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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인연과 당구

by 장돌뱅이. 2025. 4. 30.

며칠 전 내가 '샌디에이고 향우회'라고 부르는 모임을 가졌다.
향우회라고 거창한 호칭을 붙였지만 사실은 회사일로 샌디에이고에 주재를 할 때 만나 20여 년 동안 알고 지내 온, 나를 포함 단 3명의 모임이다.

"하나도 안 변했네."
악수를 나누며 립서비스일지 사실일지 모를 덕담을 주고받았다.

 

샌디에이고 '향우회'

박용하 시인이 썼다."흘러간 것은 물이 아니라 흘러간 물이다흘러간 물을 통해 흘러갈 물을 만진다"라고.샌디에이고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함께 청계산을 다녀왔다.원터골에서 매봉에 올랐

jangdolbange.tistory.com

모임 이튿날 한  친구가 ''정말 안 변한 걸까? 팔이 안으로 굽는 걸까? 아님 기억과 현실의 왜곡일까? 어쨌든 '우리'라는 힘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나는 '안 변했다고 위로하며 지내자'는 답을 남겼다.

식사를 하기 전 게임비 내기 당구를 쳤다.
나의 당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한 친구가 내게 당구 수를 50으로 줄이라고 했다.
80을(이것도 초보 수준이지만) 놓을 실력이 도저히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생 시절 처음 당구장에 들어간 이래 지난 50여 년 동안 내가 당구를 친 횟수가 아마 스무 번도 안 될 것이니 사실 그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나의 당구 80이라는 것도 애초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50년 전부터 그냥 내가 그렇게 정한 것이다. 보통 당구 실력을 줄여서 말하는 '짠물 당구'여야 내기에서 유리하지만 학창 시절엔 어차피 술 먹기에도 용돈이 모자라 당구를 자주 칠 수도 없는 데다가 나로서는 당구가 크게 재미있는 놀이도 아니어서 자발적으로 갈 일이 없으니 그렇게 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나중에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당구 사정은 비슷했다.

강제 조정의 '혜택'을 입고도 나는 두 판의 경기에서 모두 꼴찌를 하고 말았다. 

아마 다음번에 또 한 번 더 하향 조정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인연들이 만들어 주는 시시콜콜한 즐거움.
나는 그런 시시콜콜함을 열심히 두드리며 살고자 한다.

인생의 노래가 쓸쓸한 것은
과거가 흘러간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살면서 나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골목을 돌아설 때 불쑥 튀어나오는
낯익은 바람처럼
햇빛 아래를 걷다가 울컥 쏟아지는
고독의 멘스처럼.

- 권대웅,「세월의 갈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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