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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9

생명 생명한 줄기 희망이다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한 줄기 희망이다돌이킬 수도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이 마지막 자리어미가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생명의 슬픔한 줄기 희망이여- 김지하, 「생명」-법륜스님이 말했다."생명이란 절대자유와 절대평등의 불성(佛性)을 실현하는 주체이며 불성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될 수 없으며, 그 자체가 그대로 목적이 된다. 생명의 존엄성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생명이 죽임을 당하거나, 차별받거나, 핍박이나 억압을 받아서는 안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의 첫 말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생명의 본성만이 존귀하다.. 2025. 3. 20.
국회도서관 구경 지하철 9호선을 타고 국회의사당역에 내려 정문을 통해 국회에 갔다.국회 담장 안으로 들어간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국회의사당이나 국회의원 회관에 똬리를 튼 인사 중에 겨레붙이나 지인, 친구가 한 명도 없(이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국회에 갈 일은 아니겠지만.국회 정문에 바투 다가섰던 적은  딱 한 번, 2016년 대통령 탄핵 시위 때였다.이제 그와 비슷한 일이 다시 또 있어야 하는 것인지······ 반복되는 아둔한 상황에 기가 찰 뿐이다.이번에는 국회도서관과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북카페 "강변서재"엘 가기 위해서 갔다. 도서관은 정문에 들어가 국회의사당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방향으로 3백 미터쯤 걸어가니 나왔다.얕은 계단을 올라서면 마주하게 되.. 2024. 8. 7.
그해 6월의 짧은 기억 80년대 싱가포르에서 온 회사 손님이 있었다.그는 제품 검사차 일 년에 서너 차례 한국에  오고 한 번 오면 한 달 정도씩 머무르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담당이 되어 '시다바리'를 하다 보니 일을 떠나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자상한 가장이었다. 자주 지갑 속 어린 딸아이의 사진을 꺼내보며 그리워했다. 일을 마치면 술자리를 탐하는 다른 검사관들과 달리 시장이나 백화점을 돌며 딸에게 줄 갖가지 인형들을 사모으러 다녔다. 함께 사진을 볼 때 '이쁘긴 하지만 내 딸이 훨씬 이쁘다'고 내가 말하면  'How come?'을 반복하며 '발끈'을 과장하기도 했다. 세상에 망고라는 과일이 있고, 우리 가족에게 그걸 처음 먹게 해 준 사람도 그였다. 어느 날 그가 백화점에서 바나나의 .. 2024. 6. 11.
남산 예장공원 1 남산 북쪽에 있는 예장공원은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가깝다. 조선시대 군사들의 무예훈련장이 있었다는 이 일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집약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의 조선 침략 발판인 통감부와 통감관저가 있었고 1910년 8월 22일에는 이곳에서 일제가 우리나라를 빼앗는 '경술국치'를 자행하였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에는 중앙정보부 건물들이 들어섰다.오랫동안 독립과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서서 우리를 억압해 온 현장인 것이다.서울시는 2021년 재생 사업으로 이곳을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공원에 들어서면 강렬한 붉은빛의 창고 같은 바라크형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기억6"이라 이름 붙여진 건물이다. 옛 중앙정보부 6국에서 유래된 이름일 것이다.1995년 중정에서 이름이 바뀐 안기부가.. 2024. 4. 30.
모래알 하나 토요일 오후 시청 앞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갔다.매번 그렇듯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행진을 했다. 답답하고 화가 나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선 동병상련의 연대감으로 흥겨운 분위기가 생겨나기도 했다.이런 집회가 다시 6년 전처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행진을 하면서 목청을 높이고 허공에 주먹을 뻗으면서도 의문과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그저 '빠삐따(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따지지 말고)'라는 백수의 원칙(?)에 따라 머릿수 하나 더할 뿐. 시인 김남주는 '모래알 하나로 적의 성벽에/입히는 상처 그런 일 작은 일에/자기의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는가. 집회에서 돌아와 오래된 책을 뒤져보았다.두 시간 남짓한 시위도 아닌 집회에 참석한 것뿐이라 '칠팔십.. 2024. 2. 18.
그것이 지금이라면 1974년 새해 벽두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과 개정 요구를 금지하고 위반할 때는 최고 징역 15년에 처할 수 있음을 골자로 한 이른바 '긴조(대통령긴급조치)'를 발령한다. 소식을 듣고 김지하는 잠적하여 3개월 동안 여기저기를 전전해야 했다. 이때의 심정을 「1974년 1월」이란 시로 남긴다.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 그 시간 / 다시 쳐 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 모두들 끌려가고 서투른 너 홀로 뒤에 남긴 채 / 먼 바다로 나만이 몸을 숨긴 날 / 낯선 술집 벽 흐린 거울 조각 속에서 /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 2022. 5. 14.
다시 보다 - 마당극『춘풍이 온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1980년 대 중반 우연히 마당극에 참여한 적이 있다. 몸을 담고 있던 독서회에서 뭔가를 기념하자는 취지로 학예회 수준의 '판'을 벌였던 것이다. 그래도 대학생과 일반 젊은 관객까지 제법 들어와 공연장의 열기는 그럴싸 했다. 문제는 배우 쪽에 있었다. 연극에 대한 경험은커녕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회원들인데다가 한자리에 모여 연습 시간도 충분치 못한 탓에 극의 진행은 매끄럽지 못 했다. 그런데 그 부족함이 오히려 관객들의 흥을 돋구는 듯했다. 나아가 관객들은 추임새와 격려로 분위기와 극을 이끌기도 했다. 관객들이 전문적인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판' 자체에 대한 공감대로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마당극에서 내가 맡은 역은 강도 - 시골에서 올라와 갖은 고생을 다하며 노력했지.. 2018. 12. 30.
내가 읽은 쉬운 시 13 - 김지하 70년대 대학 시절, 친구들 네 명이서 독서회 비슷한 걸 만든 적이 있다.원 취지야 책 읽고 토론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 한 일은 학교 앞 튀김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많았던 모임이었다. 특히 학과 공부건 독서회 공부건 모든 종류의 공부에서 ‘자유로웠던’(?) 나는 독서회 자체의 진행이나 준비보담 늦은 시각까지 술자리를 지키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어느 날 모임의 친구 한 명이 ‘가리방을 긁어’ 등사하여 '호치키스'로 찝은 허접한 형태의 등사물 한 부를 건네주었다. 등사물에는 김지하의 시집 『황토』와 담시(譚詩) 「오적(五賊)」이 옮겨져 있었다. 그 친구가 관계를 갖고 있던 학교 밖의 다른 모임에 가져온 것이었다. 친구에게 시집을 건네받기까지 나는 시인 김지하에 대해 거의 알고 있지 못했다. .. 2014. 5. 10.
두 가지 '추억' 혹은 악몽 5.16 군사쿠데타에 이은 1972년의 유신쿠데타로 종신 독재 통치를 획책하던 박정희는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1974년 1월, 대통령 긴급조치라는 전대미문의 폭력적 처방을 내놓는다. 그것은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과 개정 요구를 금지하고 위반자에 대해서는 최고 징역 15년을 언도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해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하겠다는 '대국민테러'였다. 곧이어 헌법개정청원을 위한 국민운동 주도하던 장준하와 백기완 등의 민주인사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글과 행동으로 박정권과 맞서던 시인 김지하는 긴급조치발령 소식을 방송으로 듣고 동해안으로 잠적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74년 1월」이라는 시를 남긴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 2012.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