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잠자리가 나는 시간

by 장돌뱅이. 2024. 7. 7.

2호저하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우뚝 멈춰 물었다.
"무슨 소리지?"
매미였다.
"매미가 우는 거야."
"매미가 왜 울어?"
"앗! 할아버지 실수! 우는 게 아니고 말하는 거야. 매미는 저렇게 말해."
"매미는 왜 저렇게 말해?"
"매미 목소리가 저래. 강아지가 멍멍, 고양이는 야옹하는 것처럼"

조금 더 가다가 저하가 다시 말했다.
"모기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보고 한 말이었다.
"모기가 아니고 잠자리야."
"잠자리는 왜 말 안 해?"
"말하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해서 우리 귀에 안 들려."

하얀 토끼풀꽃과 개망초, 작은 개미, 참새, 까치, 고여있는 빗물, (저하가 바다라고 부르는) 호수, 내리막길과 오르막길, 공원을 관리하는 아저씨들, 그들이 타고 온 전기차 ······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에게 자꾸 '왜요?'라고 물어서 물리치는 동화 속 아이처럼 저하에게 세상은 호기심천국이고 우리 둘이 자전거를 타고 제법 먼길을 다녀오게 하는 힘이다.

백일홍이 핀 붉은 그늘 사잇길에
참매미들이 번갈아 우는 비좁은 사잇길에

멱 감던 내 일곱 살의 잔잔한 시내 위에

나를 돌보던 이의 혼이 오늘 다시 오신 듯이
투명한 날개를 가만히 엷은 미소처럼 펼쳐

풀밭과 나와 울타리와 찌는 하늘을 돌고 돌아

엄마의 자장가 속으로 나의 잠이 들어가듯이
노오란 해바라기 속으로 아득히 사라져가네

- 문태준. 「나의 잠자리」 -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 Track : Oh Lucky Day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에 대한 공부  (0) 2024.07.11
오늘을 준 당신  (0) 2024.07.08
바둑교실 참관  (0) 2024.07.06
멕시코 축구 탈락  (0) 2024.07.05
모기의 여름  (0) 2024.07.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