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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잘 먹고 잘 살자 14 - 서울의 국수집

by 장돌뱅이. 2013. 8. 7.

1.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맛있는 국수집, "옛집국수"

옛집국수”의 내부 벽에는 어느 방송국 PD의 글이 붙어있다. 

   그는 15년쯤 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털어먹고 설상가상으로 아내마저 그의 곁을 
  
떠나버리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노숙자가 되어 용산역 앞을 
  
배회하는 서글픈 인생이 된 거죠. 하루는 배가 너무너무 고파서 용산역 앞에 늘어선
   식당들 앞에서 밥 한 술을 구걸했지만, 그는 어느 곳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답니다.
   박절한 세상 인심에 그는 반미치광이가 되어갔습니다. 용산역 인근 식당을 일일이
   다 들어갔으나 모든 곳에서 박대를 받고나오며 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버리
   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었지요. 
  
한 집 한 집 지나쳐가다가 작은 골목에 있는 할머니네 국수집까지 간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의 비루한 몰골을 보고도 환하게 웃으며 선선히 맞아주었습니다. 
  
허겁지겁 국수를 퍼넣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그릇을 뺐었다네요. 그러더니 
  
할머니는 삶은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가져다주더랍니다. 거의 두 그릇 양은 
  
됨직한 국수를 다 털어넣은 뒤에야 할머니께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가 국수를 삶는 틈을 타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그때 “그냥 가, 뛰지 말어, 다쳐요!”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신을 속이기만 하던 
  
세상, 자신을 버렸던 사람들이 쳐둔 얼음장 속에 숨 막혀 가던 자신에게 할머니의 말 
  
한 마디는 그야말로 따스한 불씨 한 조각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얼마 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파라과이로 혈혈단신 이민을 떠났습니다.

각박한 요즈음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동화책에나 나와 있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흘려듣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 글을 읽기 전에 “옛집국수”를 운영하는 두 모녀의 얼굴을 먼저 보았다면
그 글의 진실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정말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선한 표정과 음성을 지닌 두 사람. 

식당의 규모도 ‘동화적’이다. 탁자가 단 4개뿐인, 더 이상 작을 수 없을 정도로 작다.
매스컴도 타고 했으니 ‘사세확장’의 욕심도 낼만 하건만 두 분의 표정에서는
그런 기미가 읽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집에서 만들어내는 온국수(물국수)와
비빔국수를 아내와 나는 어느 다른 국수집의 것보다 좋아한다. 나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표현할 때 옛날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 집 국수가 그렇다.

 

구수한 물국수의 국물은 연탄불로 우려낸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주방 한 쪽에 연탄이 쌓여 있었다. 가스를 사용하면 제 맛이 나오지 않아서
연탄을 쓴다고 했다. 맛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에 대한 특별한 자랑도 없다.
그냥 당연하다는 말투이다. 붉은 빛 양념과 콩나물, 잘게 썬 오이와 김치 등을 올린
비빔국수도 상큼한 맛이 예사롭지 않다.
 

 


*위 사진 : 단정한 주방과 그 한켠에 국수물을 우려내는 연탄과 화덕이 있다.

가격은 더욱 ‘동화적’이다.

2000원(물국수)과 2500원(비빔국수) 하던 것을 최근에 500원씩 올렸다.
국수 이외에 김밥과 칼국수, 떡만두국 그리고 칼국수도 있다.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의 2번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처음 만나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다.
*
전화:794-8364
(2007)


2. 성북동 "국시집"

국시집에서 국시맛만큼 인상적인 것은 아주 작고 소박한 모습의 간판이다.
식당이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어 큰길 쪽에선 주의를 해서 보지 않으면 찾기도 힘들다.
무엇이건 눈에 잘 띠게 크고 튀는 색상으로 만드는 세태에
오히려 작아서 당당해 보인다.

서울 시내에 칼국수로 이름을 날리는 집이 많지만, 국시집은 칼국수에 관한한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연륜과 명성과 맛을 지닌 집이다.
양지머리 국물에 약간의 고명과 양념장을 더한 국수인 것은 어디나 같으나
이 집의 맛은 다른 곳과 확연히 다르다.
칼국수와 더불어 아내와 내가 이 집에서
좋아하는 메뉴로는 수육이 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는 날이면 늘 이 집을 가게
되어 주변의 다른 식당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삼선교(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로터리에서 혜화동쪽으로 가다가 오른쪽 베드로병원 골목으로 들어가면
왼편에 있다.

*전화번호 :02-762-1924
(2005)



3. 명동 "명동 할머니국수"


할머니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는 곳 중의 하나가 음식점이다.
할머니손(순)두부, 할머니김밥, 할머니(손)칼국수 등등.
할머니라는 단어의 어감이 주는 다정함, 푸근함, 신뢰감...그런 것들이
맛과 연관될 때 복합적인 상승효과를 내기 때문일 것이다.

명동에 있는 “명동 할머니국수” 집은 테이블과 의자가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식당이다.
50년대에 개업을 하였다고 하니 반세기가 넘도록 한 곳에서 장사를 해온 식당이다. 
 

 

음식의 값은 무척 싼 편이다.
아내와 둘이서 두부국수와 비빔국수 그리고 김말이로 배를 든든히 채웠는데도 만원이 넘지 않는다. 

두부국수는 이 집만의 특이한 음식으로이름처럼 국수에 두부를 넣은 것인데
칼칼한 맛이 나쁘지 않았다.전체적으로 소박한 분위기에 소박한 가격으로 소박한 맛을 내는 식당이다.
*전화번호:02-778-2705
(2007)

4. 논현동 "가람국시"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
‘국시’와 ‘밀가리’는 경상도 사투리이다. 강남 논현동 건설회관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는 식당 가람국시(02-541-8822)는 식당의 이름에 국시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주인이 경상도 사람인 모양이다.
 

 

전에 근무하던 사무실이 근처에 있을 때 칼국수를 잘한다는 입소문을 듣고 가보았는데
칼국수의 맛도 맛이지만 내겐 수육의 맛도 뛰어나 그날 저녁에 당장 아내를 이곳으로 불렀다. 
 



칼국수는 멸치국물국수와 고기국물국수의 두 가지가 있다.
멸치국수는 개운하고
고기국물은 담백하면서도 진하다.
아내와 내가 꼽는 음식은 칼국수외에 수육과
제육, 그리고 낙지볶음이다.
특히 수육은 부드러우면서도 씹히는 맛이 있고 맨 간장에만 찍어 먹어도 구수하다.
이외에도 손만두, 녹두전, 파전 등에 소갈비구이까지 다양한 음식이 있다.
식당 내부는 편안한 전통 한식 분위기로 꾸며져 있으며 종업원들이 친절하다.

(2006)


5. 삼청동 "삼청동수제비"
 

 

사람의 입맛은 갖가지이다.
라면 하나를 끓여도 약간 불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좀 덜 풀어진 딱딱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달걀을 넣는 시점도 끓을 때 넣어야 한다는
사람과 다끓이고 나서 불을 끈 후 넣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회사의 직원 중에 “동그란 국수는 안 좋아하고 네모난 국수가 좋다”는 사람이 있다.
“동그란 국수와 네모난 국수?” (잔치국수와 일반 칼국수 형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같은 밀가루로 만든 국순데?”
그래도 동그란 국수는 싫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 할 것 없이 나도 그랬다. 국수는 좋은데 수제비는 싫은 것이다.
같은 밀가루 아니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냥 싫은 것이다.
좋긴 좋은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싫은데도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세상이 재미난 이유도 혹은 재미없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사람마다
생각이 입맛처럼 생김새처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호’의 고수들은 그런 나의 입맛도 돌려 놓았다.
삼청동수제비가 그곳이다. 멸치향이 나는 국물에 감자를 비롯한 여러 양념을 넣고
끓여낸 이 집의 수제비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 좋다. 맛 때문이다. 
삼청동 총리공관 근처에 있다.
*전화번호 : 02-735-2965
(2005)
 


 6. 삼청동 "눈나무집"

삼청동은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동네이다.
세련된 음식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며 동네의 모양을 바꾸고 있다.
아내와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눈나무집은 일대에서는 제법 오래된 식당인 듯 하다.
그러나 먹어본 음식은 떡갈비와 김치말이밥 뿐이다. 

 

이곳의 떡갈비는 남도식 떡갈비가 아니라 진짜 흰 떡과 갈비살이 함께
나온다는 의미의 떡갈비이다. 평소 떡은 물론 떡볶이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떡을 먹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갈비와 김치말이를 함게 먹으면 달짝지근한 갈비의
양념맛을 김치말이 국수의 새콤한 국물이 중화를 시키며 감미로운 맛을 낸다.  

얼마 전에 가보니 원래 있던 지하의 작은 식당 맞은편에 높은 빌딩을 올렸다.
나 같은 평가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02-739-6742
(2007)


7. 강남 "신정"

끓는 육수에 저민 고기를 살짝 데치듯 익혀 먹는 요리를 징기스칸이라고 한다.
샤브샤브나 토렴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것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징기스칸이란
이름을 처음 사용한 식당이 신정이라고 한다.

명동이 우리나라 소비문화의 중심지였던 1965년, 그곳에 식당을 열면서부터다.
지금은 명동점 이외에 강남의 목화웨딩홀 맞은 편 특허청길을 따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커다란 강남점이 있다. 아내와 자주 찾는 곳은 강남점이다.
맛은 강남점과 명동점이 동일할 것이나 강남의 주차 편리성은 강북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정에서 아내와 내가 먹는 음식은 징기스칸이 아니라 국수전골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수전골 때문에 아직 징기스칸의 맛을 보지 못했다고 해야 한다.
아내와 내가 신정을 자주 찾는다고해야 두세 달에 한번 정도일 것이니 매번 국수전골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다. 아마 우리가 국수전골에 물릴 때까지 이러한 일은 반복되지 싶다. 
 

처음 국수전골을 주문했을 때 종업원이 가져온 국수전골의 재료는 영 부실해보였다.
멀건 육수에 저민 고기와 약간의 야채와 국수 그리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첫 국수가락을 입에 넣으면서 그러한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수를 먹고나면 개운하고 구수한 국물에 죽을 만들어 주는데 이 또한 별미이다. 
 

이외에 곱창전골도 뛰어나다. 사람들은 오리구이를 전식으로 먹기도 하나 아내와 나는
이것만은 좋아하지 않는다. 대형음식점이면서도 종업원들의 서비스가 자상하다.
어느 외국인에게도 맛과 분위기가 호감을 주는 식당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전화 : 02) 554-1033
(2003)


8. 다동 "남포면옥"



내가 냉면을 먹기 시작한 것은 아내를 만나면서부터다.
연애 시절 아내는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비빔냉면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고무줄처럼 질긴 냉면의 면발도 싫어했고 물을 몇사발씩 들이키면서도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야 겨우 한사발의 냉면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운 음식에 약한
나는
비빔냉면을 좋아하는 아내의 식성이 조금 과장을 섞는다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나중에 듣고보니 냉면에도 유행이 있어 당시에는 유독 매운 냉면이 대중을 이루었다고 한다.
요즈음의 비빔냉면은 정말 70년대처럼 맵지 않은 것도 같다.

연애시절 냉면먹기라는, 아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처절한(?) ‘정치적인 행동’을 통해
내가 그 매운 맛 속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맛을 알게 되었듯,
언제부터인지 아내와 나는 맹숭맹숭한 국물에 풀어진 평양냉면의 맛도 깨우치기 시작했다.
요즈음 들어서는 비빔냉면(함양냉면)보다 오히려 물냉면(평양냉면) 쪽으로 우리 부부의
취향이 기울었다고 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 음식 중에서 평양냉면이 가장 만들기 힘든 음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말간 육수만으로 은근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집마다 육수를 만드는 비법이 다르고 거기에 따라 냉면의 맛도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이름난 평양냉면집이 많다.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면 서울 다동의 남포면옥, 주교동의 우래옥, 장충동의 평양면옥,
서소문의 강서면옥, 경기도 평택의 고박사집, 의정부의 평양냉면, 경북 영주시의 서부냉면 등이 있다.
 

남포면옥은 을지로 입구 롯데백화점 맞은 편 하나은행 옆 골목에 있다.
본관과 신관으로 나뉘어져 입구는 다르지만 안에서는 서로 통해 있다.
입구에 가지런히 묻혀 있는 여러 개의 장독은 동치미를 담그는 것인데
사시사철 한결같은 동치미의 시원한 맛은 이집의 냉면만큼이나 유명하다.
그래서 나는 냉면이 나오기에 앞서 동치미를 두 공기쯤 비우곤 한다.
일정하게 숙성된 동치미국물은 육수와 합쳐져 냉면국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보통의 음식점처럼 냉면이 고기를 구워먹고 마지막에 먹는 후식이 아니라
남포면옥에서는 냉면 자체가 메인이다.
아내와 나는 종종 빈대떡이나 접시만두를 곁들인다.
*전화 : 02) 777-226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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