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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응답하라 1994 - 락카페의 굴욕

by 장돌뱅이. 2013. 12. 10.

 

"응답하라 1994(응사)"가 인기인 모양입니다. 아내와 저도 즐겨봅니다.
사투리와 연기에 약간의 과장이 엿보이긴 하지만,
꼬이고 비틀린 인연, 불륜, 치정, 출생의 비밀로 얼룩진 이른바 '막장' 드라마와는
다른 상큼함과 발람함이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꼭 1994이 아닌,
그보다 약 20년 전 쯤에 아내와 나도 그랬을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아내와 저는 "응사"의 원조격인 '응답하라 1997'의 팬이기도 했습니다.
"응칠"을 보게 된 것은 그 드라마가 1997 당시 어린 학생들의 우상이었던
H.O.T나 젝스키스 등을 배경으로 등장시켰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성인이 된 딸아이는 그 당시 학교에서 유명한 H.O.T의 광팬이었습니다.
별명은 독보적인 '강타부인'이었고 자신이 공부를 하는 이유를 아예
"H.O.T 팬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라고 당당하게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딸아이의 모든 생각과 일상의 시작과 끝은 오직 H.O.T로 통했습니다.
덕분에(?) 아내와 저도 H.O.T의 콘서트와 H.O.T가 주연한 영화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어린 딸아이를 울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라이벌이었던 젝스키스의 H.O.T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응칠"은 딸아이와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그래서 보는 재미가 쏠쏠한 드라마였습니다.
"응사"에서는 여수아가씨가 서태지의 광팬으로 나오더군요.
딸아이보다 나이가 든 큰집 조카가 또 서태지의 팬이어서
가끔씩 딸아이와 서로의 우상이 우월한 음악성을 지녔다고 언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응사'의 한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글을 적어봅니다.
극중 해태와 삼천포가 락카페 스페이스에서 입장을 거부당하는 장면 말입니다.
이른바 '수질관리'의 대상이 된 것이죠.

아마 그와 비슷한 시기였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자랐다지만 원래부터 밤무대에는 별 관심도 경험도 능력도 없었고
직장생활도 서울이 아닌 울산에서만 해온 촌놈인 데다가
인도네시아 주재생활을 막 마치고 온 뒤라 마치 군복무를 마친'복학생' 같은 저로서는
서울에 새로 생기기 시작한 락카페에 대하여 알 리가 없었을 때입니다.

직장 동료와 서울 출장이 있었습니다.
강남 어디쯤으로 기억합니다. 손님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뒤,
둘이서 가볍게 맥주로 입가심이나 더 하자고 하여 술집을 찾는데
무슨 카페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행인이 순천 출신이었으니 조합이(삼천포/순천, 울산/순천) 드라마와 비슷합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입구에 있던 젊은 아저씨가 불쑥 앞으로 나섰습니다.
"사장님, 여기는 영계들이 오는뎁니다."
순간 나는 무슨 삐끼로 오해를 하여 약간 훈계조의 근엄한 어투로 받았습니다.
"우린 그런 델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말씀을 못 알아드시는 것 같은데 여기는 젊은애들이 오는데라는 말씀입니다."
"아이 거참 누가 와도 상관없어요. 우린 그냥 조용히 맥주 한 잔만 하고 갈 거니까."
"여긴 조용한 데가 아니라니깐요. 사장님들께서는 연세에 맞는 점잖은데 가셔서 노셔야죠."
젋은 아저씨의 말투에는 은근한 빈정거림이 들어있었습니다.
사장이란 호칭부터가 누가 보아도 30대 후반인 우리 나이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존칭의 의미가 될 수 없기도 합니다.
순천 동료가 극 중 삼천포처럼 좀 '연식'이 되어보이긴 했지만.

순천 동료가 나섰습니다. 그는 반드시 그 술집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처럼,
그 술집이 지상 마지막 술집인 것처럼 어조가 자못 강경했습니다.
"긍께 뭐시여. 서울엔 택시만 승차거부를 하는 줄 알았등만,
인자봉께 술집에서도 사람을 거부하네.
이봐 젊은 아저씨.
나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술집에 못들어가는 이유를 어디 한번 조근조근히 설명 좀 혀 봐."
"......"
"......"
.
.
.
이유가 뭐 있었겠습니까? 그냥 락카페라는 것이겠죠.
끝내 입장도 못했지만 입장을 했더라도 아마 바로 돌아나왔을 락카페.
우리는 나이, 인물, 복장 등등의 항목마다 체크를 당하는 '수질 관리' 대상이었구요.
수확이라면 그날 '락카페'라는 신조어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젊은 아저씨.
이제 당신도 어디선가 '관리'대상이 되어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있으려나?
그러다보면 더러 젊은 1994년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겠지.
세월은 그런 것이니까?
혹 당신이 말한 그 '점잖은' 카페에서 다시 만난다면 같이 술잔을 들고 외쳐도 되겠지?

"응답하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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