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백제금동대향로

by 장돌뱅이. 2024. 1. 8.

주말마다 초등학생의 딸과 아내와 함께 국토여행을 떠나던 때가 있었다.
30여 년 전 회사일로 인도네시아 주재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처음으로 하는 이국생활은  호기심 넘치고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떠나온 국토에 대한 갈증이나 그리움  같은 것이 커져 갔다. 상심이 될 정도의 향수병은 아니었다. 다만 인도네시아에서 여기저기를 여행하다 보니 돌아가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준비해서 좀 '체계적으로(?)'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귀국해서 실행에 옮긴 것이다.

골곡이 많은 우리의 역사는 곳곳에 여러 가지 사연들을 남겨 그것들을 알아보고 현장에서 확인하는 일은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여행의 첫 목적지는 경주였다. 살던 울산에서 가까워서 매 주말 서너 달 동안 지도에 형광펜을 그어가며 경주의 곳곳을 가족과 함께 헤집고 다녔다. 천년 고도 경주라더니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경주의 신라 다음에는 전라도, 부여와 공주 일대의 백제로 향했다. 울산에서는 국토를 횡단해야 갈 수 있는 곳이어서 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여행이었다. 마침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인기를 끌 때여서 나는 그 책을 들고 다니며 해당 유적지 앞에서 가족들에게 읽어주곤 했다. 많이 보기보다는 오래 보자고 했지만 오래 볼 수 있는 밑천이 없는 문외한이니 유홍준 씨의 글을 빌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딸은 그런 나를 보며 '짝퉁 유홍준'이라고 킥킥거렸다. 

 

지난 국토여행기 25 - 부여

READ BETWEEN THE LINES 바다 건너 중국과 일본까지 폭넓은 국제관계를 유지하며 왕성한 국운을 자랑하던 백제는 서기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공격에 700년 가까운 역사를 접고 멸망했다. 마지막 123년간

jangdolbange.tistory.com

 

지난 국토여행기 48 - 놀뫼・황산벌・논산

논산혼련소의 기억 아내와 논산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논산훈련소를 떠올렸다. 우리나라 20대 젊은이들의 공통된 관심사이자 고민거리이며, 어떤 형태로건 통과해야 하는 ‘군대살이’의 첫 단

jangdolbange.tistory.com

최근에 날마다 국토여행을 다시 하고 있다. 책으로 하는 여행이다.
유홍준 씨의 『국토박물관 순례』를 하루에 한 챕터씩 읽고 있는 중이다. 연천 전곡리의 구석기시대에서 시작하여 부산 영도, 울산 언양, 고구려의 만주를 지나 이제 백제의 부여에 도착하였다.

부여에서 "백제금동대향로"를 읽으며 향로를 상상하는 시간은 황홀했다.
아내에게 부여에 다시 가봐야 하는 이유로 이 향로를 들었다.
내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 '짝퉁 유홍준'답게  다시 또 그의 글을 빌려와야 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문화의 꽃이다. 백제문화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말해주는 물증이다. 이 향로의 발견으로 우리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미학을 지녔다는 백제 아름다움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실로 우대한 발견이었다.

이 향로의 높이는 61.8센티미터, 무게는 11.85킬로그램이나 되는 대작으로 다른 향로들과 비교할 때 부피가 2배 가까이 된다. 향로의 구조는 받침, 몸체, 뚜껑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뚜껑이 닫힌 상태에서 보면 용의 입에서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분출하는 듯한데, 맨 위에 봉황이 올라앉아 있는 3단 구조다. 이 향로는 기본적으로 한나라 때부터 유행한 박산향로(博山香爐)의 형식을 따른 것이다. 중국의 박산향로는 대개 바다를 상징하는 승반(承盤) 위에 박산을 상징하는 중첩된 산봉우리가 얹혀 있는 모습이다. 박산은 중국의 동쪽바다 한가운데 불로장생의 신선이 살았다는 이상향으로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 등 삼신산을 말한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이런 도교적 상징성을 갖는 박산향로에 불교적 이미지인 연꽃을 결합시키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형식을 구현한 것이다. 받침대의 용은 힘껏 용틀임하면서 치솟아 오르는 강한 동세를 보여주며, 뚜껑 꼭지의 봉황은 부리와 목 사이에 구슬을 끼고 있는 상태에서 날갯짓을 하기 위해 꼬리를 한껏 치켜올린 모습이다.
이에 반해 몸체와 뚜껑으로 이루어진 꽃봉오리는 풍만하면서도  팽팽한 입체감이 넘친다. 이처럼 받침대와 몸체는 동(動)과 정(靜)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뚜껑에는 신선의 세계를 나타내는 무수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나오는 도상은 백제인의 관념 속에 있는 신선 세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영원불멸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는 것이다.

책은 '명작은 디테일이 아름답다'며 추사 김정희의 말대로 '금강역사의 부릅뜬 눈으로, 혹독한 세리(稅吏)의 긴장미가 손끝처럼 치밀하게' 백제금동대향로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나누어 설명했다. 자세한 내용을 다 가져올 수는 없고 뚜껑 위 봉황과 뚜껑에 뚫린 구멍에 대해서만 일부 인용해 본다.

봉황 : 뚜껑 위 봉황은 두 날개를 활짝 뒤로 젖혔고, 긴 꼬리는 하늘을 향해 치켜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또 가늘고 긴 목을 구부려서 부리와 목 사이에 구슬을 끼우고 있다. 그래서 구슬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힘을 주고 있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만약 구슬을 입에 물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면 이런 긴장미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봉황의 가슴에는 구멍이 2개 있어 향을 피우면 마치 봉황이 서기(瑞氣)를 뿜어내는 듯한 모습이 된다.

구멍 : 봉황의 가슴뿐 아니라 산봉우리 안쪽에도 향이 나오는 구멍이 숨겨져 있다. 아래위로 각기 5개씩 지름 0.6센티미터가량의 구멍이 10개 뚫려 있어서 향로 몸체에 향을 피우고 뚜껑을 닫으면 구멍으로 향 줄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마치 산에 신령스런 운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주조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방학  (0) 2024.01.11
길거리의 <독립군가>  (0) 2024.01.09
저 어린것들은 어찌할꼬?  (0) 2024.01.06
여기도 꾸짖어 주시라  (0) 2024.01.05
소파도 과학이다  (0) 2024.01.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