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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2008 할로윈 풍경

by 장돌뱅이. 2013. 6. 20.

10월의 마지막 밤.
한국에서는 쓸쓸한 이별의 추억을 담은 가수 이용의 노래가 부쩍 많이 울려 퍼지는 날이겠지만
미국은 할로윈이라는 재미있는 축제로 들썩이는 날이다.
할로윈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오는 날로,
죽음의 신을 찬양하는 고대인들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날은 마을과 학교에서부터 거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가장행렬들이 넘쳐난다.
특수를 노리는 상점은 벌써 한 달 전부터 할로윈 특별 코너를 만들어 놓고,
할로윈 장식과 분장에 관한 책들도 쏟아져 나온다.


생각해보면 악마의 얼굴을 새기고 속을 도려내어 불을 밝힌 잭오랜턴(Jack O'Lantern)이라는
이름의 서양 호박이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게 된 것 같다.
 

 

아내가 영어공부를 하러 다니는 어덜트스쿨 ADULT SCHOOL에서도 수업을 접고 한바탕 파티를 열었다.
여러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곳인만큼 각기 자신들의 나라의 전통을 소개하기로 했다는데
한국팀은 하회탈과 각시탈을 쓰고 꽹과리를 두드렸다.

평소에도 흥이 넘쳐난다던 아내의 선생님은 이 날 파격적인 분장과 함께
자신이 활동하는 보컬팀을 데리고 와서 격렬한 음악을 연주했다.
 


*위 사진 : 키타를 치는 양반이 나이 마흔이 넘은 선생님이라고 한다.

아내가 준비해 가지고 간 것은 코리아라는 피켓과 집의 벽에 걸어두었던 꽹과리,
그리고 내가 입던 개량한복이었다.
전날 저녁 아내와 함께 피켓에 글을쓰고 색칠하면서
어릴 적 연을 만들며 풀칠을 하던 기억이 떠오르며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기도 했다. 
 

 

 

 

 

 

 

 

 

 

 

미국에 와서 맞는 첫 할로윈 저녁.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보았다.

거리는 갖가지 흉측한 악마의 형상으로 변장한 아이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젊은이들도 어른들도 저마다 흉측하거나
혹은 예쁘고 귀여운 모습으로 변장을 한채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가게마다 들려 사탕을 얻어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에서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모두 유쾌한 웃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사진을 찍자는 제안에 모두 밝은 얼굴로 포즈를 취해 주었다.

 

 

 

 

 

 

 

 

누구에게건 일상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굴레일 수 있다.
그 소털처럼 많은 날 중에 하루쯤은 이런 날이 있어도 좋겠다고 아내와 나는 생각을 했다.
축제란 그런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시끌벅적한 날에도 ‘경건하게’ 지낸 사람들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곳 샌디에고에 있는 일부 한국 종교단체에서는 할로윈을 귀신과 도깨비를 흉내 내는 ‘불건전한’ 날로 규정하여
아이들이 그런 허깨비들의 장난에 휘말릴까 노심초사한 끝에 교회당으로 불러 모아 '건전한' 놀이를 하며
‘악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상을 섬기는 종교적 행위가 아닌, 해묵어 전통이 된 놀이문화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신이 원래 그렇게 째째한 분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신을 째째한 분으로 만드는 것인지
교리에 무지한 나로서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만 아내와 나는 그들이 믿는 신이 그런 도깨비나 악마와 비교할 수 없는, 그까짓 탈바가지와 분장 놀이로는
결코 흠집을 낼 수 없는,
관대하고 위대한 분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위 사진 : 아내와 내가 탄복했던 만화영화 주인공 WALL E. 정교하게 만들어 작품이었다. 
              아이를 위해 그것을 구상하고 설계하고 만들어낸 부모의 마음이 정겹게 다가왔다.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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