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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5

모래알 하나 토요일 오후 시청 앞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갔다. 매번 그렇듯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행진을 했다. 답답하고 화가 나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선 동병상련의 연대감으로 흥겨운 분위기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집회가 다시 6년 전처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행진을 하면서 목청을 높이고 허공에 주먹을 뻗으면서도 의문과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그저 '빠삐따(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따지지 말고)'라는 백수의 원칙(?)에 따라 머릿수 하나 더할 뿐. 시인 김남주는 '모래알 하나로 적의 성벽에/입히는 상처 그런 일 직은 일에/자기의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는가. 집회에서 돌아와 오래된 책을 뒤져보았다. 두 시간 남짓한 시위도 아닌 집회에 참석한 것뿐이라 '칠.. 2024. 2. 18.
그것이 지금이라면 1974년 새해 벽두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과 개정 요구를 금지하고 위반할 때는 최고 징역 15년에 처할 수 있음을 골자로 한 이른바 '긴조(대통령긴급조치)'를 발령한다. 소식을 듣고 김지하는 잠적하여 3개월 동안 여기저기를 전전해야 했다. 이때의 심정을 「1974년 1월」이란 시로 남긴다.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 그 시간 / 다시 쳐 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 모두들 끌려가고 서투른 너 홀로 뒤에 남긴 채 / 먼 바다로 나만이 몸을 숨긴 날 / 낯선 술집 벽 흐린 거울 조각 속에서 /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 2022. 5. 14.
다시 보다 - 마당극『춘풍이 온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1980년 대 중반 우연히 마당극에 참여한 적이 있다. 몸을 담고 있던 독서회에서 뭔가를 기념하자는 취지로 학예회 수준의 '판'을 벌였던 것이다. 그래도 대학생과 일반 젊은 관객까지 제법 들어와 공연장의 열기는 그럴싸 했다. 문제는 배우 쪽에 있었다. 연극에 대한 경험은커녕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회원들인데다가 한자리에 모여 연습 시간도 충분치 못한 탓에 극의 진행은 매끄럽지 못 했다. 그런데 그 부족함이 오히려 관객들의 흥을 돋구는 듯했다. 나아가 관객들은 추임새와 격려로 분위기와 극을 이끌기도 했다. 관객들이 전문적인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판' 자체에 대한 공감대로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마당극에서 내가 맡은 역은 강도 - 시골에서 올라와 갖은 고생을 다하며 노력했지.. 2018. 12. 30.
내가 읽은 쉬운 시 13 - 김지하 *위 사진 : 80년대 풀빛출판사에서 재 간행된 시집 『황토』의 속표지 70년대 대학 시절, 친구들 네 명이서 독서회 비슷한 걸 만든 적이 있다. 원 취지야 책 읽고 토론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 한 일은 학교 앞 튀김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많았던 모임이었다. 특히 학과 공부건 독서회 공부건 모든 종류의 공부에서 ‘자유로웠던’(?) 나는 독서회 자체의 진행이나 준비보담 늦은 시각까지 술자리를 지키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어느 날 모임의 친구 한 명이 ‘가리방을 긁어’ 등사하여 '호치키스'로 찝은 허접한 형태의 등사물 한 부를 건네주었다. 등사물에는 김지하의 시집 『황토』와 담시(譚詩) 「오적(五賊)」이 옮겨져 있었다. 그 친구가 관계를 갖고 있던 학교 밖의 다른 모임에 가져온 것이었다. 친구에.. 2014. 5. 10.
두 가지 '추억' 혹은 악몽 5.16 군사쿠데타에 이은 1972년의 유신쿠데타로 종신 독재 통치를 획책하던 박정희는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1974년 1월, 대통령 긴급조치라는 전대미문의 폭력적 처방을 내놓는다. 그것은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과 개정 요구를 금지하고 위반자에 대해서는 최고 징역 15년을 언도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해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하겠다는 '대국민테러'였다. 곧이어 헌법개정청원을 위한 국민운동 주도하던 장준하와 백기완 등의 민주인사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글과 행동으로 박정권과 맞서던 시인 김지하는 긴급조치발령 소식을 방송으로 듣고 동해안으로 잠적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74년 1월」이라는 시를 남긴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 2012.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