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882 2024 Nha Trang 3 밤새 검은 구름이 두텁게 몰려와 있다. 곧 비가 쏟아질 듯했다.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갔다.오토바이의 행렬은 우중충한 날씨와 상관없이 활기차게 도로를 질주했다.오늘 산책의 반환점은 숙소에서 2km 정도 떨어진 롱선사로 잡았다.1886년에 세워졌다는 롱선사는 꼭대기에 커다란 불상이 있지만 크게 인상적인 곳은 아니었다.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비로 인해 수영장 놀이가 불가능하니 다른 대안을 만들어야 했다.긴급히 검색을 해서 J-SPA에서 마사지를 받았다.GREEK KITCHEN점심으로 수블라키라는 음식을 먹었다.수블라키는 그리스 말로 꼬치에 꿰어 구운 작은 고기를 꼬치에서 빼서 밀전병 같은 얇은 빵(미키)에 싼 음식이라고 한다. 멕시코 음식 따꼬와 비슷한 수블라키는 유튜브와.. 2025. 4. 1. 2024 Nha Trang 2 동남아 여행에서는 아침마다 나 홀로 산책을 한다.아내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나는 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서 생긴 패턴이다.한 시간 남짓 산책을 하고 돌아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순서다.집에 있을 때는 아예 각방을 쓰기도 한다.부부가 반드시 함께 자야하는 걸까?함께 자는 관습은 숙면에 방해가 될 뿐 그다지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자는 동안 평균 40~60번 움직이고, 남성의 3분의 1과 여성의 6분의 1이 코를 곤다고 한다. 잠 자리의 의미가 반드시 잠을 자는 것이 아닌 신혼 때라면 모를까, ‘한 침대 두 사람’의 잠 자리 동거는 불편함이 많은 것이다.여행 숙소를 예약할 때 가급적 트윈 베드를 요청한다.체크인할 때 직원이 좀 의아하다는 투로 재차 확인을 하는 경.. 2025. 3. 31. 2024 Nha Trang 1 몇 달 전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냐짱(나트랑)과 함께 방콕과 치앙마이도 후보지로 놓고 저울질을 했다.하지만 치앙마이는 봄철이 건기라 비가 내리지 않고 화전민들(혹은 대기업의 계약농들)이 새로운 경작을 위해 기존의 작물과 산림을 태우는 기간이라 공기의 질이 최악으로 떨어지는 시기여서, 방콕은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지만 봄철 대기 상태가 치앙마이와 비슷하게 나쁘고 최근 몇 년 사이 봄철에만도 이미 여러번 방문했던 터여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여행을 떠나오기 하루 전 미얀마와 태국에서 엄청난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건물이 쓰러지고 무너져 내렸다. 죽고 다친 사람들의 현황이 매 시간마다 업데이트 되었다. 공포와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표정이 화면에 클로스업.. 2025. 3. 30. 지진의 기억 보면 볼수록 고구마 100개를 한입에 넣은 듯한 궁금증과 답답증, 울화병이 더할 것 같아 뉴스 보는 걸 최소화하고 지내다 보니 밤이 늦어서야 동남아의 지진 소식을 알게 되었다. 특히 어제는 딸아이가 갑작스럽게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해서 더욱 뉴스를 볼 틈이 없었다.처음 유튜브에서 방콕의 빌딩 붕괴 장면을 보면서 이게 지금 일어난 일인가 믿어지지 않아 다른 채널로 확인을 해보아야 했다. 채널마다 폭포처럼 물을 쏟아내는 고층 빌딩의 루프탑 수영장과 멈춰 선 지상철과 지하철, 거리에 몰려나온 사람들의 놀란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한국어를 가르쳤던 미얀마 이주노동자들과 방콕에 살고 있는 지인들에게 당사자와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카톡을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괜찮다는 회신이 왔다. 태국, 특히 .. 2025. 3. 29. 2024년 10월 태국 푸켓 작년 태국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미뤄두었던 유튜브 영상을 이제야 만들어 올린다.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게으른 습관 탓이다. 블로그에 여행기를 썼으니 굳이 유튜브에 연연할 건 없지만 색다른 여행 앨범을 하나 더 갖는다는 의미로 영상을 만들게 되었다.다시 돌아올 수 없어서 소중한 생의 모든 순간.가끔씩 지나간 기억을 돌아볼 수 있는 지금에 대한 고마움.그렇게 시간이 흐르기를!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첫여자도 첫키스도 첫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얼마나 눈부신가안 돌아오는 것들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번 똑딱 한 그날의 부엉이 눈 속의 시계점처럼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이진명, 「여행」 중에서 -1. M.. 2025. 3. 28. 이제하의 <모란 동백> 남녘 산불의 기세가 시간이 지나도 수그러들 줄 모른다.안타깝게도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미세먼지에 황사도 있을 거라는 예보가 있다.우울한 소식에 꿀꿀한 날씨가 더해져서 기분도 무겁게 가라앉는다.저 구름들이라도 그곳으로 몰려가 한바탕 비를 쏟아부었으면 싶다.아파트 화단에 동백꽃이 마침내 환하게 피어났다. 산책길에 서서 그다지 감흥 없이 시큰둥하게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이제하의 노래 을 들었다. 소설가 시인 화가 작곡가에 가수이기까지 한 이제하는 가히 종합예술인이다. 그는 1997년「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쓴 김영랑과 을 작곡한 조두남을 기려 을 발표했다. 이후 이 노래는 조영남이 으로 제목을 고쳐 부르며 널리 알려졌다.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먼 산에 뻐.. 2025. 3. 27. 한 술만 더 먹어보자 33 손자저하 2호가 감기에 걸렸다. 몸이 아프면 식욕부터 떨어진다.(다행히 손자는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도 잘 놀고 잘 먹는다.)어릴 적 딸아이는 감기 기운이 있으면 닭죽이 특효였다. 손자저하도 그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바라며 닭죽을 끓였다.감기와 상관없는 1호저하도 삼계탕을 무척 좋아해서 두 저하를 위해 안성맞춤인 음식이다.죽, 이라는 말 속엔아픈 사람 하나 들어 있다참 따뜻한 말죽, 이라는 말 속엔아픈 사람보다 더 아픈죽 만드는 또 한 사람 들어 있다- 문창갑, 「죽」-감기 돌림.저하에게서 시작된 감기가 나에게, 다시 딸아이에게로, 사위에게로 옮겨졌다(고 추정한다). 나는 이제 열과 콧물은 그쳤지만 여전히 잔기침은 남아 있고 딸과 사위는 아직 정점을 향하고 있다.나는 누가 더 저하를 밀착경호를 하며 모셨.. 2025. 3. 26. '냉담자'의 망상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수녀님께서 동료 수녀님이 광화문역을 지나다가 극우 개신교 집회 참석자들에게 이유 없는 봉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우리에게 토요일 "범시민대행진"에 나갈 때 조심하라고 하셨다.아내와 나도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 집회의 언저리를 지나가 본 적이 있다.사람들이 모일 때 만들어지는 자연스런 신명이나 나지막한 종교적 경건함 대신에 저주와 원망의 아우성만 귀에 가득 들려왔다. 아내와 내겐 마치 광신도들의 집회에 들어온 것처럼 혼이 빠질 것 같았다.급기야 나는 수녀님께 불경스런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예수님부터 탄핵을 하고 싶네요."왜 사람들은 그런 자리로 몰려가는 걸까?정치가 만드는 팍팍한 현실에서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 2025. 3. 25. 환한 등불 놀랍다. 하루 만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다니!양지바른 화단의 목련이 갑자기 가지마다 꽃을 가득 피웠다. 아내와 꽃그늘에 서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저기 가지 좀 봐! 여기 꽃 좀 봐!목련나무에서 어른의 호방한 웃음이나 어린아이들의 구슬웃음이 울려 나오는 것 같다.이어 '마음에 켜지는 환한 등불'!꽃이 있어 이 봄이 위안이다. 저렇게 고운 편지 봉투가저렇게 환하게 가득한 꽃핀 목련나무를 본 봄날엔흰 종이에 정성들여 편지를 쓰고 싶다뽀얀 봉투에 편지지를 곱게 넣어발신인 '목련나무우체국'이라고 쓰고 싶다목련꽃봉오리처럼 환한 등불을너의 마음에 켤 수 있으면 좋겠다- 김선우, 「목련나무우체국」- 2025. 3. 24. 이전 1 2 3 4 ··· 3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