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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한강변 걷기

by 장돌뱅이. 2013. 4. 6.

자랑스런 아내의 두 발


주말에 딸아이가 친구들과 1박 2일로 래프팅 여행을 떠나자
아내는 내게 평소 하던 당일치기 여행이 아니라
모처럼 1박 2일의 장거리 여행을 제안했다.  

전라도의 진도와 구례, 군산이나 충청도의 안면도 쪽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무슨무슨주의니 경보니 하는 일기예보가 방해를 한다.
일기예보 때문에 어떤 여행을 취소해 본 적은 없었지만
올 여름의 비는 좀 지긋지긋한 바가 있어서
그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집에서 가까운 한강변 걷기였다.
걸을 수 있을만큼 걷다가 지치거나 날씨가 험해지면
언제든지 탈출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한강변의 편리함이 고려된 결정이었다.

양재역에서 양재천-탄천-잠실대교-광진교를 건너 - 청담대교의 강북쪽 끝단을
일차 목표로 잡았다. 총거리 20km로 약 5시간 정도가 예상되었다.
아내는 예전에 잠실대교에서 여의도까지 같은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어
무난한 거리라고 생각이 되었다.
나는 좀 더 욕심을 내어 청담대교에서 성산대교까지 추가 20km를 제안했다.
아내는 일단 일차 목표를 달성해본 후에 결정하자고 했다.

아침 10시에 양재역에 도착하여 걷기를 시작했다.
빗줄기가 집에서 출발할 때보다 굵어져 있었다. 서울경기 지역은 한두 차례 약간의 비가
있을 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세차게 내렸다.

아내가 영동1교를 건너고 있다. 맞은 편에 양재시민의 숲이 보인다.

양재천은 맑은 물과 초록의 숲이 잘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좋았다. 날씨 탓에 사람들이 뜸해 길은 한가했다.
나는 아내에게 7080의 옛노래를  낮은 목소리로 불러주었다.

자그마한 논도 만들어져 있었다. 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벼가 콘크리트 빌딩의 도시를 한결
환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걷기 시작한지 한 시간이 조금 넘어 양재천이 탄천과 만나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탄천을 거슬러 오르면 성남에 닿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한강변에 이르게 된다.
아내와 나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탄천의 물흐름을 따라 내려 갔다.
 

탄천을 건너는 곳이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리 건너 편에는 잠실올림픽경기장이 있다.

탄천이 넓은 한강과 만나는 지점이다. 일차 목표인 청담대교가 보인다.

탄천을 빠져 나와 동쪽으로 향했다. 12시 15분 잠실대교 아래서 빵과 오이로 점심을 대신했다.
광진교에서 강을 건너기 위해 잠실철교-올림픽대교-천호대교를 지났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비는 멈추지 않고 내렸다.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 아내와 나의
바지 앞쪽은 흥건하게 젖어 버렸다. 언제부터인지 신발도 완전히 젖어버려 발이 퉁퉁 불어버렸다.

한강을 건너 강북쪽으로 가기 위해 건넌 광진교.

광진교를 건너다 바라본 한강. 천호대교 너머로 올림픽대교의 상징물이 보인다.
광진교를 건너
강북 쪽에 도착한 시간이 13시 15분이었다.

14시 20분 청담대교 아래 도착. 간식으로 포도를 먹었다. 일차 목표를 완수하게 되었다.
걷기를 계속할까 물으니 아내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발을 말리기 위해 젖은
양말을 벗었다. 아내의 발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다.

그것이 별반 소용은 없겠지만 나는 아내의 수고로움을 위해 또 다시 옛노래를 불러주었다.
성수대교가 멀리 보인다.

중량천을 건너는 다리. 비가 조금씩 지겨워지고 우산을 든 손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날씨를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았다. 자전거타기, 달리기, 걷기외에 강물 속에서는
요트와 보드, 그리고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15시 45분 동호대교를 거쳐 16시 05분 한남대교에 도착했다. 한남대교 밑에서 3번째 휴식을
했다. 아내가 물집의 고통을 호소했다. 나 역시 젖은 운동화때문에 퉁퉁 불은 발이 꽉 끼면서
살이 접혀 물집이 생겼다.

반포대교 아래 잠수교의 모습이다.

16시 55분 동작대교를 지났다. 브이자를 그리는 아내의 모습에서 아직 여유가 느껴진다.
동작대교에 이르는 6시간 동안 3번의 휴식을 가졌으나 이후로 아내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발밑의 물집 때문에 발걸음이 늦어지고 휴식이 잦아졌다.

아내를 독려하는 나의 노래는 '님을 위한 행진곡', '선봉에 서서' 등의 행진가 풍으로 바뀌었다.

17시 50분 원효대교를 지났다. 이후 모든 다리 밑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18시 10분 마포대교 아래서 아내의 새*끼발가락의 물집이 터졌다. 아내와 나의 발걸음은 더욱
늦어졌다.

당산철교가 바라보이는 지점에 도착하자 구름 사이로 붉은 노을이 타고 있었다.

19시 50분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어져 있었다.
9시간 50분 동안 40키로미터를 걸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이끌고 온  두 다리와
발에 감사하며, 축배를 들었다.


(20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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