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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4

후회는 반성이 아니다 고흐가 죽기 얼마 전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 속 고통으로 흐느끼는 남루한 차림의 노인은 아마 고흐 자신이리라. 그 무렵 그는 평생 동안 유일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일이 전혀 풀리질 않는구나. 내가 얼마나 많은 슬픔과 불행을 더 겪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구나. 이젠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아픈 동안에도 기억을 더듬어 작은 그림을 몇 점 그렸다.” 고흐의 글과 그림은 지금의 무능·무도한 정권이 들어선 이래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겪은 하루하루와 닮아 있다. 배터리는 나가고 갈아 끼울 기력도 없어진 시간 아닌가. 가지 말라는 길을 갔다 만나지 않으면 좋았을 사람들을 만나고 해선 안 될 일들만 했다 그리고 기계가 멈추었다 .. 2024. 3. 12.
모래알 만한 즐거움으로 꾸물거리던 날씨가 비를 내리기 시작해서 우산을 들고 손주저하 하교 시간에 맞춰 마중을 갔다.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떠들며 나오는 저하와 아는 척을 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저하에게 물었다. "누구야? 아빠야?" 저하는 기가 차다는 듯이 대답했다. "야! 딱 보면 모르냐? 할아버지잖아? 어떻게 아빠야?" 그런데 또 다른 친구가 끼어들었다. "동안이시네!" 이런 말을 손자 친구, 그것도 초등 1학년에게 듣다니! 끝에 '요' 자도 붙이지 않은 묘한 어감의 말투였다. 하긴 '요' 자를 붙였다 해도 좀 황당(?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별다르게 대꾸해 줄 말이 없어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을 하니 옛날에 있었던 비슷한 일 하나를 상기시켜 주었다. 오래전 처갓집에서.. 2023. 11. 17.
2020년 8월의 식탁 손자친구는 어린이집에서는 낮잠을 잘 잔다는데 집에서는 전혀 다르다. "왜 잠을 안 자니?" 물어보면 간단히 대답한다. "놀아야 하니까." 저녁 무렵이 되면 끄덕끄덕 졸다가도 그것으로 급속 충전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하마터면 잠들뻔 했다'고 정신을 차리는 것인지 벌떡 일어나 지친 기색없이 뛰어다닌다. 그러면서도 밤이 늦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일찍 자야 키가 쑥쑥 크는 거야." 아내가 식사 자리에서 교육을 시도했다. 손자친구는 이 말에 말없이 아내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할머니는 다섯 살때 늦게 잤어?" (아내는 키가 작다.) 딸아이도 거들었다. "니가 늦게 자면 할아버지가 앞으로 (너를 보러) 늦게 오고 일찍 자면 할아버지가 일찍 올 거야." 손자친구가 말했다. "내가 늦게 자도 할아버지는 내가 보고.. 2020. 9. 2.
내가 읽은 쉬운 시 159 - 최영미의「공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는다」 축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다. 국가대표팀이 "청룡팀"과 "백호팀"이란 1,2진으로 나뉘어져 있던 70년대 초부터 축구 팬이었다. 아니 그 이전의 "양지팀"이라 부를 때부터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서윤찬, 임국찬, 정병탁, 정규풍, 이회택, 박이천, 정강지, 등의 이름을 여전히 기억한다. 태국의 킹스컵이나 말레이지아 메르데카컵의 라디오 중계에 귀를 기울이고 서울운동장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 중계를 프로레스링 김일의 박치기만큼 좋아했다. 지금 K-리그 팀 중에서는 FC서울을 응원한다. 쉬임없이 상대와 부딪히며 뛰어야 하는 단순한 격렬함의 매력에 나는 오래 열광해온 것이다. 설날 연휴 기간이었던 26일 AFC U-23챔피언쉽에서 우리나라 팀이 우승을 했다. 조별 예선전부터 결승까지 전승을 한 것도 .. 2020.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