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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6

당나귀 두 마리 몇 해 전 세상을 잘 살고 있느냐를 검증하는(?) 농담 투의 질문이 있었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자격에 대한 풍자라고도 했다. 세상이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아서인지 요즘에도 질문과 풍자는 유효해 보인다. - 아직도 소형차를 타십니까? (예, 정확히는 소형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가끔씩 타는 차는 딸아이네 비상용 차를 빌려 타는 것입니다.)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 (예, 태어나서 강북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증권 시세를 모르십니까? (예, 시세는커녕 그걸 어떻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질문에 답하다 보니 난 잘 살아오지 못했고 중산층도 아닌 듯하다. 특별히 억울하지는 않다. 그런 세태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아둔함을 아내와는 무슨 달관의 지혜였던 양 덤덤히 이야기할 때도.. 2021. 4. 9.
배 혹은 물고기와 물 오늘의 교훈이라며 아침에 지인이 보내준 문자.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는 혼자 못 뜬다. 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나 어디선가에서는 배이기도 하는 삶이라 물을 잘 살펴야겠다는...... " 어제의 선거를 염두에 둔 말 같다. 물이 있어야 헤엄칠 수 있는 물고기 - 도대체 이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정책의 실패나 무능, 선거 전략이나 전술의 흥행을 논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도덕이 가른 승패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 기준은 후보자 개인의 품성이나 정당의 정책과 행적에대한 것이라기 보다 이번 선거가 만들어지게 된 원천에 닿는다. 물은 뱃길을 틔우고 물고기를 품어주지만 늘 흐른다. 그리고 때로는 차디찬 얼음이 되기도 한다. 몇 해 전 추운 겨울 내내 촛불을 들었던 국민은 이런 허탈함을 기대하지 .. 2021. 4. 8.
주꾸미 이야기 주꾸미는 낙지, 문어처럼 머리에 발이 달려 두족류에 속한다. 주꾸미의 머리는 사실 몸통이다. 그 안에 소화기관과 내장, 아가미, 생식기도 들어있다. 여덟 개의 다리 한가운데에 입이 달려있다. 다리에는 흡인력이 엄청 센 빨판이 붙어 있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는 주꾸미가 고려청자를 끌어안고 올라와 바다 밑 보물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이 주꾸미를 강장식으로 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안에서 많이 잡힌다. 충남 서천에서는 주꾸미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보통 '쭈꾸미'라고 하지만 주꾸미가 표준이다. '돈가스'가 아니고 돈가스인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조만간 짜장면과 자장면처럼 두 가지가 다 인정받지 싶다. 한자어로는 '웅크릴 준'을 써서 '준어(蹲魚)로 부른다. 『자산어보』에서는 '죽.. 2021. 4. 6.
부활절에 묻는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아침에 동남아 오지에 계시는 수녀님으로부터 첫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그곳엔 비가 많이 와서 3일째 정전인 데다가 곳곳에 물난리로 모든 공소의 미사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내일이면 지붕이 날라간 집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걱정하시면서도 씩씩하게 '알렐루야, 알렐루야!!!'라고 외치듯 적어주셨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명동성당과 바티칸 성당의 부활절 미사를 보았다. 냉담에 코로나 핑계까지 더해져 미사 참석은(?) 진짜 오래간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상에’ 보내는 축복) 강론에서 '전염병 확산과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위기, 그리고 멈추지 않는 전세계의 무력 충돌'에 우려를 표했다. 교황은 최근 미얀마 사태에 대해서도.. 2021. 4. 5.
영화『러빙』 백인인 리처드와 유색 인종인 밀드레드는 서로 사랑을 한다. 밀드레드는 임신을 했고 둘은 결혼을 서두른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에서 둘은 결혼을 할 수가 없다. 백인과 유색인종과의 결혼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은 어쩔 수 없이 컬럼비아 특별구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돌아오지만 신혼의 단꿈이 가시기도 전에 체포된다. 두 사람을 체포한 경찰관은 말한다. "주님의 뜻이야. 참새와 울새가 다르게 태어난 건 다 이유가 있어." 두 사람은 기소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다. 버지니아주에서는 25년 동안 함께 살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버지니아에 사는 한 아이들도 법적으로 사생아가 된다. 판결문은 이렇게 말한다. "전능하신 신은 온갖 피부색의 인종들을 창조하신 후 .. 2021. 4. 4.
보슬비의 속삭임 눈을 돌리는 곳마다 어질어질 봄꽃이 흐드러졌다. 잠시 현기증을 달래려는 듯 아침부터 내리는 봄비가 차분하다. 비가 그치면 봄풀과 꽃들은 더욱 왕성하게 피어날 것이다. 나는 나는 갈 테야, 연못으로 갈 테야. 동그라미 그리러 연못으로 갈 테야. 나는 나는 갈테야, 꽃밭으로 갈 테야. 꽃봉오리 만지러 꽃밭으로 갈 테야. 나는 나는 갈 테야, 풀밭으로 갈 테야. 파란 손이 그리워 풀밭으로 갈 테야. -강소천, 「보슬비의 속삭임」- 손자친구와 아파트 근처 공원을 뛰어다니다 화사한 큰 나무들의 꽃들 아래에 올망졸망 모여서 예쁘게 피어나고 있는 작은 꽃들을 보게 되었다. 봄은 봄 아닌 것들을 없게 한다던가. 왜 이 작고 앙증맞은 꽃의 이름이 "큰개불알꽃"인지 모르겠다. 일본인들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탓이라는.. 2021. 4. 3.
그러지 못할 수도 있는 날을 위해 아내와 함께 『죽음을 배우는 ― 시간』이란 책을 읽었다. 현직 의사며 교수인 저자인 김현아 씨가 의료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고민하게 된 '존엄사'에대한 연구를 담은 책이다. 책은 "병원 현장에서 환자나 그 가족은 끝없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의료 서비스에 집착하고 의료진들은 의료분쟁의 위험을 피하고자 방어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한 인간으로서 삶을 잘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명 의료에 매달리는 한국인의 임종 문화"에 대해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현실감 있는 설명을 담고 있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일어나는 최대의 사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일생 일대의 사건에 대해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보다도 준비를 덜.. 2021.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