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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7

단 한 사람 새해 결심 중의 하나가 일주일에 (어떤 그림이라도) 그림 한 장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어반스케치 모임의 회장님이 그러지 말고 하루에 10분씩만 그리는 걸로 하라고 했다. 10분은 부담이 없지만 일단 한번 펼친 스케치북을 10분 만에 닫는 경우는 없을 것임을 노린, 나 같은 '귀차니즘' 중독자를 위한 독려의 방법이겠다. 새해도 두 달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서야 그 말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방학 중인 손자를 돌보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그림 두 장을 그렸다. 위 그림은 이중섭의 그림 중에 쉬운(?),「다섯 어린이」를 따라 한 것이다. 이중섭이 헤어져 멀리 있는 두 아들을 그리워 하며 그렸을 것이다. 나는 요즘 매일 함께 뒹구는 손자저하들을 생각하며 그렸다. 두 번째 그림 역시 이중섭의 「부부」를.. 2024. 2. 28.
아내와 나 생각해보면 부부란 놀라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논리적으로 만날 수 있는 확율보다 만나지 못할 확율이 더 높은.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아내가 한국에서 돌아온 날. 하늘도 덩달아 푸르러진다. *2010년 8월 2014. 10. 8.
아내와 나의 노래 비오는 저녁 홀로 일어나 창밖을 보니 구름 사이로 푸른 빛을 보이는 내 하나 밖에 없는 등불을 외로운 나의 벗을 삼으니 축복 받게 하소서 희망의 빛을 항상 볼 수 있도록 내게 행운을 내리소서 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어두운 여행길 너와 나누리 하나의 꽃을 만나기 위해 긴긴 밤들을 보람되도록 우리 두 사람은 저 험한 세상 등불이 되리 70년대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좋아하던 "4월과 5월"의 노래입니다. 결혼 뒤에는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에 빼놓지 않고 듣거나 불러보는, 우리 부부의 '애국가'가 되었습니다. 작년 결혼 25주년 - 은혼식 저녁에도 둘이서 합창으로 불러보았습니다. 노랫말처럼 '폼나게' 살아지지 않는 것이 세상살이입니다만, 그래도 노래를 부를 때마다 아내의 따뜻한 손을 잡고 우리.. 2014. 10. 8.
꽃길을 걷다 야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날, 아내는 서둘러 집 근처 공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우리 신랑이 올 때까지 지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꽃들에게 부탁을 했었다고. 그 때문인지 꽃은 여전히 환한 자태로 나를 맞아 주었다. 게다가 유난스런 올봄의 심술스런 날씨에 앞서 떨어져내린 꽃잎들마저 땅 위에 눈부신 꽃길을 만들고 있었다.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안도현의 시, "3월에서 4월 사이"- *2010년 4월 2014. 10. 8.
밥을 먹으며 시를 읽는데 아내가 한국에 가기 전 냉장고 냉동실에 덥혀 먹기 좋게 나누어 얼려놓은 국을 해동시켜 저녁밥을 먹으며 시를 읽는데 이런 시가 눈에 들어왔다.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 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감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 이재무의 시, "국수" - 마지막 소절에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시인이 부부싸움이라도 했을까? 아내가 화가 났던가 보다. 시인의 아내처럼 화가 나서 간 것은 아니지만 불현듯 나도 한국에 있는 .. 2014. 10. 8.
아내와 보낸 시간 몇 점 *어느 월간지 기자 덕에 느닷없는 부부 '여행가'가 되었던... *발리의 바뚜르 BATUR산을 내려오며 *강원도 미천골의 가을날 *샌디에고 미션베이 MISSION BAY 에서 지난 사진을 정리하다 몇 장 모아보았다. 언제건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은 따뜻하다. *2009년 2014. 10. 8.
사랑하는 사람이 잠들었을 때 *위 사진 : 수술 전날 딸아이와 함께 아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헐렁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을 위한 여러 검사를 받고, 간호사와 의사의 반복되는 질문에 답하고, 몸속의 병보다 더 겁나는 수술 도중에 일어날 수 있는 무서운 가능성에 대한(발생확율은 거의 없다지만)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하며,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약의 힘을 빌려 가까스로 잠이든 아내의 발치에 앉아 나는 이불 밖으로 나온 작은 아내의 발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나와 함께 견뎌 온 한 세월이 아내의 갈라진 발 뒤꿈치에 스며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의 잠자리를 지키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물 한방울도 삼키지 말라는 금식의처방을 따라야 하는 그녀의 갈증에 함께 동참하고 온힘을 모아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아쉬울 .. 2013.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