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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몸을 움직이는 일의 경건함, 축구

by 장돌뱅이. 2013. 6. 21.


몇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까지 오래 병상에 계셨다.
의식과 기력이 점차 쇠해가시면서
어머니의 몸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멍자국이 남곤 했다.

담당 의사에게 물으니
활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과 핏줄이 경직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틈이 나는 대로 몸을 주물러 드리곤 했지만
당신이 스스로 한번 움직이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 움직이는 일.
그것이 건강한 육체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달리고 서고를 반복해야 하는
격렬한 움직임의 축구.
월드컵 4강의 신화가 없었더라도
오래 전부터 내겐 흥겨운 운동이었다.

미국에 오면서 CHULA VISTA FOOTBALL CLUB에 가입했다.
FOOTBALL CLUB이라니 거창해 보이지만
한국에 흔한 조기축구회다.

매 경기마다 나는 서너 번의 헛발질과
느림보 달리기로 우리 팀의 경기를 흐뜨리고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내주는
탁월한 '엑스맨'이 되곤 한다.

회원 중에 내가 최고령이라는 말로
변명이나 위안을 삼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다.
나와 불과 서너달 생일이 늦을 뿐인 한 회원은
지금도 20대의 청춘에 뒤지지 않는 스피드와 지구력,
그리고 기술로 운동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니까 말이다.
그분은 나이 80에도 공을 차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경기력이야 어쨌든 나는 경기중에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굵은 땀방울의 쾌감에 가끔씩 모임에 나가곤 한다.
올 상반기까진 제법 부지런히 나갔는데
세상이 절단나는 것처럼 시끄러워진
하반기에는 거의 나가보지 못했다.
그런 게으름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몸무게가 후반기 6개월동안 무려 5키로나 불었다.
 

내년부터는 다시 열심히 나가보아야겠다.
나이 80에 그 분처럼 경기는 못하더라도
축구장 주변을 산책이라도 하며
그 매력적인 운동을 구경이라도 하려면 말이다.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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