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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꾼8

새로운 깐꾼(CANCUN)의 추억 치첸잇싸(CHICHEN ITZA)는 멕시코 유명 휴양지 깐꾼의 인근에 있는 마야 유적지이다. 몇 해전 아내와 깐꾼에 갔을 때 방문하여 기념으로 작은 마그넷을 하나 사왔다. 그런데 엇그제 손자녀석이 집에 놀러와 그 기념품을 조각냈다. 안고 놀아주는 사이 손을 뻗어 벽걸이 판에서 떼어내어 바닥에 그만 떨어뜨린 것이다. 깐꾼을 다녀와 몇 년이 지난지라 여행의 기억이 희미해져 가고 있던 참에 기특하기 그지 없는 손자녀석이 깐꾼보다 더 예쁜 추억을 하나 더해 준 것이다. 귀퉁이가 깨진 마그넷을 볼 때마다 늘 개구장이 손자녀석의 모습이 어릴 것이다. 2016. 12. 24.
깐꾼 CANCUN에서 여행기에 옮기지 못한 아내 사진 몇장. 아름다운 깐꾼. 그리고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그리며. *2009년 12월 여행 2014. 10. 8.
깐꾼 CANCUN 에서 놀다(끝) - 천리향 샌디에고로 돌아오는 날이자 아내의 '실제' 생일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서류상의 생일과 실제의 생일이 다르다. 50년대 어떤 공무원 아저씨의 근무 자세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아내 몰래 호텔 직원과 사전에 상의를 해두었다. 친절한 직원은 염려하지 말고 시간만 정해 달란다. 시간에 맞춰 식당을 내려갔다. 약속한 창가 자리에 케익을 준비해 둔 것이 보였다. 주변에 식당 직원들이 예닐곱명 서 있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아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 직원들이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함박꽃처럼 웃었다. 내가 축하의 말을 건넬 쯤 딸아이의 전화가 왔다. 아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딸아이는 '오우! 구준표놀이씩이나!' 라고 했다. "구준표? 하긴 뭐 내가 구준표처럼 생기기도 했잖아." 나.. 2012. 6. 4.
깐꾼 CANCUN 에서 놀다6 - 거침 없는 시공간 커튼을 열자 파란 호수와 그 위로 광활한 하늘이 시원스레 눈에 들어왔다. 밖으로 나가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걸었다. 바다는 어제보다 한결 잔잔해져 투명함을 회복한 듯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푸른 빛이었다. 푸른 빛으로 비어 있었다. 다시 새로운 하루가 그렇게 텅 빈 채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뭔가로 채울 필요가 없는 시간. 우리는 그 빈 시간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리고 자유는 그렇게 거침 없는 곳에서 온다고 했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 속에 수영을 하는 아내의 물을 헤집는 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읽던 책을 덮고 누운 자세로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 우리가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알거나 알지 못하는 숱한 우연과 우연이 만든 필연으로, 기억하거나 기억지.. 2012. 6. 4.
깐꾼 CANCUN 에서 놀다5 - ALL INCLUSIVE 아내와 아침 해변을 걸었다. 어제보다 바람이 드세고 물결이 높았다. 바다는 탁한 빛을 띄고 있었다. 앞선 글에서 말했지만 깐꾼의 해변은 달리기는 물론 걷기에도 그리 좋지 못하다. 바다와 호텔의 콘크리트 벽 사이에 가까스로 골목길처럼 남아 있는 형국이다. 거기에 여기저기에 방치된 콘크리트 잔해물들이 차분한 아침 산책을 불가능하게 했다. '원래 깐군의 해변이 이랬던 것일까?' '이 정도의 해변을 가지고 그토록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단 말인가?' 나는 의문과 불만의 심정으로 호텔 직원에게 물었다. 깐꾼에서 자랐다는 그의 대답은 몇년 전 거대한 허리케인이 이곳에 들이닥쳐 시설을 파괴하고 해변의 모래를 바다로 쓸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바다 위에 뜬 배를 가리켰다. 그 배는 바다 밑의 모래를 긁어모으는.. 2012. 6. 4.
깐꾼 CANCUN 에서 놀다3 -무헤레스 섬 깐꾼에서 배편으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작은 섬, 무헤레스가 있다. 길이가 8킬로미터에 폭이 300에서 800미터 정도라니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한바퀴 돌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멕시칸어(스페인어)로 ISLA MUJERES라고 한다. ISLA는 섬, MUJERES는 여자를 뜻하는 MUJER의 복수형이다. 그러니까 '여인들의 섬'이라는 뜻이겠다. 론리플래닛에는 섬 이름의 유래에 관하여 두 가지 설명이 나와 있다. 한 가지는 옛날 스페인 해적들이 무역선과 인근 항구에서 해적질을 하는 동안 자신들의 여자들을 이 섬에 남겨두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16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이 이 섬을 찾았을 때, 돌로 지어진 사원과 흙으로 만든 여인 동상이 매우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2012. 6. 4.
깐꾼 CANCUN 에서 놀다2 - 수영장과 바다 아침 햇빛 속에 드러난 창밖 세상은 온통 쪽빛이었다. 바다와 하늘이 같았다. 특히 바다에는 밤새 누군가 엄청난 양의 푸른 물감을 흘려 놓은 듯 짙거나 옅은 푸른 색이 오묘하게 조화로운 띠를 이루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물풍경은 물 자체가 아니라 물을 담고 있는 가장자리에서 그 아름다움이 드러난다는 어느 책에서 읽은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깐꾼에서 바다는 그 자체만으로 가장자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샌디에고와 깐꾼은 2시간의 시차로 동쪽의 깐꾼이 빠르다. 거기에 어제 저녁의 늦은 도착과 늦은 잠으로 아내는 아직 기상 전이다. 나는 가만히 문을 열고 혼자 해변으로 나왔다. 바다를 향해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호텔 난간에 서서 사진으로 담기에는 넘치는 잉여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 두려고 .. 2012. 6. 4.
깐꾼 CANCUN 에서 놀다1 - 상견례 연말. 한 해 회사 살림살이를 돌아보니 썰렁했다. 온 세상이 다 아는 불경기라지만 '마당쇠' 노릇의 월급쟁이로서는 연달아 이태 동안 그놈의 시절 타령만 수리성으로 읊어대며 무사태평의 모르쇠로 지내기는 낯간지러운 노릇이었다. 별 성과가 없기에 더 애달복달해야 했던 한해는 숨가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보다 더 무겁게 몸과 마음을 짓누르며 흘러갔다. 원래 차를 운전하여 미국 중부 내륙쪽 깊숙한 곳을 돌며 연말 휴가를 보내려 했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차를 몰아야 한다는 사실이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것도 나이 들어가는 징후인가?" 억지 동의라도 받으려는 듯 아내에게 말을 했지만 그보다는 불경기의 후유증이라는 편이 더 타당할 것 같았다. 그때까지 틈 나는 대로 준비해왔던 미중.. 2012.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