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882 봄은 예쁘다 아파트 화단이 온통 봄기운으로 움찔움찔 들썩인다. 양지바른 쪽 바람 없이 따뜻한 곳에 있는 산수유는 벌써 꽃을 만개했고 개나리 목련 동백은 꽃봉오리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곧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오듯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꽃기운에 묻어올 새로운 소식을 기다려 '아침엔 창문의 커튼을 서둘러 걷고 저녁에 더디게 닫아본다.'무슨 약속이나 있는 듯이 날마다 들창에 서서주렴 걷기는 서둘러지고 내리기는 더뎌지네.봄빛은 하마 벌써 산 위 절에 왔건만꽃 밖으로 가는 스님 저 혼자만 모르누나.(日日軒窓似有期 일일헌창사유기 開簾時早下簾遲 개렴시조하렴지 春光正在峯頭寺 춘광정재봉두사 花外歸僧自不知 화외귀승자불지)- 백광훈(1537-1582), 「용문에서 봄을 기다리며(龍門春望)」-소식 보다 먼저 왔어도 .. 2025. 3. 23. 여긴 내 나라니까 월드컵 축구 예선. 약체 오만과 졸전 끝에 비겼다. 축구광인 나로서는 예전 같으면 흥분을 했을 것이다. 남은 경기의 경우의 수를 따져보며 육두문자를 쓰다가 아내의 눈총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그런데 경기가 끝난 후 내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무덤덤했다. 그게 뭐 대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지금의 내란 상황이 지속되면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마 그럴 거 같다.축구경기를 보는 동안에도 경기에 온전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치 어릴 적 숙제 안 한 채로 등교할 때나 공부 안 하고 기말고사 보러 가는 것처럼 뭔가 중요한 일을 빼먹거나 미루고 있다는 찌뿌둥한 감정이 앙금처럼 깔려 있었다.이제까지 여행, 손자, 책, 영화, 음식, 산책 등의 일상을 허접한 솜씨로 채워온 이 블로그도 그렇다.지난 10.. 2025. 3. 21. '연두연두한' 초봄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풋자두와 풋살구의 시큼시큼 풋풋한 연두,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풋내가 나는 연두연초록 그늘을 쫙쫙 펴는 버드나무의 연두기지개를 쭉쭉 켜는 느티나무의 연두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누가 뭐래도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빈집 감나무의 떫은 연두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난 연두가 좋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연두,연두색 형광펜 연두색 가방 연두색 팬티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커튼 연두색 베갯잇난 연두가 좋아 연두색 타월로 박박 밀면내 막막한 꿈도 연둣빛이 될 것 같은 연두시시콜콜, 마냥 즐거워하는 철부지 같은 연두몸 안.. 2025. 3. 21. 생명 생명한 줄기 희망이다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한 줄기 희망이다돌이킬 수도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이 마지막 자리어미가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생명의 슬픔한 줄기 희망이여- 김지하, 「생명」-법륜스님이 말했다."생명이란 절대자유와 절대평등의 불성(佛性)을 실현하는 주체이며 불성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될 수 없으며, 그 자체가 그대로 목적이 된다. 생명의 존엄성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생명이 죽임을 당하거나, 차별받거나, 핍박이나 억압을 받아서는 안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의 첫 말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생명의 본성만이 존귀하다.. 2025. 3. 20. 38.0 우리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다.아주 작은 상처라도 그곳에 온 신경이 쓰인다.가족의 중심은 아픈 사람이다. 손자저하 2호가 감기에 걸렸다.나머지 식구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자연스레 2호에게로 모아진다.일상이 단순해진다. 유치원에 보낼 수도 없다.다행히 독감은 아니라지만 열이 높고 목소리가 갈라져 나온다. 잔기침도 한다.그런 증세의 중심은 열이다.38.0 도. 해열제 투입의 기준 체온이다. 그 이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된다.어쩔 수 없이 약을 먹이게 되더라도 투입 시간의 간격을 늘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모든 수단이라고 했지만 사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미지근한 물로 몸과 목, 머리 등을 닦아주는 일 뿐이다. 물론 저하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정작 '모든 수단'은 거.. 2025. 3. 19. 끝나야 할 것들 아직도 눈을 내리고 찬바람을 불어대는 겨울.'그 X' 탄핵.그리고 어린 손자의 감기. 2025. 3. 18. 개나리 우리나라 꽃들은 대부분3·1절과 4·19혁명기념일 사이에 피어난다.꽃샘 잎샘 까탈이 아무리 거칠어도 그 사이에 꼭 피어난다.- 윤효, 「우리나라 꽃들은」-날이 갑자기 쌀쌀해졌다.'꿔와서라도 반드시 한다'는 꽃샘추위다.그래도 산책길 호숫가엔 군데군데 벌써 노란 개나리꽃이 눈부시다.개나리는 생명력이 강하다. 가지를 잘라내 심으면 척박한 땅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바람찬 허공으로 가지를 뻗는다.그리고 자신의 온힘을 끌어올려 꽃을 피운다. 이번 꽃샘추위는 오늘 낼 끝날 것이다.다시 한번 찬란한 봄일 것이다. 2025. 3. 17. 제15차 범시민대행진 사실 이런 일보다는 손자의 축구경기를 응원하거나 아내와 봄이 오는 강변을 걷다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음악을 들으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 훨씬 좋지만. 어쩌랴. 때로 머릿수 하나 더 더하고, 작은 목소리 하나 보태는 일도 필요한 것을.아내와 내가 집회에 참석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이른바 '내란 스트레스'가 가장 화급하고 답답한 일이어서 봄날 주말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으리라. 그래서 주변 건물에선 평소에는 비밀번호로 잠겼을 화장실을 개방하고, 전시회 장은 사람들의 휴식 공간으로 제공하고, 홀 한가운데는 커피포트와 차를 준비하여 놓았으리라.건물 유리창에 붙은 "빛이 오고 있네!"가 소망처럼 다가왔다. 힘을 주었다.불행은 불행에 기대어고통은 고통에 기대어슬.. 2025. 3. 16. 오늘은 "100만 시민 총집중의 날" 3월 15일 오늘, 모입시다!광화문 정문, 동십자각 앞으로 모입시다.봄은 태깔부터 틀리게 온다 욱신욱신 어깨 쑤시며 치솟는가로수 등터진 벌판 그때의 함성소리 봄은 참으로 고웁구나 그때의 피흘림 쓰러진 어깨 위로 일어서는 곱고 앙칼진 목소리 터진 옆구리 쑤시는 신음소리 초가집 기와집 지붕들이 올려다보아도 일어서 내려다보아도 일어서 시구문 밖 모든 원한맺힘도 일어서라 진달래 타는 언덕도 저자바닥도 일어서라 온통 색깔의 함성소리 봄은 태깔부터 틀리게 온다 요란스럽게 아픔 부르며 온통 산불이 되는 봄의 태깔 울긋불긋한 울음소리 불자동차 싸이렌소리도 치솟아 찢는 어둠의 불길 아아 일어서라 겨우내 숨죽였던 것은 모두 미친 듯, 일어서는 아지랭이 벌판 온 산천 온 누리에 현기증 나도록 쓰러진 비명 일으켜 그치지 않도.. 2025. 3. 15. 이전 1 2 3 4 5 ··· 3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