르내리는 계단은 관광객
들로 붐볐다. 특히 중국인들이 많았다. 정상엔 가파른 오름길과는 달리 8만여 평의
평평하고 넉넉한 원형의 분화가가 있다. 분화구 둘레에는 올망졸망한 봉우리가
들쑬날쑥 하다. 날이 맑았다면 분화구 경계선 너머로 떠 있는 파란 바다가 선명하게
보였을 것이나 흐릿한 날씨는 바다와 하늘의 구분을 어렵게 했다. 
가까이서 볼 때보다 거리를 두고 볼 때가 더 아름다운 곳이 있다.
내겐 성산일출봉이 그렇다. 한번쯤 올라보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용눈이오름

용눈이는 드러누운 용의 자태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완만하고 경사에
부드럽게 휘어진 능선길과 능선에서 보는 전망이 전 방위로 아름다운 곳이다.
능선길에선 성산일출봉이 먼 풍경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이
제일 만족한 곳이다. 원래 ‘오름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에 유혹되어 다랑쉬오름을
목표로 했다가 좀 더 걷기에 편안한 쪽을 택한 것인데,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아내와
딸아이도 좋아했다.

하산길에 길을 거슬러 오르는 소떼를 만났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오름의 주인이라는
것처럼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긴 대열을 지어 올라왔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발걸음
이어서 우리는 길을 내주고 녀석들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용눈이오름은
성산 일출봉과는 반대로 멀리서 보아야 할 곳이 아니라 반드시 올라가야 할 곳이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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