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봄기운도 쉽게 느껴지지 않는 애매한 달이다.
그래도 요며칠은 날이 푸근해서 아내와 오래간만에 서울숲을 걸을 수 있었다.
짙은 갈색의 나무들은 지난 가을에 잎을 떨군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있었다.
겨울숲이 주는 차분한 침잠(沈潛)과 깊은 적요로움이 감미롭게 다가왔다. 화사한 봄과, 싱싱하고 무성한 여름과, 명징하고 화려한 가을이 쌓여 숙성이 되면 그런 겨울숲의 풍요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가끔씩 눈과 얼음이 녹아 말랑말랑한 땅을 만났다. 굳이 피해가며 걷고 싶지 않았다.
앞서간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 흙에는 여러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내와 하굣길 신발 밑창에 달라붙은 진흙을 나뭇가지로 떼어내던 어린 시절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봄똥은 겨울이 가기 전에, 혹은 겨울을 보내며 아내와 내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즐겨찾는 식재료다.
(*이전 글 참조 : 2020.02.22 - 안도현의「봄똥」)
올해도 거를 수 없는 연례행사라 '봄똥'을 사다가 겉절이, 부침, 된장국을 끓였다.
봄동은 "봄똥!"이라고 발음한다.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라 일부 지방에서는 납작배추, 납딱배추, 딱갈배추, 떡배추 등으로도 불린다지만 '봄똥'이 가장 어울린다. 발음을 하면 입술이 동그래진다. '똥'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거부감 없이 들리기는 쉽지 않다. 손자친구의 통통한 볼살처럼 앙증맞은 느낌이 든다. 고춧가루와 올리고당, 다진마늘, 간장, 설탕, 멸치액젓, 매실청 등으로 양념을 만들어 손질해 놓은 봄동과 무쳤다."
- 장돌뱅이의 글 ( https://jangdolbange.tistory.com/1788 )중에서 -
'봄똥'부침 옆에 있는 노란색은 고구마를 튀긴 것이다.
아내는 이것에도 대단히 만족해했다.
아내가 '봄똥'된장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평소 국물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이기에 내가 만든 된장국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다. 나는 춤을 춘다.
해마다 반복하는 이 세 가지 말고 뭐 다른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얼마 전 먹고 남은 과메기와 조합을 만들어 보았다. 과메기가 없이 그냥 씻은 '봄똥'만 먹어도 고소했다.
'봄똥' 다음은 도다리쑥국이다. 아내와 내게 '봄똥'이 겨울을 보내는 음식이라면 도다리쑥국은 봄을 맞는 음식이다. 아직 쑥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먹을 수 없다. 도다리쑥국은 경상도 충무의 향토 음식으로 향긋한 햇쑥과 구수한 된장, 그리고 달짝지근한 도다리의 살이 만드는 조합이 일품이다. 해마다 을지로 입구에 있는 "충무집"이란 식당에서 사 먹었다. 올해도 그럴 거지만 집에서도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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