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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오늘을 준 당신

by 장돌뱅이. 2024. 7. 8.

오후 늦게 산책을 하는데 비가 쏟아졌다.
원래 가려던 카페를 포기하고 가까운 던킨도너츠에 들었다.
빵집과 그곳에 배어 있는 달콤한 빵냄새는 늘 나를 유년의 기억으로 이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아버지와 서울 청량리의 한 제과점 (베이커리, 서양빵집 외 뭐라고 부르던 )에 간 적이 있다. 가게 이름이 무슨무슨당 (태극당? 은 아닌 것 같고)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시내까지 외출을 한 목적은 아마 명절을 앞두고 목욕을 하러 나왔을 것이다.
서울의 변두리 내가 살던 동네에는 공중목욕탕이 없던 시절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아버지는 질 좋은 향나무 연필과 공책에 장난감까지 사주셨다. 그리고 갈비탕 같은 음식을 먹던 여느 때와는 다르게 나를 그 빵집으로 데리고 가 따끈하게 데운 우유와 나로서는 처음 먹어보는 몇 가지 빵을 사주셨다. 아마 당신은 옛날 양반이라 빵을 좋아하지 않으셨을 것이니 나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날의 빵에 대한 세세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그곳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코끝에서 시작하여 온몸으로 확 스며들던 달콤한 향내만은 강렬하게 각인되어 남아 있다. 그때 품 안에 가득한 선물로 마음도 따라 흡족해진 나는 막연하게 행복이나 천국 같은 어떤 개념을 떠올렸던 것 같고, 그 향내가 그런 곳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두서없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파먹고 산다던가?
던킨도너츠가 발단이 된 유년의 기억은 인도네시아에서 살던 기억으로 이어졌다. 90년대 초에 한국엔 던킨도너츠가 없었다. 유치원에 다니던 딸아이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가게 되었다고 하자 유치원친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거기 피자헛이 있냐고 걱정스레 묻던 시절이었다.

막상 가보니 자카르타는 피자헛은 물론 웬디스, 베니건스 등  우리가 한국에서 알지 못했던 다양한 음식 체인점이 들어와 있었다. 던킨도너츠도 그중 하나였다. (한국에는 1983년에 들어오긴 했으나 이듬해 부도가 나서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정식으로는 1994년에 들어왔다고 한다.) 

매일 딸아이와 등하교를 같이 하던 아내는 교민들로부터 던킨도너츠의 존재를 알게 되어 하굣길에 쇼핑몰에 들려 던킨도너츠를 자주 사 왔다. 딸아이 간식용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초딩 입맛인 나는 어릴 적 아버지와 같이 갔던 빵집의 냄새를 던킨도너츠에서 맡으며 자주 딸아이의 몫을 가로채곤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아들아, 넉넉히 사 왔으니 동생과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먹어라'라고 놀리기도 했다.

아내도 던킨도너츠에 들릴 때마다 그 기억을 떠올린다.

얼마 전 베란다 창고에서 생각지도 않은 랄프스(Ralphs) 비닐봉지가 나왔다. 
랄프스는 미국에 살 적 집 가까이 있던 커다란 마트이다. 
귀국한지 10년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게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랄프스는 미국 생활을 시작하던 때 - 집을 계약하고 차를 사고 운전면허를 따고 소셜넘버를 받고, 생필품을 사기 위한 이런저런 소소한 카드를 만들던-를 생각나게 한다. 두 번째 해외살이라 그런지 아내도 긴장감은 크지 않아 보였고, 나 역시 주재하기 전 출장으로 십여 차례 다녀온 곳이라 생면부지였던 인도네시아완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지만 이국 생활은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질 때까지 적응 기간이 필요한 일이어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할인카드와 우편물

집을 구하고 나니 잡다한 일용품들이 필요했다.앞선 경험자들이 쇼핑몰의 회원카드 몇 개를 추천해 주었다.COSTCO와 VANS 그리고 RALPHS의 카드를 만들었다.Macy's 백화점 카드는 아내와 온 뒤에 함께

jangdolbange.tistory.com

던킨도너츠에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옛이야기를 따라 두서없이 거슬러 올라간 과거는 인도네시아를 거쳐 그런 미국에까지 가 닿았다. 벌써 몇 번인지 모르게 우려먹은 이야기들을 아내와 서로 다시 꺼내며 낄낄거렸다. 그러다 우리가 함께 한 지 40년이 되었다는 자각을 하며 새삼스레 놀라기도 했다.

40년이라니!
단칸 셋방으로 시작하던 때가 가까운 날의 기억인 듯 선명한데 말이다. 

여기저기 겁도 떠돌며 함께 넘어온 우여곡절의 높고 낮은 삶의 능선들은 그 40년으로 뭉뚱그려 돌아보면 아득한 평야처럼 단순해진다. 마치 평탄한 길만 골라 조용하게 걸어온 것 같다.
착각이 아닌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내게 준 아내가 있어 가능한 자부심이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생전에 이를 간파하신 것 같다.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암 소리 말고 곱단이가 하자고 하는 대로만 하고 살아라.
니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은 담배 끊은 것 하고 곱단이와 연애한 것이다."

하느님이 땅과 물과 햇빛을 주고
땅과 물과 햇빛이 사과나무를 주고  
사과나무가 빨갛게 익은 열매를 주고 
그 사과를 당신이 나에게 주었다  
부드러운 두 손으로 감싸서  
마치 세계의 기원 같은  
아침 햇살과 함께  

한마디 말도 없었지만  
당신은 나에게 오늘을 주고  
잃어지지 않을 시간을 주고  
사과를 가꾼 사람들의 웃음과 노래를 주었다  
어쩌면 슬픔까지도  
우리 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에 숨은  
그 정처 없는 것을 거슬러서  

당신은 그런 식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나에게 주었다  

- 다니카와 슌타로,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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