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지엄 6층의 베란다에 나가면 펜실베니아 도로의 동쪽 끝으로 국회의사당 THE CAPITOL이 보인다.
백악관과 함께 DC를 상징하는 건물이며 미국 정치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건물의 외관은 백악관보다 훨씬 인상적이다. 높이 5.5미터의 청동 여신상을 머리에 세운 순백의 돔과 정교한 기둥이 화려하다.
그리고 지붕을 받치는 그 아래 사각의 건물이 웅장하고 시원스럽다.
뉴지엄의 옥상에서 보는 풍경이 좋다고 하지만 의사당에 가까이 갈수록 건물의 위엄과 기세가 커지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도, 세계의 어느 나라도 정치인들의 ‘직장’은 그렇게 한껏 권위와 근엄함을 강조한 모습이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차드 닉슨이 언젠가 정치인에 대해 규정한 적이 있다.
정치인이란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 과정이 작동되는가를 아는 사람이며, 민주주의
체제의 얽히고설킨 움직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정치인이란 표를 세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자신의 표가 중요해지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정치인이란 자신의 말이 곧 자신의 무기임과 동시에 자신의 말이 자신의 속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 정치인이란 상대편으로 하여금 자신이 패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승자가 되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 정치인이란 게임의 이름과 게임의 룰 모두를 아는 사람이며, 예로부터의 민주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렇게 ‘쿨’하게 정치인을 정의하던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재임 중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던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권력형 스캔들 뒤에 ‘게이트’란 접미어를 붙이는 것은 그가 남긴 뚜렷한 유산이다.
무릇 정치인들이란 이처럼 그들의 말보다 행동에 더 주목해야하는 남다른 집단이라는 데서 또한 세계 공통이다.
소설가 이문구씨의 정치인에 대한 규정이 닉슨의 것보다 사실적이다.
그네들(정치인)은 거의가 낯이 두껍다. 그래서 꼭뒤가 세 뼘도 넘는다. 간은 커도 쓸개 빠진
이가 많고, 비위가 좋아도 심통이 사납다. 귀가 여려서 눈이 쉽게 뒤집히고, 거짓말로 목이
노상 쉬어 있으며, 책임질 일을 이리저리 둘러치고 메어치기에 바빠서 잠이 퍽 적다.
손이 싸고 발이 넓다. 셈에 밝아서 떡값에 약하고 밥값에 강하며, 접대에 헤프고 화대에는 짜다.
협동에 게으르고 운동에 부지런하며, 정력에 좋다는 것은 개가 안 먹는 것도 못 먹는 것이 없다.
(...) 특히 넥타이에 신경을 많이 쓰고, 돌아서면 바로 잊을 사람에게 악수부터 청하는 버릇 하나는
한결같이 일등이다.
정치인을 존경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우리의 일상을 구속하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집단이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게다가 정치와 권력은 자신과 가까이 있는 것들을 쉽게 타락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권력에 다가섰던 혹은 권력과 함께 했던, 종교가 그랬고 언론이 그랬고 기업이 그랬고 예술이 그랬다.
그래서 세상엔 일정한 ‘거리 유지’가 필수적인 관계들이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에 가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KEEP WILD LIFE WILD”라는 표어가 그 이유이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닉슨의 수석보좌관을 지낸 힐데만은 닉슨의 퇴진 시기를 기록한 그의 저서 “권력의 종말”에서
“닉슨을 사임토록 만든 것은 언론”이라며, “닉슨은 수십 년간의 그의 정치 생활 동안 늘 언론과
적대관계를 가졌다”고 토로했다. 언론과 반대편에 있던 그로서는 ‘적대 관계’로 느꼈겠지만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생명인 언론에게는 ‘거리 유지’가 포기할 수 없는 생존 원칙이겠다.
*위 사진 : 워터게이트 컴플렉스. 2600호 건물이 '사건'의 현장이라고 경비실의 아저씨가 알려주었다.
사건과 관련된 아무런 표시나 안내는 없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72년 6월 어느 날 새벽 DC 포토맥(POTOMAC) 강변의
워터게이트 콤플렉스에 있는 민주당 전국 위원회 사무실에 5명의 괴한이 침입했다.
경찰과 백악관이 단순 절도 사건으로 마무리를 해가고 있을 무렵 워싱턴 포스트의 풋내기 기자 우드워드(BOB WOODWARD)는
뭔가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고 동료인 번스타인과 함께 이 사건을 추적했다.
그리고 마침내 권력의 추잡한 음모와 범죄 사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로버트레드포드와 더스틴호프만이 나오는 오래 전 영화 “대통령가(家)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은 이 과정을 다루고 있다.)
월남전 참전의 얽힌 미국의 음모를 폭로한 뉴욕타임즈나 워터게이트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에서
보듯 권력에 대해 ‘거리 유지’의 원칙을 지킨 미국의 언론은 언론사(言論史)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위업을 이루었다. ‘국가안보’라는 허울을 앞세우고 제보자를 간첩죄로 기소하며 자신들의 치부를
덮으려는 권력의 마지막 시도를 무산 시킨 사법부의 판결도 ‘거리 유지’의 빛나는 엄정함이었다.
뉴욕타임즈 관련하여 당시 연방대법원은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의 비밀을 파헤쳐
국민에게 알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정부기관의 비리나 비행을 폭로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9.11 이후 미국의 전쟁은 미국 역사상 지식인들이 가장 철저히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진행되었다고 한다.
충격적인 9.11에 대한 반작용으로(혹은 9.11을 이용한 세력들로) ‘애국주의’ 물결이 전 미국을 휩쓸었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기업의 언론 소유가 가능해지면서 많은 신문, 방송, 잡지 등이 통합되어 소수의 거대 미디어기업으로 재편되는
환경의 변화도 더해졌기 때문이다. 소수 독점적 대기업의 의견이 여론을 주도하면서 정보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대중의 실질적 선택권은 제한된 것이다.
*위 사진 : DC에 있는 평범한 외관의 워싱턴포스트 본사. 마침 숙소 주변에 있어 지나칠 수 있었다.
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과 언론의 필수적인 ‘거리 유지’가 허물어진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학자 촘스키 교수는 “이번 전쟁(2003년 이라크전쟁) 에서 미국의 주류 언론이
한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미국 언론은 이라크의 위협, 테러와의 연계 등에 대한
행정부의 정치선전만을 무비판적으로 중계했다. 일부 언론은 메시지를 확대시키기도 했고
다른 일부는 그냥 중계만 했다. 이것이 여론조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놀라웠다. 토론은 대개
“실용적인 차원”에서만 이뤄졌다. 전쟁 비용이 미국 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커지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전쟁이 시작되자 언론은 ‘홈팀’을 응원하는 부끄러운 치어리더가
돼 세계를 경악시켰다.”고 답한 바 있다.
‘치어리더’는 이제 미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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