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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지난 국토여행기 46 - 강원도 태백

by 장돌뱅이. 2013. 5. 22.

폐광에서 샘솟는 새로운 꿈
어느 날 아침 아내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넓은 해바라기 밭의 풍경을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텔레비전의 화면은 노란 해바라기 꽃이 가득한 넓은
언덕을 화사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내게는 해바라기에 앞서 그곳의 지명이
태백이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요즈음 태백이 저렇게 변했나?”

‘7080’의 내게는 태백이라 하면 “까만 집, 까만 길, 까만 문, 까만 차, 온통
새까만 탄광
마을”(김민기의 노래극 「아빠 얼굴 참 예쁘네요」중)이 떠오르고,
특히 끝 모를 깊은
굴속에서 인차(人車)를 타고 나오는 ‘까만’ 얼굴의 광부들이
먼저 떠오른다.

석탄산업 합리화사업으로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은 지금엔 그것이 더 이상
태백을
상징할 수 없는 모습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태백이라는 지명을 들을 때
마다 내게
떠오르는 고정관념 같은 것이다.

도시에서 자란 내가 탄광지대에 관한 지식을 접했던 것은 시험을 위해 외워야
했던 중고둥학교 시절의
단편적인 지리 지식이 전부였다. 한 때 우리나라 석탄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에너지의
곳간’지대로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국의 루르(RUHR) 지방'이라고 이국의 낯선
지명과 비유할 때 더 실감나게
느껴지기도 했던 지역적 특수성이나, 함백선, 황지선,
정선선, 고한선 등의
시종착역이 헷갈리기 일쑤이던 고약스런 철도선 이름이 그것이다.

석탄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이후였지만
그것도 대개 갱도 매몰 같은 대형사고나 노사분규가 일어났을 때
뿐이었다. 아내와 함께
태백 여행을 전후하여 책장 속에서 태백과 주변의 탄광
지대에 관한 옛 글을 찾아
읽어보니 대부분 그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12월 초까지 밝혀진 탄광 사고는 2,798건이나 되며, 169명이 죽고 2,900여명의
   
중경상자를 냈다. 즉 사고는 일년 내내 하루 8건씩 있었으며, 한달에 14명이
    사망
했으니 이틀에 한명씩 죽어간 셈이다. 한달에 242명이 부상했으니 하루
    8명 꼴이다.
이것은 전쟁터의 전사상자 통계가 아니라 탄광부문 산업재해의
    통계 숫자이다.             
                                                          
-『한국문학』, 1974년 2월호 -


  
“막장에서 터져 나온 노조민주화의 외침” 국내 최대의 탄광인 대한석탄공사
   산하 장성광업소(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에서
3월2일부터 5일까지 광산근로자
   와 그 가족들(연 인원 3,500 여명)이 노조지부장
선거의 부정에 항의, 지부장의
    직선과 광업소장의 사퇴 등을 요구하며 연 4일 동안
시위, 농성을 벌이다 5일
   밤 10시 30분경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되었다.
                                      
- 1985년 3월, 한국기독청년협의회 발간 자료 -

벌써 오래 전부터 태백은 더 이상 탄광의 도시가 아니다. 한때 국가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석탄산업은 산업구조의 변동으로 사양화하여 지금은
일부의 광산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1
985년 12만 명에 달하던 태백시의
인구는 2004년에는 5만여 명으로 급격한
감소를 기록하게 되었다.

석탄의 ‘흥망성쇠’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고 떠나간 결과이리라.
언제나 변함이 없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이다. 그것은 외부적인
필요로 태백에게 부여했던 석탄이라는 경제적인
가치의 유무와 상관없이
영원하고 언제나 절실한 무엇이다.

 
 
어떤 사람에게 한반도는 불행한 땅덩어리이며 미국으로 이민이나 떠나
   버리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한반도는
   자기가 어떻게 선택할
수도 없는 ‘국토’가 된다. 국토는 그냥 땅이 아니다.
   자기 삶을 얹어 놓고 있는
인생의 터가 된다.
                                                              
- 박태순의 글 중에서 -

태백시의 홈페이지에는 태백의 앞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995년 12월 30일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함께 탄광지역
   종합개발
사업이 본격 추진됨에 따라 우리시는「고원 관광, 휴양, 체육도시
   신태백 건설」이라는
시정방침 아래 시민 모두가 하나 되어 지역특성을
   살린 관광도시 건설을 통한 새로운
태백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관광도시라는 새로운 태백으로의 탈바꿈이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지
나로서는
아는 바가 없다. 다만 나의 고정관념 속에 ‘까만색’으로 남아 있는
태백과는 다른, 국토와
태백시민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을 깨달을 뿐이다.


벌개미취와 해바라기, 그리고 고랭지 배추
정선군 고한읍에서 두문동재 터널을 빠져나가 태백으로 들어서니 터널 바로 앞에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벌개미취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자연적으로 핀 꽃은 아닌
것 같고
시에서 심어 놓은 것 같았는데, 연보라빛의 꽃무리가 은은하면서도 화사
하여 새로운 변신을
위한 태백의 노력을 보는 듯 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나중에
태백의 여러 곳에서 벌개미취를
볼 수 있어 혹 태백시를 상징하는 꽃인가 생각했으나
태백의 꽃은 산목련이었다.

흔히 가을의 꽃으로 들국화를 이야기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들국화란 이름의
꽃은 없다.
들국화는 쑥부쟁이나 구절초 등을 통칭하는 대중적인 명칭이다.
벌개미취는 추억, 그리움,
청초 등의 가을과 잘 어울리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벌개미취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귀한 꽃이라고 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서면서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각종 신문 매체에서 보도하였던
해바라기 꽃밭은 태백시 북쪽의 삼수령(三水嶺) 바로 아래 태백고원자생식물원에
있었다.

삼수령은 고개에 떨어진 빗방울이 북쪽으로 흐르면 한강으로 가고,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에 합류되며, 동쪽으로 흐르면 오십천이 되어 동해로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태백고원자생식물원은 2008년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총면적 12만 평의 미완성
식물원이다. 해바라기 밭은 식물원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의 평지와 왼쪽의 언덕을
넘어서 있는 비탈의 총 5만여 평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이나 신문의 사진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해바라기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줄기와 잎이 썩어서 시커먼 색으로
변해 있었다. 유난히 길고 강수량도 많았던 장마에 태풍이 겹치면서 대부분의 해바라기가
시들어버렸다는 것이 식물원 측의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보았던
해바라기의 화려한 풍경은 다분히 카메라의 기술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해바라기의 상태는 아쉬웠지만 식물원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노란 산괴불주머니와
흰 구절초, 그리고 연보랏빛의 벌개미취의 군락을 지나 걷는 길은 호젓하고 한가했다.

해바라기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8-9월에 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 커다란 둥근
꽃이 노랗게 핀다. 해바라기는 동쪽이나 남쪽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여 핀다.
흔히 해가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해바라기도 움직인다는 말이 있으나 잘못된 상식이다.
해바라기는 꽃대 줄기가 강하여 꽃이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을뿐더러 석양이 질 무렵에는
해가 떠있는 반대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태백시에서 임계 강릉 방향으로 가는 35번 국도 주변에는 산과 언덕의 가파른 경사면에는
곳곳에 넓은 고랭지 채소밭이 조성되어 있다. 검푸른 배추들이 줄지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은 마치 일사불란한 매스게임을 보는 듯 하다. 배추 한 포기 포기는 산이 지닌 생명의
기운이 터져 나오는 숨구멍인양 싱싱해 보인다.


황지(黃池)와 검룡소(儉龍沼)

태백에는 국토의 젖줄인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가 있다.
황지는 태백 시내의 중심지에 있는 황지공원 내에 있다. 연못의 물은 태백시를 둘러싼
태백산, 함백산 등의 여러 산에서 땅으로 스며든 물이 모여서 이룬 것이라고 한다.

검룡소는 금대봉 기슭에 있다. 계곡 입구의 주차장에서 검룡소에 이르는 20여 분의
산책길은 갖가지 들꽃과 초록의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길이기도 하다.
그 길 끝에 검룡소가 있다. 바위 아래에서 솟아난 물길은 초록의 이끼가 낀 바위 사이로
지나 5백여 키로미터에  이르는 유장한 한강의 흐름을 시작하는 것이다.

검룡소 옆의 비에 쓰여 있는  “태백의 광명정기 예솟아 민족의 젖줄 한강을 발원하다” 는
글귀에서 모든 시원(始原)은 지닌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현장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기운이다. 여행의 이유가 또한 그래서 있다. 한 시대를 마감하고
또 다른 시대를 시작하는 ‘국토’ 태백에도 그런 기운이 넘쳐나길 빌어본다.
(2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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