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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봄비 내려 좋은 날

by 장돌뱅이. 2024. 4. 15.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가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원 조갯살 오천원
도사리 배추 천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걸음 지나쳐서 돌아보며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 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여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 김해화, 「아내의 봄비」-

손자저하와 태국 여행 중 밤 산책을 하다가 거리에 웅크리고 있는 거지를 만났습니다.
갑자기 저하에게 폼을 잡고 싶어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돈 몇 푼을 그의 발 앞에 놓았습니다.
저하는 나의 '교육적(?)' 행위에 깜짝 놀란 듯 물었습니다.
"왜요? 왜 돈을 놨어요?"
"불쌍하니까."
"왜 불쌍해요?"
"남에게 구걸을 해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왜 구걸을 해야 하는데요?"
"돈을 벌 수 없는 사정이 있겠지. 아프다던가, 일자리를 잃었다던가."
"왜 일자리를 잃어요? 그래도 일을 하면 되잖아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엔 많거든."
"왜요?··· 왜요?··· 왜요? ···?"
저하의 '왜요?'는 끝이 없이 이어지고 나는 점점 대답이 궁색해졌습니다.
('너 한 번 더 왜요? 하며 맞는다'는 부모의 말에도 아이는 '왜요?'라고 했다는 농담이 생각났다.)
애초에 진심이 담기지 않은, 손자저하에게 보여주기 위한 나의 가식적 행위의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피에르 폴 프뤼동, 「죄악을 뛰쫓는 정의의 여신과 복수의 여신」 1808

여행에서 돌아오니 길거리는 소란스럽던 선거 마이크 소리가 사라져 조용했습니다.
그 자리를 기쁜 환호성이 채웠음을 여행 중에 유튜브로 보았습니다.
아파트 화단에는 벚꽃이 지고 그 곁의 은행나무잎이 제법 무성할 정도로 푸르러 있었습니다.
때와 순리에 맞춰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옵니다.
오늘 아침부터 내리는 봄비는 초록을 더욱 짙게 할 것입니다.

좀 더 진솔하고 진지하게 세상을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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