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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봄의 하루 도다리쑥국.도다리와 해쑥의 은근한 맛이 옅게 푼 된장 국물에 스며들어 입안을 '햇봄'으로 채운다.함께 먹는 멍게비빔밥도 여느 때보다 강렬한 봄의 향기가 나는 것 같다.매해 봄마다 도다리쑥국을 먹으면서 도다리가 가장 맛있는 철이 봄인 걸로 막연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라고 한다. 도다리는 겨울철에 산란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3~4월에는 살이 물러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횟감으로 쓸 수 없는 도다리에 쑥을 더하여 국을 끓이는 경남 통영사람들의 세밀한 지혜와 입맛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아내와 을지로입구 충무집에서 예년과 똑같은 사진을 찍으며 똑같은 맛의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식사를 하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 딜쿠샤 (Dilkusha)라는 생소한 이름의 건물을 찾아갔다.그.. 2025. 3. 15.
한 술만 더 먹어보자 32 동네 재래시장 아내의 단골 어물전에서 산 오징어는 싱싱했다.크기도 튼실해서 숙회나 잡채, 볶음 등을 하기에 알맞았다.해물잡채오징어를 사러 간 이유는 딸아이의 생일 상차림으로 해물잡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오징어, 새우, 표고버섯, 피망, 파프리카 따위가 들어간 해물잡채를 만드는 법은 앞선 글( 한 술만 더 먹어 보자 7)에 있다. 아내는 미역국과 전 등 나머지를 맡았다.출산예정일이 가까워지자 어머니께서 서울에서 내려오셨다. 당시 나는 지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딸아이는 세상에 나올 기미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아직'이라고 했다. 그동안 퇴근 후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비상대기를 하던 나는 일주일 째 되는 날 저녁에 회사일로 손님과 어쩔 수 없는 저녁 자리를 가졌다. (아내는 회사일이 아.. 2025. 3. 14.
마귀와 돼지떼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을 패러디한 최민 화백의 만평이다.그림을 들여다보며 생각이 돼지 - 멧돼지 - 집단 망령 등으로 이어지다가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마귀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처넣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애원하였다.마침 그곳 산기슭에는 놓아기르는 돼지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마귀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 속으로나 들어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마귀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대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떼는 비탈을 내려달려 모두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 「루카복음서 8장」 중 -내게 성경은 어렵다. 이해가 안 되는 곳 투성이다. 그나마 이해가 되는 부분은 솔직히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워서 더 어렵다.잘 이해가 안 될 때는 그냥 액면 그대로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다.한강으로나.. 2025. 3. 13.
영춘화 산책길 양지바른 언덕에 노란 꽃이 피었다.멀리서 보았을 때, 개나리? 하며 다가섰다.그런데 모양이 좀 달랐다. 요즈음은 이럴 때 스마트폰이 즉석에서 해결해 준다.영춘화 (迎春花)였다.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영춘화(Jasminum nudiflorum)는 중국 원산이다.일본에서는 매화처럼 꽃이 빨리 핀다고 황매라고, 서양에서는 겨울 재스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이른 봄 개나리보다 보름 정도 먼저 핀다. 꽃잎이 6개인 점도 4개인 개나리와 다르다. 또 어린 가지가 개나리는 갈색인데 영춘화는 녹색이다.영춘화는 관상수로 많이 사용되며 11월에 맺히는 빨간색 열매는 한방약으로 쓰인다고 한다.위 만평 속 부부처럼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한, 감각과 이성조차 혼란스러운 시절이다.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우리는 앞으로.. 2025. 3. 12.
한 술만 더 먹어보자 31 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눈앞에 보이는 것이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이래도 되는 것인가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막 피어나려는 싹수를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그 한둘이 어디 그냥 한둘인가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저 감자탕집이 이 세상이훤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가자, 호락호락하게- 임희구,「소주 한 병이 공짜」- 소주 한 병 공짜라는 상술에 '호락호락'해지는 금주 결심이 웃음을 짓게 한다.하긴 공짜라는데 좀 너그러워질 수도 있지 까짓 작심삼일 아니 작심세시간이 .. 2025. 3. 11.
우리를 살맛나게 하는 것 봄맞이 대청소들을 하는지 요사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헌책들이 많이 나온다.이제까지 종이류 함에 넣거나 그 곁에 쌓아두었다. 크게 불편하다거나 지저분해 보이지는 않았다.그런데 관리실에서 한쪽 벽에 책장 두 개를 가져다 놓았다. 한결 단정해 보여서 좋았다. 특히 나같이 남이 버린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겐 고맙고도 세심한 배려였다.누군가 그에 대한 칭찬과 감사의 말을 적은 메모지를 붙여놓았다.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달리 보이기도 했다.이번에 '간이도서관'에서 주운 책은『국경 없는 마을』이다.외국인 노동자들과 코시안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인 것 같다.찌질한 세상 속 우리의 일상을 반짝이게 하고 살맛나게 하기 위해 반드시 커.. 2025. 3. 10.
메멘토 모리 보름 새에 친구 어머니 두 분이 90대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모두 건강하셨다가 한 분은 입원한 지 10여 일 만에, 그리고 또 다른 분은 급작스레 상태가 위독해지셔서 몇 시간 만에 눈을 감으셨다. 장례식장 분위기는 침울하지 않았다.조문을 마친 뒷자리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왔다."이별의 기억이 좋을 만큼 알맞게 아프시고 돌아가셨네.""복이 많으셔서 마지막도 큰 고생하지 않으셨네.""호상이지 뭐."'알맞게', '복이 많으셔서', '호상'이라······.남은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악의 없이 정형화된 의도이고 말이다.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이럴 때 '세상에 사람이 죽었는데 호상이 어딨어?'라고 소리를 지르던 강풀의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만석할배가 떠오른다. 할배는 떠난 사람을, 죽기 위해서가 아.. 2025. 3. 9.
돌아가야 할 곳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가장 유서 깊은 건물 판전(板殿)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3일 전에  이 글씨를 썼다.  나 같은 문외한의 눈엔 대가의 것이라기엔 어린아이가 장난이라도 한 것처럼 투박하고 유치해 보인다. 그러나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는 환동(還童), 즉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은 마치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행복이 기교(巧)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박함(拙)에 있다는 가르침 같기도 하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서는 천국을 결코 볼 수 없으리라던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도 한다.봄날,나무벤치 위에 우두커니 앉아를 본다왜 푸른하늘 흰구름을 보며 휘파람 부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왜 호수의 비단잉어에게 도시락을 덜어 주는 것은 Job이 되지 .. 2025. 3. 8.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꿈 은퇴를 하고 백수가 된 뒤부터 가급적 새 책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대신 책장 속의 책들을 다시 읽고 주변에 나눠주거나 버리고 있다.새로운 책들로부터 첨단의 지식을 얻으면 좋겠지만 돌머리에 기억력도 부실한 나는 지난 책을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것 같아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엔 책장을 없애는 것이 목표이다.가끔씩 독서 모임용 등으로 필요한 책은 주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있다. 며칠 전 쓰레기를 버리러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갔다가 버려져 있는 책들을 보게 되었다.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어 뒤적거려 보았다.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경제전망에 관한 책들 사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이 있었다. 유시민이 정리한 대필 자서전 『운명이다』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노대통령 생전에 나눈 인터뷰를 기.. 2025.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