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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鶴) 전쟁은 '너무 중요한 사안이어서 늘 거짓이란 친구를 거느려야 한다'고 했던가.더불어 인간이 세운 문명이란 게 기껏해야 전쟁을 위한 과학과 전쟁을 치장하기 위한 인문학을 발전시켜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를 짓게 한다.경찰활동, 평화유지, 저항 혹은 저항에 대한 진압, 냉전, 열전, 정의로운 전쟁, 부당한 전쟁, 깨끗한 전쟁, 더러운 전쟁, 저강도 전쟁, 게릴라전, 제한전 등등.전쟁에 대한 치장이 무엇이건 어떻게 하건 본질은 살인이고 파괴다.철근을 드러낸 채 무너져내린 집과 연기, 겁먹은 사람들의 비명과 피난, 피 그리고 시체 ······이스라엘과 미국의 광기.주먹이 법만이 아니라 신(神)보다도 가까워 보이는 요즈음이다.가끔 생각하네 전선에 쓰러져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실은 흰 학.. 2025. 6. 24.
한술만 더 먹어보자 39 인생의 즐거움을 말하는 옛말에 시식락(時食樂)과 농손락(弄孫樂)이 있다.시식락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제철에 나오는 음식들을 맛보는 것'을 말한다.시식락의 대표적인 사례는 이른바 순갱노회(蓴羹鱸膾)의 고사를 낳은 중국 진나라 장한(張翰)이다. 그는 고향을 떠나 벼슬살이를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의 진미인 연한 나물과 순채로 끓인 국(蓴羹)과 농어회(鱸膾)가 그립다'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벼슬이라는 세속의 영화로움 대신 고향의 음식을 택한 것이다. 요즈음에야 제철 음식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데다 택배나 밀키트가 있으니 설마 음식 때문에 벼슬까지 버리는 일은 없겠지만.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귀중한 일이다.어찌 벼슬로 수천리 떨어져 살면서 명예나 작위를 노리겠는가(人生貴得適.. 2025. 6. 23.
희망에 대하여 "이 시대에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는 사기꾼이고, 절망을 이야기하는 자는 개자식"이라고 말한 사람은 옛 동독의 저항시인이자 가수 볼프 비어만(Karl Wolf Biermann)이다.'이유있는' 절망과 '이유있는' 희망을 이야기하라는 뜻이겠다.언제나 절망의 이유는 많고 희망의 근거는 작아 보인다.성경에도 멸망으로 가는 문은 넓고 생명으로 가는 문은 좁다고 했던가.근현대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루쉰(魯迅)은 사방이 막혀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방에 갇혀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채 죽어가는 사람에게 작은 구멍을 뚫어 빛과 공기를 넣어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고민했다. 바늘만한 구멍으로는 현실적으로 벽을 부술 수도 없고 그저 안에 갇힌 사람에게 비참한 현실을 깨우쳐 줄 뿐이라면 무책임한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2025. 6. 21.
늙는 맛, 늙은 맛 >.직역을 하면 '꿈속에서 너를 보리라', 줄이면 '꿈속의 사랑' 정도겠는데 넷플릭스에서는 >이란 서정적인 제목을 달았고 그게 영어 제목보다 더 영화의 내용에 부합되어 보였다.그렇다고 추억을 먹고 산다는 식의 상투적인 노인의 그리움이 영화를 지배하지는 않았다.대신에 노년의 고적한 삶을 잔잔하게 그러나 자못 유쾌하게 그려냈다.노인의 영화였지만 노인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었다.오래 전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고 캐롤은 반려견과 함께 단조로운 삶을 산다.그러나 함께 TV를 보고 잠들고 일어나던 반려견마저 세상을 떠나자 삶은 더 무료해진다.상실은 그리움의 원인이며 결과다."떠나보내는 건 힘들어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큰 구멍을 남기니까."캐롤과 급속히 가까워지던 남자친구 빌이 말하지만, 그런 빌마저도 황망히 세상.. 2025. 6. 21.
비 오는 날 손자저하들과 시간을 보내고 온 뒷날은 늦잠을 잔다.아침에 눈을 뜨면 등교와 등원을 앞둔 저하들과 딸아이 부부의 부산한 모습이 그려진다.몸이 뻐근한만큼의 작은 성취감과 함께 뭔가 덜 해주고 왔다는 아쉬움도 겹쳐진다.창문을 열다가 빗줄기가 거세 조금만 열었다.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안전문자도 와 있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커피를 마시며 아내와 TV로 >와 NBA Finals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오늘은 도서관에 책 두 권을 반납해야 한다. 아내와 책을 읽다가 넷플릭스를 보다가 비가 설핏해지면 책도 반납할 겸 산책을 할 것이다.평균 1만 보이상을 유지하며 하루 8 천보 이상을 걷는 것이 목표다.풀코스 마라톤을 꿈꿔 본 적도 있으나 거둔 지 오래고 지금은 그냥 걸을 뿐이다.아침으로 주스를 한 잔 먹었다. 비가.. 2025. 6. 20.
"니들이 손자 맛을 알아?" 나보다 스무 살쯤 더 연세가 많은 분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한 어르신이 물었다."장돌뱅이 씨는 자식을 몇이나 두었나?""예, 딸 하나 있습니다.""아니 왜? 아들도 안 만들고 하나로 끝냈어?""요즘 세상에 아들 딸이 뭐 상관있나요? 더군다나 저희 때는 가족계획을 선전할 때라······"호기심으로 이번엔 내가 물었다."어르신은 자녀분이 어떻게······?""나? 나는 하나지.""예? 아니 어르신도 하나를 두셨으면서 왜 저를 나무라셔요?""아니, 아들이 그렇다구, 딸이야 세명이나 있지."하루는 나의 핸드폰 속 손자 저하 사진을 보고 안 됐다는 투로 그 어르신이 장난을 걸어왔다."외손주가 백 명 있으면 뭐 해. 친손주 한 명보다 못한 걸."나는 어처구니 없음을 과장했다."아니 어르신, 조선시대도 아니.. 2025. 6. 19.
와랑와랑, 카페와 그림 얼마 전 >라는 제주도 사투리 제목의 넷플릭스 드라마가 화제가 되었다.표준어적 상상과는 달리 제목의 뜻은 '수고 많으셨습니다'였다.제주도 사투리는 표준어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다. 제주도 출신의 한 친구는 우리말의 원형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으스대기도 했다. 제주도 말의 언어학적 의미와 위상은 알 수 없지만 이른바 '육지 것'들인 내겐 우선 재미있고 또 어떤 말은 매우 아름답다. 아내와 제주도 한달살이를 할 때 가장 인상적인 단어로 중의 하나로 기억된 '와랑와랑'이 그렇다. '와랑와랑'은 '어떤 사물이 풍성하게 매달려 있거나 모여 있는 것' 혹은 '불기운이 세차게 피어나는 모양'을 뜻하는 제주도 말이다. 의태어 같은데 의성어로 써도 될 것 같다.'귤밭에 귤이 와랑와랑 달려 있다'도 좋고 .. 2025. 6. 18.
'분식회계'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복무한 경력이 있는 백선엽이라는 군인을 그린 영화가 있다고 한다.한국전쟁 시기에 그의 활약을 그렸다고 전해진다.누가 어떤 영화를 만들 건 자유다.영화를 만든 주체의 영업력으로 어느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그런데 그 영화를 우리나라 국회에서 특별 시사회라는 이름으로 상영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국회는 유통 시장의 한 부분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정을 이끌어가는 한 주체이자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영화가 그린 인물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를 부정하고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를 탄압하던 인물이라면 국회의 어떤 부분이나 기능도 그를 위해 쓰여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몇몇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벌인 일이라고 한다. 모든 왜.. 2025. 6. 17.
필레몬과 바우키스 어느 날, 제우스 신은 헤르메스와 함께 늙고 초췌한 나그네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하룻밤을 재워 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남루한 행색의 이방인을 받아들이지 않고 문전박대를 했다.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받아들여준 곳은 동네 끝자락에 있는 작은 오막살이였다.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필레몬과 바우키스(Philemon and Baucis) 부부가 사는 집이었다. 부부는 제우스 일행을 친절하게 맞이하고 정성껏 대접을 했다.제우스는 자신의 능력으로 부부에게 조금 남아 있는 술병 속의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게 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부부는 어느 순간 방문객들이 신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놀란 부부는 자신들의 허접한 접대에 대한 용서를 빌며 기르던 거위를 잡아 대접하려고.. 2025.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