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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추억의 독서 3

by 장돌뱅이. 2022. 9. 26.

2. 사라예보 사건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1930)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2장은 사라예보 사건이다.
1914년 6월 28일 열아홉 살의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사라예보를 방문 중인 오스트리아 - 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총으로 암살한다.  이 사건은 다양한 민족·종교·문화가 어지럽게 얽힌 발칸반도의  사회적·정치적 갈등을 배경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국제전', 즉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유럽의 역사는 내게 너무 복잡해서 헷갈린다.)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쏘지 않았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것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과 같은 우문일  것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 읽었던 E.H.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이렇게 가르쳤다. "역사에서 운이나 우연을 강조하는 이론들은 역사적 사건의 봉우리가 아니라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집단이나 민족에게서 우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험 성적이란 모두 운수 나름이라는 생각은 열등반에 배치될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유행하게 마련이다."라고.

"전쟁의 원인은  20세기까지 살아남았던 괴물, 갈 수만 있다면 '달도 삼켰을 제국주의'였다." 19세기 말 엄청난 자본을 축적한 거대 기업들이  대량으로 생산한 상품을 소비하고 값싼 원료를 찾아 세계 곳곳으로 달려갔다. 정부는 그들을 군대의 힘으로 도왔다. 지구상에 '임자 없는 땅'이 사라지자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는 식민지를 넓힐 방법이 없었다. 자본주의 열강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전쟁의 승자와 패자보다 그 전쟁의 광풍에 휩쓸려야 했던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7천만 명이 넘었던 참전군인 가운데 독일 200만, 러시아 170만, 프랑스 136만, 오스트리아-헝가리 120만 등 940만 명이 전사하고 3,200만 명이 다쳤다. 인도인을 비롯해 지원 임무를 수행하다 살상당한 민간인과 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 게릴라는 정확한 사상자 통계가 없다.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다 못해 사망한 각국의 민간인, 혁명과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목숨을 잃은 러시아 민중, 수천만 명의 1918년 신종인플루엔자(소위 '스페인독감') 사망자 중에도 전쟁 피해자로 보아야 마땅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전쟁터로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조국이나 애국이란 단어가 얼마나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들씌워졌을 것인가. 시시각각 생과 사를 다투어야 하는 처절함 속에서 젊은이들은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반복해서 물어야 했을 것이다.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왔어. 그런데 프랑스인들도 자기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온 거 있지. 그럼 어느 쪽의 생각이 옳은 거야?"

-  레마르크의 소설 , 『서부전선 이상없다』 중에서-

전선은 제자리를 유지하지만 바로 그 제자리를 위해서 병사들은 끝없이 죽고 또 다른 누군가 그 자리를 채워야 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그의 친구들처럼 죽던 날 군사령부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건조한 기록을 남긴다. 그랬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전선에 있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

강대국들은 또 중동에 지원 세력을 만들기 위해 아랍과 유대인에게 각각 독립국가 수립을 지원하겠다는 '창과 방패'의  당근을 던지기도 했다. 훗날 돌이킬 수 없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잉태시킨 것이다.
전쟁은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 반드시 거짓말이란 친구를 대동해야 한다고 하던가. 


 3. 러시아혁명

 80년대 초 연애시절 지금의 아내로부터 김학준의 『러시아혁명사』를 선물로 받았다. 
오래된 책들을 버리거나 주위에 나누어주면서도 이 책은 남겨둔 이유이다.

김학준의 『러시아혁명사』는 '미국 자료에 의존한 보수 우파의 시각으로 인물 사건 중심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내겐  혁명을 전후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명멸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마치 '러시아판 삼국지'를 읽는 듯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그 방대함에 놀랐다. 러시아혁명을 다룬 국내 최초의 책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뒤이어 많은 종류의 '러시아혁명사'가 쏟아져 나왔다. 급하게 우회전을 하는 정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몸이 왼쪽으로 쏠렸던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현상이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접할 수 없던 책들을 서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혁명 전후의 내용을 담은 몇 권의 러시아 소설을 읽은 것도 그 시절이었다.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숄로호프의『고요한 돈 강』, 오스뜨로프스끼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등등. 그중에선『고요한 돈 강』이 인상적이었다. 나머지는 '혁명의 미래와 진실에 대한 헌신적 정열'로만 뭉친 인간상들이 너무 기계적으로 느껴져 살갑게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전함 포템킨』 오리지널 포스터(1925)

낡은 비디오 필름으로 보았던 러시아 영화『전함 포템킨』도 생각난다.『전함 포템킨』은 혁명 후인 1925년 혁명의 정당성과 과업 완수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주제를 떠나 화면 전개의 특별한 기법이 지금도 영화 전공자들을 괴롭히는(?) 수작이라고 한다.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냥 무성영화일 뿐이었다. 같이 보았던 사람들은 진지했지만 (돌이켜보면 희극적이기까지 한 진지와 몰입) 나는 솔직히 찰리채플린 영화가 더 재미있었다.

1905년 6월 러시아 흑해함대의 전함 포템킨호에서 반란이 터졌다.   상한 고기로 만든 음식에 항의하는 병사들에게 장교들은 총을 겨누며 먹기를 강요했다. 병사들은 장교를 사살하고 함선을 장악했다. 연료와 보급품을 구하려고 들어간 오데사 항구에서는 노동자들과 함께 정부군에 맞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이기도 했다. 반란은 지속되지 못했지만 제정 러시아의 황혼을 상징하는 한 사건이었다.

구스타프 클루치스 <위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하자>, 1930년

1917년  러시아혁명은 마침내 성공했다. 그러나······

레닌과 볼셰비키는 말과 글로만 존재하던 꿈을 실현하려고 했다. 억압과 불평등이 없는 이상사회를 향한 갈망을 품고 전제정치와 싸웠다.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해 그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세상은 꿈과 달랐다. 소련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예전과는 다른 사람들이 예전과는 다른 명분을 내세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했다. 개인의 자유는 말살되었고 경제는 비효율적이었다.  그들의 '위대한 실험'은 끔찍하고 허망한 실패로 끝났다. 레닌과 같은 인물이 몇십 년 늦게 태어났다면 솔제니친이나 사하로프보다 더한 반체제 투사가 됐을지 모른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발췌  정리 -

 

라스푸틴의 귀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하였다. 전쟁 초기에 독일군과 전투에서 사기가 높았던 러시아군은 개전 1년이 지나지 않아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1915년 전반기까지 러시아 군대의 전사자는 151,000

jangdolbange.tistory.com

*이전 글  : 2016.10.28 - [일상과 단상] - 라스푸틴의 귀환

위 글은  2016년 가을 박근혜정권 퇴진을 위한 1차 촛불집회를 마치고 돌아와 쓴 글이다.
'오방살(오방색)'이니 '우주의 기운'이니 하는 황당한 무속이 국가의 최고기관에 들어와 농단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에 잊고 있던 라스푸틴이 떠올랐던 것이다.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촉진했던 요승 라스푸틴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놈의 '라스푸틴'이 지금도 건재한 느낌이다. 그것도 더 강력한 버전으로. 어찌해야 할까. 나도 용한 무당이라도 찾아 푸닥거리라도 한번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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