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팔레스타인
꼬일 대로 꼬여 좀처럼 해법이 없어 보이는 중동 분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원에 강대국의 책임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차 세계 대전 와중이었던 1915년 7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영국의 외교관 헨리 맥마흔은 아랍의 정치·종교 지도자 후사인에게 아랍인이 영국과 함께 오스만제국과 싸우면 전쟁이 끝난 후 아랍 독립국가 수립을 지원하겠다는 문서를 보냈다. 그런가 하면 1917년 11월에는 외교장관 벨푸어가 유대인의 협력을 얻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일 목적으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영국의 이런 모순된 행동으로 팔레스타인에는 분쟁의 불씨가 심어지게 된 것이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폭력과 그 폭력을 방조하는 강대국들의 이기심이 더해진 것이 오늘의 중동 문제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건국은 곧 팔레스타인에 대한 침략이었다. 유럽 유태인은 2천 년 동안 혹독한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본 유럽 미국의 기독교인과 정부가 시오니즘 운동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사정도 이해할 만하다. 자신의 국가를 세워 안전한 삶을 도모하려 한 유대 민족의 동기도 정당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을 내쫓을 권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모든 민족이 수천 년 전 조상이 한때 살았다는 이유로 남이 사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폭력을 행사한다면 세계는 당장 전쟁터가 되고 말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그곳에서 땅을 경작하고 자손을 낳고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일군 아랍인의 것이었다. 시온주의자들은 호소하고 설득하고 협력을 구한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원주민을 내쫓았다.
(···) 제국주의 시대가 저물고 아랍 민중이 민족 정체성과 자주성에 눈을 뜬 그 시기에 시온주의자들이 저지른 학살과 파괴 행위를 정당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온주의는 다른 민족 집단을 폭력으로 내쫓고 자기 나라를 세운 침략적 민족주의였다. 그들이 한 일은 수천 년 동안 유대인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박해하고 학살한 유럽 기독교인의 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 『거꾸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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