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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25

한가위 보내기 축제 분위기가 가장 길었던 한가위 연휴. 아내와 자주 한강 변을 걸었다. 강변에도 가을이 왔다. 잔물결 위에 사금파리처럼 부서지는 성긴 햇살이며 코스모스를 가볍게 흔드는 바람. 헐렁해진 허공. 해 질 녘의 서늘한 기운. 걸음도 살랑 가벼웠다. 손자 친구가 큰절의 '개인기'를 선보였다. 아마 제 부모의 의도적인 반복 훈련이 있었으리라. 아무렇거나 친구의 오체투지에 가까운 큰절을 받으니 한가위 저녁이 더욱 풍성해졌다. 친구와 집 주위 산책도 흥미진진한 놀이였다. 이제 장난을 먼저 시작할 줄도 아는 친구의 성장이 흐믓했다. 썰물처럼 손님들이 빠져나간 명절의 뒤끝, 아내와 둘이서 각종 전(煎)을 한꺼번에 넣고 새우젓과 무를 넣어 졸인 반찬과 함께 식사를 했다. 동그랑땡과 동태전, 버섯전과 호박전 등등. 아내가 .. 2017. 10. 10.
2017 '손자 친구'와 함께 한 마카오1 "당신······, 당신이란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허수경의 시 「혼자 가는 먼 집」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손자 친구'가 태어나면서 이 시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당신' 대신 '녀석'이나 '이놈' 혹은 '고놈' 단어를 넣으며 '킥킥거린다.' "녀석이 말이야······." "야 이놈아······." "고놈 참······." 그럴 때마다 '친구'도 뭐 그리 싫어하는 표정이 아니다. 싫어하긴커녕 어떨 땐 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듯이 얼굴을 살갑게 부빌 때도 있다. 아내는 "이럴 때 보면 어린애라고 그 앞에서 함부로 말해선 안 되겠다"고 놀라곤 한다. 8월에 마카오를 다녀왔다. 원래는 국내에서 수영장 좋은 호텔을 잡고 느긋하게 쉬려고 했으나 "부산140만원 vs 세부 129만원, 호.. 2017. 10. 6.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일주일에 한번 이상 손자친구를 보러간다. 멀리서 나를 알아볼 때마다 친구는 이제 막 시작한 걸음을 전 손력으로 가동시킨다. 끙끙거리며 품 안에 안길 때마다 느껴지는 꼼지락거림과 냄새의 살가움이라니······ "연애할 때 당신 보다 더 보고 싶은 거 같애" 라고 말해도 아내가 눈을 흘길 리 없는 나의 유일한 외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산다 자주감자가 첫 꽃잎을 열고 처음으로 배추흰나비의 날갯소리를 들을 때처럼 어두운 뿌리에 눈물 같은 첫 감자알이 맺힐 때처럼 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믓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 - 이정록의 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중에서 - 2017. 5. 30.
첫돌 맞은 내 친구 "잼잼!"을 하면 앙증 맞은 두손을 쥘락펴락 꼼지락거린다. "박수~!" 하거나 "바이바이 ∼!"하면 두 손을 마구 부딪거나 흔든다. "흔들흔들 흔들흔들." 노래를 들려주면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고 최근엔 "사랑해요." 하면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고난도 개인기까지 마스터를 했다. 어느 아이에게도 있을 발달 상황이지만 당연스럽게도 우리에겐 손자 녀석의 모든 행동이 특별하다. 품 속에서 잠들었을 때 느껴지는 새근새근 숨소리나 작은 꼼지락거림까지도. 어디서 왔을까? 이 넓고 넓은 세상에 왜 우리에게 왔을까? 녀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삶의 근원이 아득해지고 생의 외연이 이승을 넘어 확장되는 신비로움을 느낀다. 지난 일년 딸아이는 가장 큰 정성과 수고로움을 녀석과 나누며 엄마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다. (엄마와 .. 2017. 3. 4.
새로운 깐꾼(CANCUN)의 추억 치첸잇싸(CHICHEN ITZA)는 멕시코 유명 휴양지 깐꾼의 인근에 있는 마야 유적지이다. 몇 해전 아내와 깐꾼에 갔을 때 방문하여 기념으로 작은 마그넷을 하나 사왔다. 그런데 엇그제 손자녀석이 집에 놀러와 그 기념품을 조각냈다. 안고 놀아주는 사이 손을 뻗어 벽걸이 판에서 떼어내어 바닥에 그만 떨어뜨린 것이다. 깐꾼을 다녀와 몇 년이 지난지라 여행의 기억이 희미해져 가고 있던 참에 기특하기 그지 없는 손자녀석이 깐꾼보다 더 예쁜 추억을 하나 더해 준 것이다. 귀퉁이가 깨진 마그넷을 볼 때마다 늘 개구장이 손자녀석의 모습이 어릴 것이다. 2016. 12. 24.
세상 뒤집기 손자 친구가 혼자서 몸을 뒤틀며 용을 쓰던 끝에 얼마 전 드디어 몸을 뒤집었다. 녀석은 뒤집고 나서 스스로의 성취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아내와 내겐 세상이 뒤집어지는 흥분이었다.^^ 2016. 7. 20.
할아버지 등극! 이른 아침 잠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 "뭐지? 혹시?" 에상은 적중했다. 손자녀석이 예정보다 며칠 빠르게 세상에 나왔다는 강펀치의 소식. 외할아버지를 닮아 성미가 급한가 보다. 아내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목이 메이고 눈물을 글썽였다. 잠자리를 제대로 정리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달려가 만나보았다. "안녕! 반가워." "오느라고 수고했다, 아가야!" 2016. 3. 2.