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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4

저하들과 추석 보내기 추석의 유래와 형식은 조상님들께 바치는 제사겠지만 실질은 가족들과, 특히 저하들과 만나는 축제다. 아내와 나는 저하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쉽게 감동하고 자지러질 준비가 되어있다. 추석빔을 입은 저하들의 절을 받는 잠깐의 절차가 끝나고 다시 평상복 차림이 되면 저하들은 이내 평소의 권력을 자유롭게 행사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마술을 보여줘요." 하는 최초의 하명에 야심 차게 준비한 마술을 보여주었지만 실패했다. 요즘 1호 저하의 마술을 보는 수준이 여간 아니어서 매의 눈으로 서툰 나의 비법을 쉽게 간파하고 말았다. '깽깽이' 수준을 겨우 벗어난 1호의 바이올린 연주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기도 해야 한다. 가끔씩은 연주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옛날에 즐거이 지내던 일 나 언제나 그.. 2023. 10. 1.
추석 보내기 지인에게 잠시 카톡을 쓰는 중에 초인종이 울렸다. '저하'이자 '친구'들이 온 것이다. 일단 그들이 오면 짧은 카톡을 쓰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에게 전념하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혹시나 해서 예정보다 조금 빨리 잡채와 닭요리 등의 음식을 만들어 둔 것이 다행이었다. 큰손자는 예전에 없던 바둑판을 들고 왔다. 오목으로 이미 강호를 평정한 듯한 기세였다. 둘째는 오목을 두는 방으로 쫓아와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잠시 아내 돌봄을 딸에게 맡겨두고 밖으로 나가 그들과 그네를 타고 공놀이를 했다. 그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맑은 하늘로 퍼져 올랐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Track : Lovely Kids - https://youtu.be/.. 2022. 9. 11.
송편 딸아이가 한국에서 왔다. 추석이라해서 별다른 분위기가 느껴질 리 없는 샌디에고이지만 송편이라도 사다가 간만에 함께 모인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이국에서의 추석 기분을 내려고 했는데, 마침 이곳의 한 한인은행에서 고객들을 위해 사무실 한 쪽에 송편을 마련해 놓았다. 그것으로 추석 음식을 대신하였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김종길의 시, “설날 아침에” 중에서 - (2010.9) 2014. 5. 17.
추석 연휴 보내기 1 동년배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명절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아마 나이들어감에 대한 아쉬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겁니다. 추석빔으로 갈아입은 새 옷(요즈음 이런 풍속은 없어졌지만)과 맛있는 음식, 어른들로부터 받는 용돈의 추석이라면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아득한 추억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있을 수 없는 연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쨌거나 내게는 변함없이 즐거운 명절입니다. 조율이시, 홍동백서, 어동육서, 좌포우혜, 두동미서, 내탕외과 등의 잘 익숙해지지 않는 말들을 되새겨가며 차례상을 차려 절을 하고 식구들과 가평 북한강변의 한 펜션으로 자리를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저물어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저마다 책을 읽고 퍼즐을 풀거나 컴퓨터를 하며 시간도 마음도 강물처럼 길게 풀어놓았습니다.. 2012.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