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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캄보디아

2003 캄보디아 여행기 11. - 따쁘롬

by 장돌뱅이. 2012. 4. 8.


* 위 사진 : 2003년 대한항공 주최 여행 사진 공모전에서 내게 디지탈부문의 DIGI-KAL상을
               받게 해준 사진이다. 나는 "세월"이란 제목을 붙여 응모했었다.

앙코르의 사원들은 한 서양인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무려 천년을 깊은 밀림 속에
묻혀있었다. 그 장구한 세월은 사원을 하나의 자연으로 동화시켜버렸다.
균열이 가고 넘어진 돌담과 기둥만 사원이 아니고 그 틈에서 솟아난 무화과만이 자연은 아니었다.
하늘과 땅과 나무와 갈라진 틈이 모두 사원이자 자연이고 신화이자 역사였다.
그 때문에 앙코르의 사원들은 복원도 하지 말고 물론 파괴도 하지 말고
다만 보존만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타프롬을 찾은 날 무너져내린 돌에 앉아 거대한 나무뿌리에 휘감긴 사원의 석조물을 보며
인간이 세운 거대한 건축뮬 위에 내려 앉은 세월의 무게에 압도당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면서 한국인 단체여행객들이 나타났다.

   가이드 : 자 여러분 조용히.
               여러분 혹시 5백년 묵은 구랭이(구렁이가 아니라) 보셨습니까?
               제가 오늘 보여 드리겠습니다. 만지지 마십시오. 위험하니까.
               여길 보십시오.(손으로 사원의 석재를 휘감은 나무뿌리를 가르킨다.)
   여행객 :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소리)
   가이드 : 저기 지붕 위쪽이 보이시죠. 그곳이 구랭이의 머리부분입니다. 그렇죠?
               거기서 아래로 S자로 틀어 내려온 부분이 몸통이구요.
   여행객 : (약간의 감탄사와 긍정)
   가이드 : 자 여기서 사진 찍는 시간 10분 드리겠습니다.
              차례로 찍으시고 다음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여행객: (사진 찍는다)

말 잘 듣는 유치원생들이 선생님의 인도로 소풍을 나온 것 같다.
여행객들이야 단체여행의 전형적인 모습이라해도 가이드의 설명은 뭔가 좀 아쉽다.
인공과 자연, 거기에 천년의 세월을 더한 타프롬의 모습을 두고 기껏 비교할 수
있는 것이 ‘구랭이 머리와 몸통’ 밖에 없었을까?
좀더 근사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말로 타프롬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는 없는 걸까?
적어도 프로 ‘가이드’라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가이드의 익살은 따쁘롬을 자신들의 영화 속에 천박하게
인용한 헐리우드의 영화보다는 나은 것이었다.
타프롬이 영화 “툼레이더”에 나온다는 말을 듣고 여행에서 돌아와 비디오를 빌려봤다.
타프롬뿐만 아니라 앙코르왓도 나왔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타프롬의 모습은 주인공 안젤리나 졸리을 빛내기 위해
다만 괴기스러운 배경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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