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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싱가포르

싱가폴과 자카르타2

by 장돌뱅이. 2013. 10. 19.


*위 사진 : 만다린 오리엔탈 싱가폴 호텔의 수영장(출처:호텔 홈페이지)

이튿날 아침에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착한목자성당 THE GOOD SHEPHERD CATHEDRAL과
포트캐닝 FORT CANNING 을 돌아왔다. 낮 동안은 수영장에서 보냈다.
점심도 수영장에서 해결했다. 수영장에서 보내는 낮 시간은 느릿했다.
조선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은 “와유(臥遊)”를 말했다.
와유는 “몸은 누워있으나 정신이 노니는 것”이며, “정신은 마음의 영(靈)”이니
“영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늘 단순한 일상만으로도 허우적거리며 사는 아내와 내가 감히 실학의
대가처럼 자유롭게 고양시킬 수 있는 어떤 정신의 고갱이가 있을 리는 없다.
우리는 그냥 몸과 함께 정신도 시간 속에 뉘여 놓았을 뿐이다. 육체와 감각을
최소한도로만 움직이며 ‘멍 때리기’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철저하게 ‘비생산적인’,
그러나 흠족한 게으름의 시간이었다.
책을 읽다 자고, 수도쿠 SUDOKU 를 풀다 수영하고,
하늘에 구름이 변하는 모양을 바라보고, 다시
자고......

뭔가를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던 적이 있었다.
여행은 늘 뭔가를 새로운 것을 보아야했고 찾아야했고 느껴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의무감으로부터 여행과 내 스스로를 점차 풀어주게
되었다. 어쩌면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가득찬 시간이
여행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상에서는 가장 작고 흔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시간이 여행이었다.

여전히 낯선 풍경과 색다른 경험은 동경이고 유혹이다. 하지만 여행이 반드시
뭔가를 해내야 하는 도전이고 여행지가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면서
나는 여행의 외연을 크게 확장 시킬 수 있었다. 여행의 구체적인 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도 커지게 되었다. 양극단은 서로 통한다고 하던가? 무덤덤하고 느릿한 여행과
자극적이고 활동적인 여행이 같은 가치를 지녔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행복이었다.

해가 지고 나서 싱가폴강변을 걸었다. 에스플러네이드를 지나 다리를 건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발걸음을 아껴가며 천천히 걸었다.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것도 와유라면 와유였다. 사람들은 저문 강변으로 몰려나와
북적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늘도 강물도 휘황한 불빛들로 가득해져 갔다.
우리는 기꺼이 그 흥겨움의 축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구도 우리를 주목하지
않지만 우리는 레드카펫을 밟는 인기 절정의 주인공 스타처럼 의기양양한 기분이었다.
여행은 늘 그렇게 속임수 없는 마술로 우리를 황홀하게 한다.

싱가폴 마지막 날, 일요 미사를 위해 성당엘 갔다.
아침 산책으로 다녀온 ‘착한목자’ GOOD SHEPHERD 성당이었다.
이 성당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다. 제2대 조선 교구 주교였던 프랑스의
신부
앵베르 IMBERT 가 한국에 오기 전 이곳에서 재직하였기 때문이다.
1839년에 그는 한국에서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 등과 함께 순교하였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지금 이곳은 싱가폴에 사는 한국인들이 일요미사를
드리는 장소가 되었다.

미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몰려들던 먹구름이 기어코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마침 래플즈시티 부근이어서 안쪽으로 몸을 피했다. 도로 쪽으로 창문이 나있는
맥도널드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기세등등하던 비는 오래지 않아 그쳤다.


*위 사진 : 호텔 마리나베이 샌즈(출처:호텔 홈페이지)

우리는 비 비린내가 풍기는 길을 걸어 마리나 베이 샌즈 MARINA BAY SABDS로 갔다.
들은 대로 쇼핑몰은 거대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트레일을 걷듯 걸었다.
푸드코트에는 온갖 나라의 음식이 집결되어 있었다. 아내는 한국식순두부로
나는 태국쌀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음식
-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른다면 아시아에선 당연히 싱가폴이 그 별명에 어울린다.
작은 도시국가이기에 집중도는 외려 미국보다 더 높아 보인다.

카지노에서 나는 처음으로 승승장구를 했다. 반대로 ‘카지노불패의 신화’를 쌓아가던
아내는 참패를 했다. 나는 아내의 손실을 메꾸고도 넉넉한 저녁비용에 해당되는 금액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거드름 섞인 헛기침을 남발하며 밤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위 사진 : 2007년 여행시 찍은 싱가폴 야경

짐을 꾸리고 야경을 내려다보며 맥주를 나누었다. 내일이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간다.
카메라가 없고 (공항과 숙소를 오가는 교통편을 제외하곤) 도보 이외에 어떤 교통편도 이용하지
않은 여행이었다. 그 때문에 한가로움과 느긋함이 배가 된 여행이기도 했다.
가끔씩 익숙한 것들에서 거리를 두고 살아보기도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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