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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손자 친구의 하이킥

by 장돌뱅이. 2020. 12. 19.


여느 어린이가 그렇듯 손자 친구는 솔직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이해한 상황에 대해 거침없이 의견을 내놓는다.
친구의 군더더기 없이 산뜻한 하이킥엔 백전백패(?)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 이전 글 : https://jangdolbange.tistory.com/2074 )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혹 그런 솔직함과 거침없음, 기발함이 무뎌진다는 뜻 아닐까?


손자 친구
의 하이킥1
당연한 말이겠지만 요즈음 아이들이 접하는 문명의 이기는 우리 어릴 적과는 아주 다르다.
손자1호는 컴퓨터는 물론 아이패드를 알고, A.I 스피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안다.
능숙하진 않아도 조금씩 활용하기까지 한다.
컴퓨터에 영문과 한글을(물론 아무 탭이나 누르는 수준) 눌렀다가 지우고, 아이패드를 켜주면 혼자서 산수 공부를 할 줄도 안다. 
자기가 원하는 노래를 AI 스피커에 요청하고 보고싶은 영화를 찾아 유튜브나 넷플프릭스에 들어가기도 한다.
새로운 디지털 기기나 프로그램에 머뭇거리는 아내와 나에 비하면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친구는 왕성한 에너지의 소유자인지라 집안에만 놀아서는 좀처럼 체력 방전이 쉽지 않다.
집밖에 나가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거나 놀이터와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야 한다.
하지만 감기 기운이 있거나 날씨가 특별히 너무 춥거나 더우면 어쩔 수 없이 제재를 하게 된다.
가장 좋은 이유는 미세먼지다. 어린이집에서도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수업을 취소한 적이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핸드폰으로 상황을 보여준다. 세부적인 상황 보다는 붉은 색으로 나쁜  대기 상황을 이해한 친구는 쉽게 수긍을 한다.
어른들의 잔머리로 미리 캡쳐해 둔 붉은 화면을 보여줄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친구가 AI스피커를 다룰 줄 알게 된 것이다.
나가고 싶을 때 어른들의 핸드폰 대신 혼자 해결한다.
"헤이 카카오, 오늘 날씨 말해줘!"


손자 친구의 하이킥2
친구는 늦게 잠을 자는 버릇이 있다.
그래도 외계인은 아닌지라 하루종일 놀고 저녁 무렵이 되면 조금은 행동이 둔해진다.
저녁밥을 먹는 자리에서 눈꺼풀이 내려올 때도 있다.
어른들은 친구를 바라보며 서로 눈짓을 주고 받는다.
"그분이 오셨네."
하지만 손자는 식사가 끝나면 바로 '그분'을 보내버리고 다시 초롱한 눈으로 돌아오곤 한다.

어느 날 손자와 나란히 앉아서 그가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았다.
벌써 몇 번을 같이 본 영화라 딴짓을 하고 싶지만 손자는 늘 자기 옆을 지키라고 한다.
심지어는 핸드폰도 보지말라고 엄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처럼 아예 압수해 버릴 때도 있다. 
그러다가 내가 깜박 졸았을 때 손자의 말이 귀에 전해 왔다.
"할아버지도 그분이 오셨네."
평소 대화 중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그 의미를 확인하는 손자가 '그분'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이유를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영악스런 친구는 이미 어른들 사이의 은밀한 대화를 졸음 중에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손자 친구의 하이킥3
친구에게 '박사'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로켓트 박사이고 자동차 박사이다. 전자는 아빠의 직업에 대한 나름의 인식이고,
후자는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아빠의 자세한 답변을 근거로 붙여준 '자격'이다.

특히 맑은 날에도 차에서 비가 오는(워셔액) 묘기를(?) 보여준 뒤론 아빠와 차에 대한 놀라움과 자부심이 커진 것 같다. 

"그럼 할아버진 무슨 박사야?"
나의 물음에 친구가 주저없이 말했다.
"할아버진 놀기 박사야!"
나는 친구가 수여해 준 학위가 썩 마음에 들었다.


*친구가 AI스피커로 맹연습 중인 크리스마스 캐럴.
일부 얼버무리며 '비굴해지는' 부분이 있지만 흥겨움이 캐럴의 주제라면 그곳이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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