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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시애틀(끝) -시내 돌아다니기

by 장돌뱅이. 2013. 8. 27.

파이어니어 스퀘어 PIONEER SQUARE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호텔 셔틀 버스로 가는 도중, 운전수에게 그 일대에 아침 식사를 하기 좋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TAT'S DELI”(
http://tatsdeli.com/ )를 추천했다. 
파이어니어 스퀘어에서뿐만 아니라 시애틀 전체에서 자가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라고 덧붙였다. 
내친 김에 그곳에서 아침 식사로 추천할 만한 메뉴를 물었더니
“그라인더 GRINDER”라고 역시 망설임 없이 알려주었다.
 그라인더는 계란과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였다. 우리도 망설임 없이 그의 추천에 따랐다. 그리고 만족했다. 
 

 

 

파이어니어 스퀘어 일대는 시애틀의 ‘올드 타운’이다. 붉은 벽돌의 오래된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골동품점이 있는 문화적인 거리이기도 하다.

옛날 이곳은 지대가 낮아 밀물 때마다 물이 역류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한다. 1889년에 시애틀에 대화재가 있었다. 
페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사람들은 원래보다
3미터 가량 높여 복개를 하여 침수 문제를 해결하였다.
원래 1층 높이의 지대가 지하로 변하게 된 것이다.

1965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투어 UNDERGROUND TOUR’는 지금은 시야에서 사라진 바로
 이 1층의 지하세계를 돌아보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투어에 앞서 잠시 근처의 스미스타워 SMITH TOWER 에 올라보았다.
타자기를 제조했다는 스미스라는 사람이 1914년에 지은 38층의(?) 흰색 건물로 지어질 당시에는 뉴욕의 맨하탄 이외 지역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 주위 한 블록 안에서 제일 높다고 기념품을 파는 직원은 익살을 부렸다.
 



스미스타워의 전망대에서는 시애틀의 도심과 그 바다가 잘 내려다 보였다.
시애틀 센터에 있는 스페이스 니들보다 높이는 낮았지만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가하게 주변을 구경하기에는 훨신 나아 보였다.
 

 

35층에 있는 차이니스룸에는 소망을 비는 의자 WISHING CHAIR 가 있었다.
미혼여성이 이 의자에 앉아 빌면 1년 안에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아내에게 의자에 앉아 딸아이의 결혼을 빌어보라고 했다. 
아내는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당신 결혼을 빌라는 게 아니야!”
나는 강조를 해두었다.^^
 


*위 사진 : 소망의자의 화려한 조각

파이어니어 플레이스 PIONEER PLACE는 파이어니어 스퀘어의 중심부에 있는 삼각형 형태의 작은 공간이다. 
이곳에 북미 인디언 수와미 족(SUWAMISH TRIBE)의
추장 시애틀(SEATHL)씨의 흉상이 있다.
 시애틀이란 도시 이름의 기원이 그 인디언 추장이다.


1895년 미국의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은 그에게 그의 땅을 미 정부에 팔라고 요청했다.
그의 이름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보낸 감동적인 편지 때문에 많이 알려져 있다.
그 편지글은 이젠 널리 알려져 있고 나도 여행기에서 한두 번 인용한 바 있지만
흔하다고 가치가 없는 글은 아니기에 다시 옮겨본다.
(내용은 비슷비슷 한데, 세부 문장은 다른 글들이 너무 많이 있어 어느 게 원본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이 글을 대학 시절에 처음 읽었다. “월간 대화”1977년 10월호에서였다.
덧붙이자면 이 잡지는 유신 정권의 탄압으로 광고를 싣지
못하고 백지 지면을 싣는, 이른 바
“백지 광고”를 내다가 추장의 편지가 실린 1977년
10월 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아래 인용 글은 그곳에 실린 글 중에서 일부를 옮긴 것이다.) 


  
워싱턴에 있는 위대한 지도자가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 위대한 지도자는 또한 우정과 친선의 말들을 우리에게 보내왔습니다.
   이것은 매우 고마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답례로서 우리의 우정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제의를
   고려해보겠습니다. 그 까닭은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백인들이 총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땅을 빼앗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당신은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 팔 수가 있습니까? 그러한 생각은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신선한 공기나 반짝이는 물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그것을 우리에게서 살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구석구석은 우리 백성들에게는 신성합니다. 저 빛나는 솔잎들이며 해변의
   모래톱이며 어두침침한 숲 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은 우리 백성들의 추억과
   경험 속에서 성스러운 것들입니다.
백인들이 우리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백인들에게는 어떤 한 부분의 땅은 나머지 부분의 땅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밤중에 그 땅에 와서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져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땅은 그들의 형제가 아니라 적입니다. 그들이 어떤 땅을 정복하면 그들은 그곳으로
   옮겨옵니다. 그들의 왕성한 식욕은 대지를 마구 먹어치운 다음에는 그것을 황무지로 만들어
   놓고 맙니다. 당신네 도시의 모습은 우리 인디언들의 눈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
   우리가 야만인이어서 이해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내가 만일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나는 하나의 조건을 내놓겠습니다. 즉 백인들은
   이 땅에 사는 짐승들을 그들의 형제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입니까? 만일 모든 짐승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커다란 영혼의 고독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승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대로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백인들이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한 가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즉 당신네 신과 우리의
   신은 같은 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우리의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신도 당신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신입니다. 그리고 신의 연민은 인디언이나 백인들에게 동등합니다.
   이 대지는 신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지를 해치는 것은 조물주에 대한 모독입니다.

  
백인들도 역시 소멸할 것입니다. 아마 다른 종족들보다 먼저 소멸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잠자리를 계속해서 오염시켜 나간다면 당신은 어느 날 밤 당신 자신의 오물 속에서 질식하게
   될 것입니다. 들소들이 모두 살육당하고 야생마들이 모두 길들여지며 성스러운 숲속이 인간의
   냄새로 꽉 찰 때, 그리고 산열매가 무르익는 언덕들이 수다스러운 부인네들에 의해서 더럽혀질
   때 잡목숲과 독수리는 어디서 찾겠습니까? 그리고 이동과 사냥이 끝장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삶의 종말이요, 죽음의 시작입니다.
 

 


*위 사진 : 시애틀 추장의 흉상과 그 옆에 있는 토템폴

파이어니어 플레이스 근처에서 시작되는 언더그라운드 투어는 도보로 1시간 정도 걸렸다.
방치된 옛 호텔의 출입구나 붉은 벽돌의 상점 등을 볼 수 있었다.
100년 전의 시애틀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그다지 흥미롭거나 짜릿한 투어는 아니었다.
물론 이런 판단에는 나의 부실한 영어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완전히 알아들었다면
시애틀의 역사에 대한 상식이 풍부해지고 좀 더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언더그라운드 투어를 마치는 장소 가까이에 카우 칩 쿠키가 있었다. 한 여행 안내서에는
'ONE OF THE BEST CHOCOLATE CHIP COOKIES'라고 하였는데, 그 정도까지인 줄은 몰라도
단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싫어할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잠시 다리쉼을 하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여행 마지막 날이라 대충 짐을 꾸리고 휴식을 취했다.
저녁나절 다시 호텔 버스를 타고 야구 경기를 보러 나섰다. 시애틀의 지역 연고팀은
매리너스 SEATTLE MARINERS이고 매리너스의 홈구장은 세이프코 필드 SAFECO FIELD이다.

세이프코 필드는 지붕이 열고 닫히는 돔구장이다. 비가 잦은 시애틀에서 필요불가결한 방식이겠다.
개폐식 돔구장의 방문은 아내와 내게 마이애미에 이어 두 번째이다. 
세이프코 필드는 1999년에 지
어져 수용인원이 47,000명이라고 한다.
 

 


*위 사진 : 미식 축구 구장인 CENTRYLINK FIELD과 나란히 있는 SAFECO FIELD(지붕 아치가 4개인곳)

야구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한국과 비슷했다.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다른 점은 한국엔 김밥과 소주, 쥐포와 통닭이 
판매 음식의 주종이라면 이곳에서는
땅콩이나 해바라기씨, 핫도그나 도너츠가 많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 스포츠의 프로 시대는 5공의 출범과 맞물려있다. 야구와 축구, 씨름과 바둑 등이 그 시절에 프로화 되었다. 
대중들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려 정권의 치부를 가려보려는,
대중 우민화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이제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나이키의 창업자 필나이트의 말대로 “이제 스포츠의 경험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은 사방을 에워싸고 있으며 즉각적이다. 그것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보다는 야구를 사랑한다. 60년 동안 정치를 지켜봐온 늙은이도,
   바로 어젯밤부터 정치를 알게 된 중학생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예컨대 원칙과 룰이
   있는 쪽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세상에는 별처럼 무수한
   야구팀들이 원칙과 룰을 지키며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 반짝인 속에서 결국 자신의 별을
   발견하고, 응원하게 된다. 즉, 저별은 나의 별이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중에서- 
 

 

 

시애틀 매리너스팀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일본인 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있다.
(그는 2012년 7월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지만 아내와 나의 여행 시기는 그 직전이었다.)
그는 일본과 미국의 프로야구에서 대단한 기록을 세운 타격 천재이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연속 3할 타율에 200안타를 쳐냈다. 
일본 기록까지 합치면 1994년 이후 3할 이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MVP와 신인왕이 되었고 데뷔 이후 10년 연속 골든글러브와 올스타를 차지했다. 
그런 그도 세월의 무게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던지 -1973년생이니 어느 덧 그의
나이 40이다 - 
작년에 처음으로 2할7푼대로 떨어지더니 올해는 이적 전까지 2할6푼 대였다. 

이적 후 뉴욕양키즈에서는 더 낮은 타율을 기록 중이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들렸던 시내의 시애틀 매리너스의 기념품점에는 온통 이치로 일색이었다.
어른들의 유니폼은 물론 아이들용 옷에까지 이치로가 대세였다. 
가히 매리너스의 이치로가 아니라
이치로의 매리너스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위 사진 :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이치로의 성적표 

경기가 끝날 무렵 열려있던 세이프코 필드의 지붕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음은 없었다.
마치 공상 과학 영화 속의 거대한 유에프오처럼 하늘을 가리며 서서히 닫혔다.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아내와 맥주를 마셨다. 바 BAR 의 종업원이 오늘 매리너스의 경기 결과가 어땠느냐고 물었다.
 이치로는 부진했고 게임도 졌다고 말하자 “우리는 항상 진다”며
웃었다. 오래 전 우리나라의 삼미슈퍼스타즈처럼, 
그리고 지금 내가 사는 샌디에고의 파드레스처럼,
매리너스도 늘 ‘자력으로’ 하위권을 유지하는 팀이다.

아내와 맥주잔 부딪히며 건배를 했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이런 순간마다 성취감은 좋은 안주가 된다.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은 넓고 가볼 곳은 많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먼 곳 혹은 안 가본 곳에
대한 열망이 예전 같지 않다는데 아내와 동의한다. 
그런 변화가 조금이나마 가본 곳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많은 여행은 한 사람들은 비웃을 수도 있는 여행 경력임에도) 일종의
 ’한계 효용의 법칙‘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낯선 곳과의 부딪힘이란 도전과 모험의 의지가 사그라지는 탓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여행이 반드시 거리상 먼 곳에만 의미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먼 곳에서 보면 나와 가까운
이곳도 먼 곳이기도 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어디로건 아내와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아내와 함께 가본 어떤 곳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아직 가보지 못한 어떤 곳은 설렘과 상상으로 남을 것이다. 
추억과 설렘과 상상은 아내와 나누는 삶의 행복이라는 기준 안에서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뒷날 아침 이른 비행기 시간을 무시하고 밤이 깊도록 몇 잔의 맥주를 거푸 마셨다.
 



(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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